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위험 신고했더니 '출입 금지'…'아차 사고' 외면하면 벌어지는 일
제희원 기자 2023. 9. 8. 09:48
얼마 전 덤프트럭 기사들 사이 소문이 하나 돌았습니다.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위험한 사고를 신고한 기사에게 출입을 금지한다는 통보가 내려왔다는 겁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타워크레인에서 목재가 추락한 큰 사고였습니다. 근처 터파기 현장 작업자들을 덮쳤다면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작업장에서 사람이 다칠 법한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지만, 직접적인 손실로 이어지지 않은 사고를 '아차 사고'(Near miss)라고 부릅니다. 이런 아차 사고를 접수받고 관리하는 국토부 산하 기관도 따로 있습니다. 제보자가 신고를 하면 국토안전관리원 담당자가 현장 관리팀장 등으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계도나 과태료 처분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번 사고 역시 크레인 작업 중 신호수 안내나 와이어 결속 같은 필수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돼 계도 조치가 이뤄졌습니다.
'아차 사고' 신고했더니 공사장 출입 금지…여전한 안전불감증
'출입 금지' 통보를 내린 협력업체 해명은 다소 궁색했습니다. 신고 때문은 아니고 공정률이 99% 수준이어서 운반할 토사가 없어서 앞으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문자를 보냈다는 설명입니다.원청인 현대건설 역시 협력업체와 토목운송기사들의 개별 계약 관계에 원청이 지시를 내릴 수 없는 구조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장에선 대형사고 방지를 위한 '작업 중지' 요청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독려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습니다.
'처벌과 규제'에서 '자율과 예방'으로…실제 작동하려면
문제는 아직까지 '아차 사고' 발굴에 대한 중요도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원청과 협력업체, 현장 작업자, 담당 기관 모두 '산업재해'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이런 신고를 짐짓 번거롭게 여기거나 과도한 호들갑으로 치부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다친 사람이 없는데 굳이 신고를 해야 했냐'거나, '왜 문제를 키워서 시끄럽게 만드느냐'는 말들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한국의 산업 재해 문제가 여전히 심각합니다. 올해 상반기 일터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는 지난해보다 다소 줄었지만, 50인(50억) 이상 건설업에선 되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죠. 노동부가 '위험성 평가' 등으로 건설업 사망사고 예방에 집중해온 것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점도 살펴봐야 합니다. '사고'와 '예방'을 강조하는 흐름이 왜 현장에서는 번거로운 호들갑으로 여겨지는지, 부쩍 뛴 건설 비용 상승과 공기 압박은 산재 발생과 무관한 흐름인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차 사고' 발굴, 적극 장려하고 포상해야
아차 사고를 사전에 발굴하고 예방하는 활동이 산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여러 이론으로도 뒷받침됩니다. "1건의 중상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약 29건의 경상 사고가 발생하고, 같은 기간 약 300건의 무상해 사고가 일어난다." '하인리히 법칙'으로 알려진 익숙한 이론이죠. 버드라는 학자는 이를 더 세분화했습니다. '1:10:30:600.' 1건의 중대 손실이 발생하기 전에 10건의 중상과 30건의 물적 피해 사고 그리고 그 전에 600건의 아차 사고가 발생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사전에 위험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예방하는 건 노동자 개인뿐 아니라 국가 경제적으로도 이득입니다. 하인리히 재해손실 산정방식에 따라 추정한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로 인한 직간접 경제적 손실액은 2009년 17조에서 2018년 25조 수준(당시 국가 예산 약 430조)으로 뛰었습니다.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해가 그저 눈감고 넘길만한 수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않는 것.' 산재 예방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교훈입니다.
*참고 문헌
박선영, <안전보건공단-주요 국가간 산업재해율 변화 추이 비교분석>
이석기, 박정철 <국내 제조업의 아차 사고 발굴활동 현황 및 인식에 관한 연구>
제희원 기자 jess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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