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휘청→억대 뒷돈"…믿음 잃은 새마을금고, 돌파구는?
[편집자주] 새마을금고가 금융시장을 흔드는 '뇌관'이 되고 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중앙회장을 견제할 수단이 없었다. '셀프감사' 등 내부통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했다. '감독사각지대'에서 조용히 위기를 키웠다. 새마을금고가 서민금융기관으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봤다.
박차훈 새마을금고중앙회 회장을 비롯한 고위급 임원들이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열 1위인 회장은 상근임원인 서열 2~4위로부터 상납을 받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산운용사 대표에게도 돈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열 2~3위는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회장에게 금품을 상납했고 서열 4위는 대출받은 부동산업체로부터 돈을 받았고 금리를 이유없이 낮춰준 혐의다.
서울동부지검은 지난달 24일 박 회장·새마을금고 임직원 및 브로커 등 42명을 기소하고 이들 중 11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수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박 회장은 2021년 3월부터 지난 4월까지 유영석 아이스텀파트너스 전 대표로부터 현금 1억원을 받고 변호사비 5000만원을 대납받은 혐의를 받는다. 아이스텀파트너스는 새마을금고중앙회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한 자산운용사다.
검찰은 1억원이 박 회장 자녀의 증여세와 양도소득세에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4~7월 박 회장의 두 아들에게 1억원대의 증여세·양도소득세가 각각 부과됐다. 그러자 박 회장은 류혁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이사에게 "아들 세금이 많이 나올 것 같다"며 "유영석에게 이야기해서 1억원 정도 마련해 봐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회장은 지난해 8월 유 전 대표가 주는 현금 1억원을 류 대표를 통해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변호사비 5000만원은 박 회장의 형사 사건에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 박 회장은 2018년 중앙회장 선거 과정에서 불법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박 회장은 2021년 3월 전관 변호사와 선임료 1000만원에 자신의 형사사건 항소심 선임계약을 체결하면서 류 대표에게 "변호사님과 1000만원에 계약했다"며 "그러면 1000만원어치 일 밖에 안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유영석을 통해 5000만원을 추가로 더 드려라"고 요구했다. 이에 유 전 대표는 2021년 4월 박 회장의 변호사에게 법률자문료 명목으로 5000만원을 대신 내준 것으로 조사됐다.
박 회장은 새마을금고 임직원들에게 총 1억8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상납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박 회장은 '조직 관리비' 명목으로 2021년 3월부터 새마을금고중앙회 상근이사 3명에게 매월 1인당 100만원씩 합계 7800만원을 정기적으로 상납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상납금은 경조사비, 직원·부녀회 격려금, 조카 축의금 등에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밖에도 자신의 형사 사건 항소심을 맡은 다른 변호사에게 줄 착수금 2200만원을 상근이사 3명이 대신 내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회장은 새마을금고중앙회 자회사 대표이사 A씨에게 800만원 상당의 황금도장 2개를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황금도장이 담긴 상자 안에는 '존경하는 회장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모님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각각 적혀있었다. 검찰은 A씨가 대표이사에 선임될 수 있도록 박 회장이 힘을 써준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특경법위반(증재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박 회장이 신용공제대표이사 및 산하 실무자 인사권을 바탕으로 대출 및 투자 등 신용공제대표이사의 업무에도 상급자로서 수시로 보고받고 지시하는 등 광범위한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파악했다.
류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이사도 수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 조사 결과 박 회장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 외에도 여러 단독 범행이 밝혀졌다. 류 대표이사는 2021년 2월부터 지난 5월까지 새마을금고중앙회로부터 대출받은 부동산개발업체 3곳에서 지인 명의로 허위 급여 1억3809만원을 지급받은 혐의를 받는다. 그는 또 같은 기간 부동산개발업체로부터 법인카드 1장을 받아 총 2798만원 상당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류 대표이사에게는 배임 혐의가 추가 적용됐다. 그는 정상적인 금리 조건보다 저금리로 부동산 PF 대출해 줄 것을 지시해 새마을금고중앙회에 86억원 상당의 손해를 가하고 부동산 시행업자에게 같은 금액 상당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새마을금고 실무진들은 류 대표이사의 지시에 반대했지만 류 대표이사는 2021년 5월 유영석 아이스텀파트너스 전 대표의 부탁을 받고 이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새마을금고중앙회의 전무이사 B씨(64)와 지도이사 C씨(59)도 특경법위반(증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지난해 3월 류 대표이사 등과 공모해 매달 조직 관리비 명목으로 현금을 상납해 총 7800만원을 공여한 혐의를 받는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새마을금고법에 따라 박 회장의 직무를 정지했다. 중앙회는 김인 부회장(남대문충무로금고 이사장)의 직무대행 체제로 즉시 전환됐다. 새마을금고법에 따르면 중앙회 또는 금고 임직원이 특경법을 위반해 형사 기소된 때엔 행안부 장관이 직무 정지를 명령할 수 있다.
새마을금고가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중앙회장, 금고 이사장 등 지도부의 과도한 권한을 견제할 수단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독권을 전문성 있는 금융위원회로 이관해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제기된다. '뱅크런' 사태와 사법 리스크가 연달아 발생한 후 발족된 '경영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실효성 있는 개선 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중앙회 이사회 80%는 내부 인사…외부 감시도 부족
7일 새마을금고중앙회(이하 중앙회)에 따르면 중앙회 이사회는 현재 80% 이상 내부 사람으로 채워져 있다. 이사회는 새마을금고와 중앙회에 적용되는 각종 규정을 제정·변경·폐지하고 차입금의 최고 한도를 정하는 등 각종 중요 사항을 결정한다.
이사회의 정원은 총 21명으로 4명을 제외하곤 모두 새마을금고 출신이다. 이사회의 구성원은 △중앙회장·신용공제대표이사·지도이사·전무이사 등 중앙회 임원 4명 △각 지역을 대표하는 금고 이사장 13명 △변호사·교수 등 외부 전문이사 4명이다. 이사회 의장은 중앙회장으로, 중앙회장이 소집할 때 이사회가 열린다.
이사회 구성이 내부 출신을 중심으로 꾸려져 있어 경영진 감시·견제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중앙회 임원과 금고 이사장은 서로를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만 실상은 협력·공생 관계에 가깝다. 중앙회장 선출권이 금고 이사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금고 이사장의 투표로 뽑힌 중앙회장은 자동으로 이사회 의장이 되고 또다른 이사회 구성원인 신용공제대표이사·지도이사·전무이사를 선임한다.
외부 감시도 부족하다. 상호금융조합인 농협중앙회·수협중앙회와 달리 새마을금고중앙회는 국정감사 필수 대상이 아니다.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각종 금융지원사업을 시행하는데도 국정감사 필수 대상에선 빠져 있다. 농협·신협·수협 등과 달리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도 받지 않는다. 농협·신협·수협은 금융위·금감원으로부터 신용사업(금융) 감독을 받게 돼 있으나 새마을금고는 행안부가 요청하지 않는 이상 금융위·금감원의 감독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전문가 "지배구조 개선·감독권 이관 필요"…혁신위 개혁안 기대
전문가는 지배구조 개선, 감독권 이관을 통해 내·외부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중앙회장과 금고 이사장의 자격을 이해 관계 없이 검증하는 상설기구가 중앙회 내에 필요하다"며 "금융당국에서 파견한 인사나 정부 인사 등 다양한 기관 출신을 지도부선출위원회에 포함해 지도부의 도덕성과 경영 전문성을 검증·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금고 이사장의 투표로 선출된 중앙회장이 개별 금고를 원칙에 따라 면밀히 감독하긴 힘들다"며 "금융위로 감독권을 이관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중앙회에 설치된 혁신위는 감독권 이관 문제를 포함해 경영 혁신 방안을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있다. 혁신위는 뱅크런 사태와 박차훈 중앙회장의 사법 리스크로 새마을금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중앙회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발족했다. 혁신위 위원은 총 12명으로, 행안부·금융위·금감원·한국은행 등이 추천한 외부 전문가 8명과 이사회가 추천한 내부 인사 4명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 5일 혁신위는 2차 회의를 진행하고 혁신을 위한 10대 핵심 과제를 선정했다. 핵심 과제는 △지배구조 및 경영 혁신 △건전성 및 금고 감독체계 강화 △금고 경영구조 합리화 및 예금자보호 강화 등 3대 분야에서 다시 10개로 세분화됐다. 혁신위는 활동 기간인 오는 11월17일까지 개혁 방안을 도출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회 관계자는 "혁신위 위원이 대부분 외부 전문가로 구성돼 있고 언론도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강도 높은 혁신안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가 사상 유례 없는 새마을금고 옥죄기에 나섰다. 개별 금고 실적을 종합해 매년 두 차례 공시한다. 자체 기업대출을 금지하고 설립 출자금 기준도 높인다. 사실상 개별금고의 대출과 설립이 모두 어려워진단 얘기다. 여기에 행안부는 새마을금고에 건전성 강화 방안을 추가해 사실상 타 상호금융권과 비슷한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행안부는 지난달 31일 전국 1293개 새마을금고에 대한 상반기 영업실적을 발표했다. 개별 금고의 실적을 종합해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함께 행안부는 중앙회에 공유되지 않은 개별 금고의 자체 기업대출을 금지하는 파격적인 대책도 내놨다. 지난 6월 기준 기업대출은 111조4000억원에 달했다. 행안부는 이어 금고 설립 기준도 대폭 높여 사실상 2025년 7월 이후엔 새 금고 설립이 현재보다 훨씬 까다로워진다. 구체적인 지역금고의 출자금 기준은 △특별시 및 광역시 10억원 이상 △특별자치시 및 시 6억원 이상 △읍이나 면은 2억원 이상으로 높아진다.
이처럼 깐깐해진 규제는 행안부도 낯설다. 그만큼 내부에서도 위기감이 감지된다. 특히 박차훈 새마을금고중앙회장 등 핵심 간부들의 비리 사건이 알려지면서 새마을금고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차가워졌고, 올해 초부터 발생한 뱅크런(대량예금인출)까지 발생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 7월 한 달 간 새마을금고에서 17조원의 자금이 이탈한 사실이 알려진 시점이 변곡점이다. 행안부의 예상보다 뱅크런 규모가 너무 컸던 셈이다. 이제 새마을금고의 자산 규모(6월 기준 290조7000억원)가 300조원에 육박한 만큼 자칫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하지만 행안부의 이같은 수습에 뒷북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 그간 행안부가 새마을금고에 건전성보단 블라인드펀드 투자 등 대체투자 등으로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운영을 권고해왔기 때문이다. 블라인드펀드는 투자금의 용도를 설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가 자금을 모집해 운용하는 펀드여서 투자 결정자의 재량에 따라 수익이나 손실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행안부가 작성한 '2019년 새마을금고중앙회 정기종합감사결과 처분요구서'를 보면 행안부는 새마을금고에 "2019년도 전체 당기순이익(예상)이 전년 대비 낙관하기 어렵고, 총자산수익률이 3년 연속 3등급으로 저등급"이라고 지적하면서 "채권에 편중된 자산운용력을 다각화해 대체투자 등의 대안투자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마을금고중앙회장에게 "자산증가 추이에 비해 이익은 하향 추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채권자산을 통한 자금운용 비율을 낮추고 대체투자(블라인드 펀드 투자 포함) 비율을 높이는 등 총자산수익률 증가 및 전체 순이익의 향상을 위한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 운영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행안부의 수익성 확보 권고 이후 새마을금고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도 급증했다. 2019년 1694원이던 PF대출잔액은 2020년 2조8795원, 2021년 9조992억원, 지난해 15조5079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선 금융당국이 타금융업권에 대한 PF대출을 규제한 반면 행안부가 방관한 사이 자금이 새마을금고로 몰린 덕분이란 해석이 붙는다.
올해를 기점으로 새마을금고에 대한 규제는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미 여러가지 대책을 내놨지만 하반기까지 추가 대책을 통해 건전성을 강화할 것"이라며 "(앞으로) 신협이나 수협과 같은 타 상호금융기관과 비슷한 수준의 규제가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윤우 기자 moneysheep@mt.co.kr 황예림 기자 yellowyerim@mt.co.kr 이창명 기자 charm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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