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나누며 되새기는 공동체의 이상형…‘라다크’의 공유 실험

오윤주 2023. 9. 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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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가덕시동길에 공유마켓 라다크가 있다.

공유밥상은 라다크 김 촌장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김 촌장은 "라다크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 의 배경이 된 인도이면서 티베트 전통을 따르는 히말라야 고산의 작은 마을"이라며 "산업화로 옛 모습이 망가졌지만, 자급자족하고 나누는 공유 공동체의 이상형으로, 미래에 다시 찾고 싶은 삶의 모습"이라고 했다.

라다크는 쓰다 남거나, 쓰지 않은 물품을 모아 필요한 이들과 나누는 공유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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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모 라다크 촌장(맨 왼쪽)과 주민 등이 지난달 30일 라다크 공유밥상을 즐기고 있다. 오윤주 기자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가덕시동길에 공유마켓 라다크가 있다. 청주 시내 중심가에서 15㎞, 차로 30분 남짓 달려야 하는 한적한 시골이다. 이곳에선 수요일 저녁마다 공유밥상이 차려진다. 누구나 주인이 되고, 손님이 되고, 조리사가 돼 밥상을 차리고, 먹고, 마시고, 나누고, 치우고 가면 그만이다. 공간도, 재료도, 조리기구도 모두 공유한다.

공유마켓 라다크. 오윤주 기자

지난달 30일 저녁 6시 무렵 라다크를 찾았다. 이날로 73번째 공유밥상이 차려졌다. 굵은 빗줄기를 뚫고 하나둘 라다크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청주에서 어린이집을 하는 백광옥(57)씨는 낮부터 라다크에서 음식 준비를 했다. “오늘 특별 요리는 조기구이입니다. 20여마리 넉넉히 구울 테니 많이 드셨으면 좋겠네요.” 잠시 뒤 서울에서 귀농해 마을에 자리잡은 안현수(72)씨가 검은 봉지에서 막걸리를 꺼냈다.

김윤모(62) 라다크 촌장이 “고기 좀 사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자, 누군가 “연잎에 찌는 게 좋지”라고 바로 대꾸한다. 농자재 공급 일을 하는 류대현(60)씨다. 그가 라다크 옆 연밭에서 연잎을 한아름 끊어 와 고기를 찌기 시작했다. 라다크 주변 논밭엔 호박·고추 등 식재료가 넘쳐난다. 그사이 마을 토박이 변학섭(61)씨는 평소 공유카페로 쓰는 홀에 식탁을 차린다. 변씨가 “누구 김치 없나”라고 묻자, 안현수씨가 “내가 가져올게”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모든 일이 뚝딱뚝딱, 일사천리로 풀린다.

라다크 옆 연밭. 오윤주 기자
김윤모 라다크 촌장(맨 왼쪽)과 주민 등이 지난달 30일 라다크 공유밥상을 즐기고 있다. 오윤주 기자

한시간 남짓 준비 끝에 밥상이 차려졌다. 평소엔 10명 안팎이 모이지만 이날은 단출하다. 식탁 위로 오송 참사, 수해 복구, 농사 작황·판로 등을 주제로 한 대화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두시간쯤 지나 식사가 끝날 무렵 조금 늦게 온 이준희(61)씨가 “오늘은 내가 설거지 당번”이라며 빈 그릇을 모은다. 그사이 류씨가 카페 공간으로 들어가 익숙하게 커피를 내렸다.

공유밥상은 라다크 김 촌장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밥 같이 먹는 이가 식구이듯이 공유의 출발을 밥으로 봤어요.” 김 촌장은 장애인보호작업장 ‘춤추는 북카페’ 대표이기도 하다. 2012년부터 청주 사창동에서 운영해온 작업장을 2020년 5월 이곳으로 옮겼고, 한편에 라다크를 열었다. 김 촌장은 “라다크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의 배경이 된 인도이면서 티베트 전통을 따르는 히말라야 고산의 작은 마을”이라며 “산업화로 옛 모습이 망가졌지만, 자급자족하고 나누는 공유 공동체의 이상형으로, 미래에 다시 찾고 싶은 삶의 모습”이라고 했다.

김윤모 라다크 촌장이 기부 물품 등을 정리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공유마켓 라다크에 모인 신발. 오윤주 기자

라다크는 쓰다 남거나, 쓰지 않은 물품을 모아 필요한 이들과 나누는 공유 공간이다. 1층에 카페, 2층엔 목공소도 공유한다. 카페는 북카페 형태인데, 기부·후원 등으로 모였다 나간 책이 1만여권이다. 카페 옆 공간에선 옷·신발·가전제품·운동기구 등이 새 쓰임새를 찾곤 한다. 기부·후원을 하면 공유화폐 ‘라다크’를 발행하는 데 이 화폐로 라다크 안 물품을 살 수도 있다.

라다크 회원은 3년 사이 2700여명으로 불었다. 김 촌장은 “물건뿐 아니라 재능·시간·경험 등 모든 것을 기부·후원받고 있다. 빈부 격차 등 양극화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은 공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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