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눈감은 여야, 임계점 넘었는데…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ccr21@hanmail.net)]
'산우욕래풍만루(山雨欲來風滿樓)'는 당나라 말기의 시인 허혼(許渾)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당나라가 후기에 들어서면서 제후들의 발호와 문란한 정치, 환관의 전횡 등으로 위기에 처하면서 당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지은 시의 한 구절로서 '산에 비가 오려하니 누각에 바람이 가득하네'란 의미이다. 위기 조짐으로서 산의 누각에 가득한 바람을 비유한 시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서 이 시구가 떠오르는 것은 정치나 행정은 물론, 경제사회적 혼란과 대내외적 위기들,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 등 작금의 사회적 현상들에서 한국의 위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정치는 존재하지만 사익 탐닉과 권력 쟁취라는 극단적 현실주의의 포로가 된 지 오래이고, 지식인들조차 기능인으로 전락하는 총체적 위기에 처해있다는 진단 때문이기도 하다.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담대함과 통찰력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행정권력이건 입법권력이건 권력엘리트들이 당장의 이슈에 얽매여서 거시적 관점을 상실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세계 13위이고, 1인당 소득도 3만3000 달러를 넘어 비록 세계 30위권에 머물지만 영국과 프랑스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선진국이란 말이 그리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발전은 과연 지속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매우 곤혹스럽다. 사회적 연대의 해체, 극단적 대치의 정치, 배려와 존중의 상실 등 한국사회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비유되는 것이 과장이 아니게 들린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최적의 상태를 모색해야 하는 정치는 권력정치에 매몰되어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 싼 여야의 정치적 계산만 난무하다. 나라의 권력을 틀어쥔 집권집단은 야당을 대화의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야당은 진보적 의제를 거론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깊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있다.
정당 지지도는 여야 모두 정체를 면치 못한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1년이 넘도록 40%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평가에서 허덕이고, 집권당이라는 국민의힘은 대통령 권력에 주파수 맞추느라 정신이 없다. 여당의 공천권은 사실상 대통령이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고, 야당 역시 사법적 위기에 허덕이는 당 대표가 틀어쥘 것이 확실하다.
시스템에 입각한 공천이 사라진 선거판은 여야 모두 공천의 노예가 되어 진영 내 입지 확보를 위한 비상식적 발언과 아첨의 언술이 넘쳐난다. 정치를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서 앞으로 한국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성찰과 4강이 각축하는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어떻게 균형을 모색하고 지렛대를 활용하여 국가안보를 지탱해 나갈지에 대한 전략적 고려는 찾을 수 없다. 미국과의 동맹, 일본과의 협력이라는 식상한 구도가 한국의 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는 고민의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엄혹한 시절, 민주주의를 일궈내고 국정을 사유물로 여긴 집단을 끌어내린 시민사회의 역동성과 에너지도 동력을 잃었다. 각자도생의 가치관과 극단적 물질주의 역시 신자유주의의 일반적 현상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당장 사회가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가 임계점에 왔고 어떠한 형태로든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을 하지만 정작 이를 주도해야 할 국회는 정치이기주의에 포획된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역사인식과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진 지도자는 보이지 않고 정치, 기업, 시민사회 모두 낡고 위태로운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여야의 식상한 쟁투는 아무런 실익도 가치도 찾을 수 없다. 성장의 과실이 자칫 모래위에 쌓은 성이 될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오늘도 여전히 정치는 철학도, 명분도, 실리도 없는 그들만의 권력을 위한 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바야흐로 산에 비가 오려 하니 누각에 바람이 가득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위기의 조짐을 읽지 못하는 정치는 왜 존재하는가.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ccr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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