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몸에서 길러낸 사람 신장
과학자들이 돼지의 몸속에서 인간의 신장을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용해 인간과 돼지의 세포를 모두 가진 ‘키메라 돼지 배아’를 만들어 인간의 장기를 갖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돼지 배아는 어미 돼지의 몸속에서 28일간 성장한 후에 온전한 신장의 구조를 갖췄다. 앞서 돼지의 몸을 사용해 인간의 혈액이나 골격근과 같은 조직을 생성하는 데 성공한 적은 있었지만 동물의 체내에서 완전하게 장기를 성장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온쿤 왕 중국 광저우 생물의학 및 건강연구소 연구원 연구팀은 어미 돼지의 몸속에서 인간 신장을 가진 돼지 배아를 만들어낸 연구 결과를 7일 국제학술지 ‘셀 줄기세포’에 발표했다.
신장은 장기 중에서도 가장 먼저 발달하는 장기다. 의료 현장에서 가장 이식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장기이기도 한다. 원활한 신장이식을 위해 그동안 동물의 몸 속에서 인간의 신장을 성장시키려는 시도들은 많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동물의 몸 속에서 인간의 장기를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인간과 돼지의 세포가 서로 다른 생리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체 내 세포나 조직을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세포인 줄기세포는 종에 따라 서로 다른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동물의 체내에서 발달한 신장은 인간의 신체가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인간과 돼지의 각 신장을 만드는 줄기세포의 차이점을 극복하기 위해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절단해 유전체를 교정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용했다.
먼저 인간 신장을 키울 줄기세포가 돼지의 체내에서 다른 세포들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도록 신장 발달에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 2개를 제거했다. 줄기세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멸하지 않도록 유전자를 설계했다. 인간의 장기를 가지면서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키메라 돼지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다.
줄기세포를 돼지에 이식하기 전에 연구팀은 줄기세포를 제공하는 인간 실험 참가자와 줄기세포를 삽입할 어미 돼지에 특별한 영양분을 주입했다. 이 영양분들은 이종 간 줄기세포 이식에서 반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실제 이식에서 연구팀은 총 1820개의 줄기세포 배아를 어미 돼지 13마리에 나눠 이식했다. 어미 돼지가 임신하고 25~28일 지난 뒤 돼지의 체내에서 발달한 배아 5개를 추출해 분석했다. 2개는 인간 줄기세포를 이식하고 25일 후에 추출됐으며 3개는 이식 28일이 지났을 시점에 얻어냈다.
분석 결과 이 돼지 배아는 정상적인 신장을 가지고 있었다. 세포의 50~60%는 인간의 세포와 동일하게 구성돼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장은 신장과 방광을 연결하는 관의 역할을 하는 세포까지 갖췄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첸 다이 광저우 생물의학 및 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용해 돼지 배아에 ‘틈새’를 만들면 인간의 줄기세포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전자 교정된 어미 돼지의 몸 속에서 자라난 키메라 돼지 배아의 세포를 분석한 결과 뇌나 신경에서 일부 인간세포가 발견됐지만 대부분은 인간 신장에 국한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인간의 신장을 성장시킬 수 있는 최적의 키메라 돼지를 만든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장 외에 심장이나 췌장과 같은 다른 장기를 돼지 몸 속에서 키워낼 가능성을 열었다는 뜻이다.
돼지 몸속에서 키워낸 인간의 장기를 실제 환자에게 이식하기 위해선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여러 종류의 세포와 조직으로 구성된 장기는 실제 이종 간 이식이 이뤄졌을 때 예상치 못한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거부 반응을 막기 위해 더 복잡하고 다양한 유전자 교정을 시도할 계획이다.
한편 거부 반응 없는 이종 간 신장이식을 시도하는 연구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국내 생명공학 기업 옵티팜은 최근 돼지의 신장을 이식받은 원숭이를 221일간 생존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에선 DNA 단편을 생명체의 유전체 안에 삽입해 새로운 유전형질이 발현되도록 한 형질전환 돼지가 사용됐다. 옵티팜은 신장이식을 받은 원숭이가 사망할 무렵 신장 관련 수치가 급격히 저하된 원인을 분석 중이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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