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비자는 왜 정유사와 주유소의 '호갱' 됐나
기름값의 또다른 비밀 1편
정제오일 수출‧내수가격 분석
수출용 내수용 가격 왜 다를까
국내에서만 비싼 묘한 기름값
# 기름값이 요동칠 때마다 국민은 정유업계를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국제유가가 떨어졌는데, 왜 주유소 가격은 안 떨어지는가." 그럴 때마다 정유업계의 답은 같다. "국제유가와 국내유가의 시차에서 기인한 오해다." 그들은 한술 더 떠 "우리는 수출로 이익을 낼 뿐, 내수시장은 오히려 손해"라면서 반론을 편다.
# 타당한 반론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더스쿠프(The SCOOP) 분석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올랐을 때 휘발유 수출가격은 '찔끔' 올린 반면, 내수공급가격은 '가파르게' 인상했다. 국제유가가 하락했을 땐 반대 결과가 나왔다. 쉽게 말해, 똑같이 정제한 석유제품을 해외엔 좀 더 싸게, 국내엔 좀 더 비싸게 팔았다는 거다. 국내 소비자는 어쩌다 정유사와 주유소의 '호갱'이 됐을까.
# 더스쿠프가 수출용과 내수용 가격이 다른 기름값의 또다른 비밀을 독점 분석했다. '기름값의 또다른 비밀' 제1편이다.
국내 기름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7월 1일 리터(L)당 1569.79원이던 휘발유 가격은 9월 4일 1748.95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경유 가격은 1379.99원에서 1638. 62원으로 올랐다. 상승률은 각각 11.4%, 18.7%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기름값에 서민의 한숨 소리도 커졌다. 국내 경제가 침체한 상황에서 물가는 오르고 실질 소득은 줄고 있어서다. 최근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 국제유가가 오르고 있으니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은 답답하다. 기름값 얘기가 나올 때마다 불투명한 게 워낙 많아서다.
무엇보다 국내유가가 국제유가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 유류세 인하분은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정부가 시장의 판매 가격을 모니터링한다지만, 국제유가든 유류세 인하분이든 제대로 반영하라고 강제할 법적 근거도 없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에너지 소비자단체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E컨슈머ㆍ이하 감시단)은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내놨다.
"7~8월 국제 휘발유 가격은 L당 145.55원 올랐지만, 국내 정유사의 공장도 가격은 L당 147.63원 인상했다. 국제가격 인상액보다 L당 2.08원 더 많이 올린 셈이다. 같은 기간 주유소는 L당 175.74원을 인상해 30.19원 더 많이 올렸다." 정유업계와 주유업계가 국제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감시단에 따르면 정유업계와 주유업계가 국제가격보다 덜 올리거나 더 내린 경우가 없진 않다. 다만 기름값을 국제가격보다 덜 올리거나 더 내린 경우보다 더 올리거나 덜 내린 경우가 더 많았다. 국민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반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름값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정유업계는 이런 반론을 편다. "국내유가는 국제유가와 2~3주 정도의 시차가 발생하는데, 이를 감안하면 국제유가 변동분은 국내유가에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 더구나 정유사의 매출을 뜯어보면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크고, 내수 시장 이익률은 마이너스 수준이다."
정유업계가 코로나19 국면에서 커다란 이익을 낸 후, 그 이익에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에도 이런 반응을 내놨다.
주유업계 역시 "국제유가가 비쌀 때 사들인 기름을 국제가격이 떨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싸게 팔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면서 "가격 하락분을 반영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기름값은 정유사 공급가에 달려 있다는 항변이다.
중요한 건 국내유가 변동 추이를 그래프로 나타냈을 때, 그 곡선이 국제유가 변동 추이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클 때마다 나타나는 특이점이다.
더스쿠프는 그동안 국내유가가 국제유가와 얼마나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기사화한 바 있는데, 이번엔 좀 다른 접근법을 사용해봤다. 국내 정유사들의 석유제품 수출가격과 국내 공급가격을 비교해 본 거다. 이를테면 정유사의 수출가격과 내수가격을 분석한 건데, 결과는 다소 황당하다.
■ 분석➊ 5월 급락한 국제 휘발유 가격 = 먼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자동차용 휘발유(HS코드 2710121000)의 월평균 수출 가격(수출중량 대비 수출금액)을 보자(표➊). 국내 정유업계가 휘발유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는 싱가포르, 필리핀, 호주, 미국, 일본 등이다. 이들 국가에 수출한 휘발유의 톤(t)당 가격은 700달러 중반에서 800달러 중반 사이에서 움직였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두가지인데, 첫번째 이슈는 3~4월에 오름세(싱가포르ㆍ필리핀ㆍ호주ㆍ미국) 혹은 보합세(일본)를 보이던 휘발유 가격이 모두 5월을 기점으로 큰 하락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후 6~7월에 싱가포르ㆍ필리핀ㆍ호주 수출가격은 다시 상승세, 미국은 보합세, 일본은 상승과 하락이 번갈아 나타났다. 두번째 이슈는 5월 수출가격이 1월 수출가격보다 높았던 나라는 단 한곳도 없었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 국제유가는 어떻게 움직였을까. 먼저 원유(두바이유 기준)를 보면 3~4월 상승세를 보이다 5월에 크게 하락한 후 6~7월 사이에 회복했다. 역시 5월 평균 가격은 1월 가격대를 넘기지 않았다(표➋).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거래된 국제 휘발유 가격도 마찬가지다. 5월에 크게 하락한 국제 휘발유 가격은 6~7월에 반등했는데, 5월 평균 가격은 1월 가격보다 높지 않았다(표➌). 휘발유 수출가격이 국제유가나 국제 휘발유 가격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비슷하게 움직였다는 걸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다.
자, 그렇다면 같은 기간 국내 휘발유 가격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이 질문의 답은 '기름값의 또다른 비밀' 제2편에서 찾아봤다. 결론을 살짝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5월 정유사의 5월 평균 공급가격은 1월보다 낮았지만, 낙폭이 1%도 채 안 됐다. 수출가격보다 훨씬 높게 주유소에 공급했다는 얘기다.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1월보다 훨씬 높았다. 국내 소비자들만 비싼 휘발유를 쓴 셈이다. <2편에서 계속>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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