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비자는 왜 정유사와 주유소의 '호갱' 됐나

김정덕 기자 2023. 9. 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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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기름값의 또다른 비밀 1편
정제오일 수출‧내수가격 분석
수출용 내수용 가격 왜 다를까 
국내에서만 비싼 묘한 기름값

# 기름값이 요동칠 때마다 국민은 정유업계를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국제유가가 떨어졌는데, 왜 주유소 가격은 안 떨어지는가." 그럴 때마다 정유업계의 답은 같다. "국제유가와 국내유가의 시차에서 기인한 오해다." 그들은 한술 더 떠 "우리는 수출로 이익을 낼 뿐, 내수시장은 오히려 손해"라면서 반론을 편다.

# 타당한 반론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더스쿠프(The SCOOP) 분석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올랐을 때 휘발유 수출가격은 '찔끔' 올린 반면, 내수공급가격은 '가파르게' 인상했다. 국제유가가 하락했을 땐 반대 결과가 나왔다. 쉽게 말해, 똑같이 정제한 석유제품을 해외엔 좀 더 싸게, 국내엔 좀 더 비싸게 팔았다는 거다. 국내 소비자는 어쩌다 정유사와 주유소의 '호갱'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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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가 수출용과 내수용 가격이 다른 기름값의 또다른 비밀을 독점 분석했다. '기름값의 또다른 비밀' 제1편이다.

국내유가가 국제유가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사진=뉴시스]

국내 기름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7월 1일 리터(L)당 1569.79원이던 휘발유 가격은 9월 4일 1748.95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경유 가격은 1379.99원에서 1638. 62원으로 올랐다. 상승률은 각각 11.4%, 18.7%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기름값에 서민의 한숨 소리도 커졌다. 국내 경제가 침체한 상황에서 물가는 오르고 실질 소득은 줄고 있어서다. 최근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 국제유가가 오르고 있으니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은 답답하다. 기름값 얘기가 나올 때마다 불투명한 게 워낙 많아서다.

무엇보다 국내유가가 국제유가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 유류세 인하분은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정부가 시장의 판매 가격을 모니터링한다지만, 국제유가든 유류세 인하분이든 제대로 반영하라고 강제할 법적 근거도 없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에너지 소비자단체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E컨슈머ㆍ이하 감시단)은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내놨다.

"7~8월 국제 휘발유 가격은 L당 145.55원 올랐지만, 국내 정유사의 공장도 가격은 L당 147.63원 인상했다. 국제가격 인상액보다 L당 2.08원 더 많이 올린 셈이다. 같은 기간 주유소는 L당 175.74원을 인상해 30.19원 더 많이 올렸다." 정유업계와 주유업계가 국제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감시단에 따르면 정유업계와 주유업계가 국제가격보다 덜 올리거나 더 내린 경우가 없진 않다. 다만 기름값을 국제가격보다 덜 올리거나 더 내린 경우보다 더 올리거나 덜 내린 경우가 더 많았다. 국민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반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경유보다 일반 승용차용으로 사용되는 휘발유 가격이 국제가격과의 격차가 더 컸다.[사진=뉴시스]

기름값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정유업계는 이런 반론을 편다. "국내유가는 국제유가와 2~3주 정도의 시차가 발생하는데, 이를 감안하면 국제유가 변동분은 국내유가에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 더구나 정유사의 매출을 뜯어보면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크고, 내수 시장 이익률은 마이너스 수준이다."

정유업계가 코로나19 국면에서 커다란 이익을 낸 후, 그 이익에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에도 이런 반응을 내놨다.

주유업계 역시 "국제유가가 비쌀 때 사들인 기름을 국제가격이 떨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싸게 팔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면서 "가격 하락분을 반영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기름값은 정유사 공급가에 달려 있다는 항변이다.

중요한 건 국내유가 변동 추이를 그래프로 나타냈을 때, 그 곡선이 국제유가 변동 추이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클 때마다 나타나는 특이점이다.

더스쿠프는 그동안 국내유가가 국제유가와 얼마나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기사화한 바 있는데, 이번엔 좀 다른 접근법을 사용해봤다. 국내 정유사들의 석유제품 수출가격과 국내 공급가격을 비교해 본 거다. 이를테면 정유사의 수출가격과 내수가격을 분석한 건데, 결과는 다소 황당하다.

■ 분석➊ 5월 급락한 국제 휘발유 가격 = 먼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자동차용 휘발유(HS코드 2710121000)의 월평균 수출 가격(수출중량 대비 수출금액)을 보자(표➊). 국내 정유업계가 휘발유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는 싱가포르, 필리핀, 호주, 미국, 일본 등이다. 이들 국가에 수출한 휘발유의 톤(t)당 가격은 700달러 중반에서 800달러 중반 사이에서 움직였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두가지인데, 첫번째 이슈는 3~4월에 오름세(싱가포르ㆍ필리핀ㆍ호주ㆍ미국) 혹은 보합세(일본)를 보이던 휘발유 가격이 모두 5월을 기점으로 큰 하락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후 6~7월에 싱가포르ㆍ필리핀ㆍ호주 수출가격은 다시 상승세, 미국은 보합세, 일본은 상승과 하락이 번갈아 나타났다. 두번째 이슈는 5월 수출가격이 1월 수출가격보다 높았던 나라는 단 한곳도 없었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 국제유가는 어떻게 움직였을까. 먼저 원유(두바이유 기준)를 보면 3~4월 상승세를 보이다 5월에 크게 하락한 후 6~7월 사이에 회복했다. 역시 5월 평균 가격은 1월 가격대를 넘기지 않았다(표➋).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거래된 국제 휘발유 가격도 마찬가지다. 5월에 크게 하락한 국제 휘발유 가격은 6~7월에 반등했는데, 5월 평균 가격은 1월 가격보다 높지 않았다(표➌). 휘발유 수출가격이 국제유가나 국제 휘발유 가격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비슷하게 움직였다는 걸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다.

자, 그렇다면 같은 기간 국내 휘발유 가격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이 질문의 답은 '기름값의 또다른 비밀' 제2편에서 찾아봤다. 결론을 살짝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5월 정유사의 5월 평균 공급가격은 1월보다 낮았지만, 낙폭이 1%도 채 안 됐다. 수출가격보다 훨씬 높게 주유소에 공급했다는 얘기다.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1월보다 훨씬 높았다. 국내 소비자들만 비싼 휘발유를 쓴 셈이다. <2편에서 계속>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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