핏줄 타령 지겹지도 않니? 여기저기서 터지는 KBS 주말극 위기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여기저기 KBS 주말극의 위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 종영을 2회 남기고 있는 KBS 주말드라마 <진짜가 나타났다!>의 최고시청률이 23%(닐슨 코리아)에 머물고 있어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런 시청률 지상주의를 내걸고 있는 KBS 주말드라마의 방향성이 문제다. 이제는 시대착오라고 이야기하는 출생의 비밀 코드를 반복해서 쓰거나, 때론 이야기를 질질 끌고 분노유발자를 세워 놓는 방식을 쓰더라도 시청률만 높으면 된다는 그런 생각이 지금의 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진짜가 나타났다>는 그 기획의도와 초반 설정만 하더라도 이 시대의 달라진 가족관을 담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즉 핏줄 타령하는 가족관이 아니라, 핏줄이 아니더라도 진짜 가족일 수 있는 관계를 그려나가겠다는 의지가 연두(백진희)와 태경(안재현)의 관계를 통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준하(정의제)의 아이를 가졌지만 태경과 가짜 계약 로맨스를 시작하고 결국 결혼해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려가는 그 과정을 통해 핏줄은 아닌 관계로 시작했지만 진짜 가족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담으려던 것처럼 보였던 것.
물론 이 흐름은 드라마가 막바지까지 온 현 상황까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다만 후반에 이르러 <진짜가 나타났다>가 꺼내든 '출생의 비밀' 코드는 이 드라마가 본래 하려던 기획의도를 흐릿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문제다. 갑자기 준하가 은금실(강부자)의 친손자라는 상황이 전개됐고, 그 상황은 당연히 핏줄이 당기는 은금실이 준하를 챙기고 실제 핏줄이 아닌 태경과의 대립각을 만드는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핏줄 타령 출생의 비밀로 몇 회를 끌고 가더니 갑자기 이게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드라마는 방향을 틀어버린다. 유전자 검사 결과 친자가 아니라는 게 밝혀진 것. 이야기는 줄줄이 복잡하게 얽힌 핏줄 관계로 빠져 들어간다. 은금실의 딸 딸기의 딸이 에카 수녀이고, 에카 수녀는 준하를 친동생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또 그게 아니었고...시청자들은 지쳐간다. 타고난 핏줄 대신 '만들어가는 관계'의 소중함을 내세우려 했던 드라마가 핏줄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방향을 잃어버린다.
최근 ENA에서 방영되어 큰 호평을 받은 <남남>은 '출생의 비밀'을 가진 친아버지가 갑자기 등장하지만, 그가 핏줄이라는 이유로 곧바로 가족이 되지는 않는다는 걸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친아버지를 딸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상황이 이해됐고, 그 아버지 역시 그렇게 자신이 불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그때부터 관계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줬다.
시대가 바뀌었다. 가족에 대한 관념도 바뀌었다. '출생의 비밀' 코드를 쓰면 시청률이 오른다는 생각도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됐다. 그 결과를 <진짜가 나타났다>가 아니 역시 이 시대착오적 코드를 썼던 이전 드라마들 <현재는 아름다워>, <삼남매가 용감하게>의 저조한 시청률이 말해주지 않았던가.
일단 50부로 편성되는 이 긴 흐름이 KBS 주말드라마에 꼭 필요한가를 묻고 싶다. <진짜가 나타났다>만 해도 20부 혹은 30분 정도로 압축해도 충분한 서사를 가진 드라마다. 굳이 50부라는 틀을 세워 놓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기 위해 질질 끌고 늘리고 무리한 코드들과 설정들을 넣게 된다.
또 공영방송으로서 굳이 이 시대에 가족드라마를 유지하겠다면, 그 명분일 수 있는 달라진 가족의 모습이나 변화한 가족에 대한 관념을 좀 더 건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출생의 비밀' 코드는 '핏줄'에 집착하던 시대의 산물이다. 이제 입양부터 재혼 가정도 늘고 있는 현실에 필요할 때마다 이 코드를 꺼내 쓰는 건 시청자들이 떠나는 이유다. 비록 <진짜가 나타났다>처럼 진짜 가족은 핏줄이 아닌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걸 애초 기획의도로 세워둔 드라마도 결국 시청률이라는 잣대 위에 이 카드를 꺼내드는 건 주제의식 자체를 흐린다는 점에서 피해야 할 일이다.
KBS 주말드라마는 어찌 보면 가족드라마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가족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를 편성하는 건 분명 명분에 맞는 일이다. 하지만 그 가족의 가치를 과거의 방식 그대로 보여주는 일은 현재의 시청자들을 외면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의 달라진 감수성에 맞는 가족이야기를 찾아내 지금의 방식으로 새롭게 들려주는 일. 그것만이 KBS 주말드라마가 존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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