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김만배, 언론계-정계-법조계-조폭까지 쥐고 흔들었다
수억~수백억원 막대한 돈 미끼로 동원
(시사저널=조해수·김현지 기자)
또 '김만배'다. 이쯤 되면 '꼬리'가 아닌 '몸통'이다. 이번엔 김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 사이의 인터뷰가 문제가 됐다. 문제의 인터뷰는 2021년 9월경 녹음됐다가 대선 3일 전인 지난해 3월6일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를 통해 보도됐다. 부산저축은행 사건 당시 대검 중수2과장으로서 주임검사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에 대한 수사를 무마해 줬다는 의혹이 담겼다.
▒ "대장동 몸통 바꾸려던 희대의 정치 공작 사건"
1년6개월이 지난 9월5일 마침내 대통령실이 직접 나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성명을 통해 "대장동 주범(김만배)과 언노련(언론노조연맹) 위원장 출신 언론인(신학림)이 합작한 희대의 대선 공작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대장동 사건 몸통을 이재명에서 윤석열로 뒤바꾸려 한 정치 공작적 행태"라면서 "김대업 정치 공작, 기양건설 로비 가짜 폭로 등의 계보를 잇는 2022년 대선의 최대 정치 공작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나중에 아니라고 하면 돼"라고 하는 등 김씨가 수천억원에 이르는 대장동 이익을 위해 '대선 공작'을 주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만배씨는 2021년 8월31일 경기경제신문의 칼럼으로 '대장동 게이트'가 터진 후 세상을 여러 번 놀라게 했다. 먼저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씨 등 '대장동 일당'은 내부 비밀을 이용해 2014년 8월부터 2015년 3월까지 단 8개월 만에 7886억원의 부당이익을 거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2021년 추석 덕담으로 "화천대유하세요"가 유행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김씨의 인맥은 놀랍다 못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김씨는 언론계-정계-법조계의 유력가는 물론이고 조직폭력배와도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이런 인맥을 가능하게 한 것은 '돈'이었을까. "428억원 약정" "50억 클럽" "책 세 권 값 1억6500만원" "100억원 언론재단 설립" 등 서민은 꿈도 꾸지 못할 액수가 아무렇지 않게 언급됐다. 그러나 김씨가 드리운 거액의 미끼를 문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은 조폭과 함께 점차 수면 위로 끌어 올려지고 있다.
▒ "주역 글귀를 회사 이름으로"…성대 동양철학과
"화천대유·천화동인 같은 주역 글귀로 회사 이름을 지을 사람은 김씨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를 수소문했다."
신학림 전 위원장은 김만배씨와 인터뷰를 한 경위를 이와 같이 설명했다. 김씨가 성균관대 동양철학과(84학번) 출신이라는 점을 말한 것이다. 김씨의 화려한 인맥의 한 축은 성대 동문이다. '50억 클럽'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영학 녹취록'에 등장하는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대장동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의혹의 이순우 전 우리은행장 등도 성대를 나왔다.
김만배 씨는 대장동 사업을 추진하며 성남시의원과 국회의원 보좌관들을 집중적으로 만났는데, 이때도 성대 동문이 밑거름이 됐다. 대장동 게이트가 터진 후 정계에 몸담고 있는 성대 출신 사이에선 "김씨를 만나 10만원짜리 상품권 한 장이라도 받지 못했다면, 존재감이 전혀 없다는 의미다.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퍼지기도 했다.
이한성 천화동인 1호 대표는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을 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구속 기소)의 보좌관을 지냈는데, 둘 모두 성대 출신이다. 고재환 성남의뜰 대표, 이성문 화천대유 대표 등 대장동 사업의 곳곳에 성대 동문들이 포진해 있다.
▒ 기자가 기자에게 뇌물 주는 "김 이지스"
"김만배의 방패가 튼튼해. 별명이 이지스함이야. 김 이지스. 대한민국에 이 큰 사업 하면서 언론에서 한 번 안 두드려맞는 거 봤어? 수사 안 받지, 언론에 안 타지. 비용 좀 늘면 어때. 기자들 분양도 받아주고. 회사에다 줄 필요 없어. 기자한테 주면 돼."
김만배씨는 정영학 회계사에게 자신의 로비력을 뽐내며 이처럼 말했다. 김씨는 1992년 일간스포츠 편집기자로 시작해 뉴시스를 거쳐 머니투데이에서 부국장까지 지냈다. 김씨는 기자를 잘 아는 만큼 능숙하게 기자를 다뤘다. 기자에게 돈 쓰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남욱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김만배가 골프를 칠 때마다 각 기자들에게 100만원씩 줬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서초동 만배 형"으로 통한 김씨는 기자가 기자에게 수억원을 건네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냈다. 남욱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김만배가 2019년 5월 '한겨레 기자 집을 사줘야 한다'면서 나와 정영학에게 3억원씩 가지고 오라고 했고 실제로 줬다"고 진술했는데, 이는 허언이 아니었다.
한겨레 편집국 신문총괄 A기자는 2019~20년 아파트 분양대금 명목으로 김만배씨에게 수차례에 걸쳐 9억원을 수표로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A기자는 법조팀장과 사회부장을 지내며 대장동 비리 의혹 보도에 관여할 수 있는 위치였다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줬다. 이 밖에 B 전 한국일보 뉴스부문장, C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도 김씨와 1억원 상당의 금전거래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1월13일자 기사 참조).
김만배씨가 자신이 다니는 언론사 회장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주는 만화 같은 일도 벌어졌다. 홍성근 머니투데이 회장은 2019년 10월경 소속 기자였던 김씨에게 50억원을 빌렸다가 약 두 달 후 이자 없이 원금만 갚은 혐의를 받고 있다.
골프 때마다 100만원, 집 사주려 9억원, 회장에게 빌려준 50억원 등 김만배씨의 놀라운 씀씀이는 책 세 권을 1억6500만원에 구매하는 데 이르렀다. 김씨는 신학림 전 위원장과의 인터뷰 후 신 전 위원장이 2020년 발간한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혼맥지도(전 3권)》를 1권당 5000만원에 부가가치세까지 얹어 구매했다.
신학림 전 위원장은 '1억이 넘는 책값이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추호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면서 "'책값이 무슨 1억5000만원이냐' 하겠지만 저는 그 돈도 싸다고 생각한다"고 항변했다. 이와 관련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자기 책 세 권 값으로 1억6000만원을 받았다는 기막힌 주장을 하는 사람이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을 했다는 사실도 오늘날 우리 언론계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비판했다. '뉴스타파'는 9월5일 "취재원과 거액의 금전거래를 한 사실은 저널리즘 윤리상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면서 "후원회원과 시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신학림 전 위원장은 친노·친문·친명계의 돈줄이 적힌 이른바 '이정근 노트'에도 등장한다.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은 각종 청탁의 대가로 사업가 박우식씨로부터 10억여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4월12일 1심에서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과 박우식씨는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이정근 노트에는 "신학림(김두관의 친구)-박○○(전 민주당 지역위원장), 최○○(전 민주노동당 지역위원장), 이정근을 박우식에게 소개했으나 이정근이 노영민, 문재인, 송영길과 두루 친하다는 것을 이유로 이정근만 상대함"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신 전 위원장은 김두관 민주당 의원과 중·고교 동기다. 이와 관련해 신 전 위원장은 "이정근, 박우식을 전혀 모른다. 이정근의 '이'자도 모른다"고 말했다(5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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