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시골에만 있다?… 우리가 몰랐던 ‘도시 생태계’[북리뷰]

2023. 9. 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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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반 정글
벤 윌슨 지음│박선령 옮김│매경출판
홍콩 마천루 속 벵골보리수부터
송골매가 몰려드는 맨해튼까지
아스팔트서도 식물은 진화·번성
생명의 적대적 장소 인식된 도시
산업혁명에 찌든 19세기적 발상
고정관념 깬 자연 공생방법 소개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은 흔히 도시와 자연이 완전히 나뉜다고 생각한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도시와 드넓은 초원과 펼쳐진 숲, 동식물이 넘치는 자연은 양립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야생의 자연 없이 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회색 도시를 건설하면, 자연은 그 안에서 녹색 생태를 새롭게 이룩한다.

동네만 산책해도, 수없이 야생 식물과 마주칠 수 있다. 포장도로를 비집고 솟아난 풀들, 방음벽의 좁은 틈새를 뚫고 나온 덩굴들, 도로변에 좁게 쌓인 흙더미에서 자라는 꽃들, 빈터마다 치열하게 자라나는 잡목들……. 아스팔트도, 콘크리트도 도시에 적응해 진화하는 식물들의 번성을 막지 못한다.

‘어반 정글’에서 영국 작가 벤 윌슨은 도시와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고대 바빌론의 공중 정원에서 현대 뉴욕의 프레시 킬스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와 풍부한 사례를 통해서 그는 인간 문명과 야생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 생태계의 눈부신 역동성을 보여 준다.

도시와 자연은 대립적이지 않다. 홍콩은 마천루와 벵골보리수 수천 그루가 공존하는 공중 숲의 도시이고, 뉴욕엔 요세미티 국립공원보다 더 많은 생물종이 살고 있다. 멜버른 등의 도시들은 회색머리날여우박쥐 등 숱한 멸종위기종을 품고 있고, 뉴욕 맨해튼엔 송골매가 몰려들어 서식 중이다. 여우, 너구리, 코요테, 방울새, 지빠귀 등도 도시 이주에 성공했다. 도시에 적응한 식물종도 빠르게 늘고 있다.

야생성은 현대 도시의 특징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도시를 생명에 적대적인 죽음의 장소에서 자연보전을 위한 핵심 장소,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 공간으로 재구축하려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21세기 생물 다양성의 핵심은 농지나 자연보호지구가 아니라 도시 자체에 달려 있다.

도시와 자연이 공존할 수 없다는 발상은 19세기적 발상이다. 산업혁명 이후 공해에 찌든 도시에 살면서 사람들은 자연에서 친밀함보다 불길함을 느꼈다. 더럽고 냄새나는 하수구, 오염된 검은 강물, 구부러지고 뒤틀린 동물들, 유독해져 먹지 못할 식물들은 질병을 퍼뜨리고 죽음을 유발했다. 이로부터 도시 내 자연에 대한 혐오가 생겨났다.

무성한 식물은 문명 몰락의 끔찍한 증거였다. 숱한 SF 소설은 무너진 건물을 덮은 덩굴과 잡초를 지구 종말의 풍경화로 그려냈다. 사람들은 도시엔 박멸해야 할 가짜 자연만 있을 뿐, 진짜 자연은 멀리 떨어진 시골에만 존재한다고 믿었다. 제초제, 전기톱, 잔디깎이를 사용해 식물이 멋대로 번성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건 도시 행정의 주된 업무였고, 야생을 말끔히 제거하고 공원같이 잘 정비된 자연 공간을 마련하는 건 도시 발전의 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풀밭과 숲, 습지와 삼각주 등과 거기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명체를 잃어버린 도시들은 생태 위기에 취약하고 기후 재앙에 무방비했다. 배후 습지를 제거한 뉴욕은 잦은 홍수에 위협받고, 주변 숲을 걷어낸 베이징(北京)은 먼지 폭풍에 시달렸다. 날로 심해지는 폭염, 산불, 가뭄 등이 자연과의 공생에 실패한 여러 도시를 위협하고 있다. 앙코르와트나 마야 티갈에서 사람들이 번영했던 도시를 버렸듯, 현대 초거대 도시도 재해를 처리할 방법을 못 찾으면 머지않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 싱가포르, 암스테르담, 베를린, 코펜하겐처럼 생물 다양성에 매력을 느끼고 자연과 공생할 길을 찾아낸 도시들이 늘고 있다.

1965년 독립했을 당시 싱가포르는 황폐한 농장, 심각한 오염, 더러운 슬럼가, 썩은 강 등 식민 시대 생태 유산에 시달렸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이 도시를 거대 정원 도시로 가꾸는 데 성공했다. 고층 건물 위로 흘러내리는 무성한 나뭇잎, 다리나 도로 구조물에 매달린 꽃 등 도시 표면의 56%를 녹지로 만든 것이다. 열두 그루의 슈퍼나무가 들어선 싱가포르 인공식물원 바이 더 베이는 첨단기술을 활용한 전범이 되었다. 버려진 공장을 수경 재배 농장으로 바꾼 뉴어크, 산업 부지를 자연공원으로 탈바꿈한 베를린, 빗물 관리를 위해 딱딱한 도로 표면을 녹지로 조성한 코펜하겐 등도 마찬가지다.

인류사 내내 도시는 혁신의 꽃이었다. 옥상 전체를 정원으로 만들고 자투리땅에 야생 생태계가 자리 잡게 내버려 두는 등 아이디어와 노력을 집약해 도시가 지구 건강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도록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384쪽, 2만4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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