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투기·인신매매·매춘까지… 불법 판치는 바다의 민낯[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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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에서 우리는 낭만과 자유를 실감한다.
바다는 우리의 DNA 속에서 육지에 매인 생활을 벗어나는 탈출구인 동시에 설레는 모험이 가득한 곳으로 각인돼 왔다.
1만2000해리(2만2224㎞)를 이동하는 여정 속에서 저자는 인신매매와 납치가 벌어지고, 해양 투기, 포경, 매춘 등 바다와 그 인근에서 자행되는 불법 행위를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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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어비나 지음│박희원 옮김│아고라
‘푸른 바다’에서 우리는 낭만과 자유를 실감한다. 바다는 우리의 DNA 속에서 육지에 매인 생활을 벗어나는 탈출구인 동시에 설레는 모험이 가득한 곳으로 각인돼 왔다. 이 한없이 자유로워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 낡아 빠진 저인망 어선엔 쇠고랑을 목에 찬 남자가 웅크리고 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바다로 나온 뒤 인신매매범에게 팔려 남중국해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던 캄보디아인 랑 롱(Lang Long)은 처음 만난 미국인 기자에게 “물고기는 두 번 다시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의 공허한 눈에 비친 망망대해는 여전히 자유로운 푸른 바다로 보일까, 아니면 무법이 판치는 ‘잿빛 바다’가 됐을까.
책은 우리의 인식 너머에 있던 잿빛 바다의 이야기를 담은 불편한 르포르타주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명한 탐사보도 기자인 저자는 40개월간 오대양과 다른 부속해를 누비며 바다의 실체를 캤다.
1만2000해리(2만2224㎞)를 이동하는 여정 속에서 저자는 인신매매와 납치가 벌어지고, 해양 투기, 포경, 매춘 등 바다와 그 인근에서 자행되는 불법 행위를 목격한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바다에서 100마일(약 160㎞) 내에 살고, 우리는 바다의 도움 없이 하루도 살 수 없음에도 바다에 대해선 충격적으로 아는 게 적다”고 말하는 저자는 낭만으로 포장됐던 바다가 실은 무법지대라고 고발한다.
바다 위의 생명의 값은 물고기와 사람 모두 저렴하다. 캄보디아·미얀마인들은 사기꾼에 속아 태국 어선에서 강제로 일한다. 작업 중 손이 잘리거나 구타당하는 건 기본이고, 말을 듣지 않았다고 죽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공간 낭비를 줄이고자 지느러미를 절단한 상어는 도로 물속에 던져지고, 헤엄칠 수 없는 상어는 밑바닥에 가라앉아 서서히 질식사한다. 해마다 이렇게 학살당하는 상어가 9000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된다.
바다는 환경의 사각지대이기도 하다. 수 세기 동안 인류는 바다가 만물을 흡수하고 또 소화하는 무한한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고, 석유와 오물, 사체, 화학적 발산물, 생활 쓰레기를 바닷속으로 퍼붓고 있다. 저자는 이런 바다를 두고 “숨이 멎도록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암담한 비인도적 행위가 난무하는 디스토피아적 공간이다. 바다에서 법은 존재감조차 미미하다”고 지적하며 보호받지 못하는 바다와 사람들의 혼란과 고통을 직시할 것을 촉구한다. 784쪽, 3만2000원.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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