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후배들 힘내라!"'사라예보金 50주년'이에리사 전의원,1억원 기부 '레전드의 품격'[단독]
"내 삶의 모든 것은 탁구로부터 받은 것이다. 평생 받은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다."
'사라예보의 전설'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69·이에리사휴먼스포츠 대표)이 세계선수권 우승 50주년을 기념, 중고 탁구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1억원을 기부한다.
이 전 의원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이자 레전드다. 1973년 정현숙, 박미라, 김순옥과 함께 나선 사라예보세계탁구선수권 단체전에서 구기 종목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의원은 19세의 나이로 단식 19전승 신화를 쓰며 최강 중국, 일본을 줄줄이 꺾고 첫 세계 정상에 섰다. '최초' '최고'의 길은 선수 은퇴 이후에도 이어졌다. 국가대표 감독, 용인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며 여성 체육인 첫 태릉선수촌장, 첫 국회의원을 역임한 '세계 챔피언'은 2017년 이에리사휴먼스포츠를 설립해 체육인 선후배들과 함께 사회 곳곳에서 스포츠의 가치를 나누는 일을 묵묵히 실천해왔다.
1969년 11월 23일, 제23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 여자단식 결승에서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이 의원은 실업팀 대선배 김인옥을 2대1로 꺾고 우승했다. 이후 1975년까지 단 한번도 정상을 놓치지 않았다. '종합선수권 7연패'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대기록이다. 이 의원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탁구를 시작했다. 대전중에 다니던 오빠를 따라 남자선수들과 탁구를 쳤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목포 전국대회 출전비를 달라고 울고불고 했던 기억도 난다. 서산군수셨던 아버지가 서울 유학을 적극 밀어주셨고 서울 문영여중으로 스카우트되면서 나의 '무적탁구'가 시작됐다. 중3때 국가대표 언니들을 다 이기고 종합선수권에서 우승했고, 천영석, 손병수 선생님 등 열성적인 지도자들 덕분에 열아홉 살에 당시 최강이던 일본 탁구를 이기고 세계를 제패했다"고 그 시절을 돌아봤다. 이 의원은 "탁구의 전성기는 15~19세"라고 단언했다. "나뿐만 아니라 세계 정상에 오른 현정화, 양영자, 유남규, 유승민 다 그렇다. 고등학교 때 전성기가 와야 한다. 지금 중고 후배들이 더 성장하고 이중 톱클래스 선수가 나와야 한다"면서 "중고 선수들의 사기를 올려주고 싶다. '충분히 할 수 있다. 힘내라'는 뜻"이라며 대선배의 응원을 전했다.
이 의원은 " 50주년에 누군가 뭘 해주기 바라기보다 내 스스로 기념하고 자축하는 축제를 만들고 싶다. 지난주 이에리사배 주니어 대회에서 꼬마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이 흐뭇했다. 중고연맹 장학금을 기부한 후 16일 미국 오렌지카운티에서 사라예보 50주년 이에리사배 대회를 위해 출국한다. 미국 교민들과 함께 하는 축제"라며 미소 지었다. 이어 이 의원은 "기부가 다른 선배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조심스럽고 주저하는 마음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탁구에 대한 보답과 함께 후배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싶었다. 내 책 '페어플레이'에도 썼듯이 표적이 되는 삶, 후배들의 길이 되고 힘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이 의원은 최근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을 만나 기부의 뜻을 전했다. '레전드' 이 의원의 기부는 탁구계뿐 아니라 한국 체육계를 통틀어 보기 드문 '어른'의 행보다. 평창아시아탁구선수권,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열리고 내년 2월 탁구인의 숙원인 부산세계선수권을 앞둔 시점, 레전드 선배의 응원은 후배들에게도 큰 힘이다. 유승민 회장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내년 부산세계선수권을 앞두고 50년 전 세계를 제패하신 대선배 이 의원님의 귀한 뜻이 중고 후배들을 위해 잘 쓰여지도록 하겠다"며 고개 숙였다.
50년 전 압도적 실력으로 세계를 호령한 레전드에게 여자탁구를 위한 조언도 부탁하자 이 의원은 "운동은 수없는 반복훈련과 땀, 눈물의 결실이다. 땀 없이 좋은 결과는 없다. 한결같은 노력 없이는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없다"는 기본으로 답했다. "어린 선수들의 부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훈련방법, 프로그램, 철저한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다. 여자탁구의 저변이 탄탄해지려면 각 실업팀에서 중고 선수들의 훈련과 성장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도 했다. "학교체육진흥법 제정이후 학원 스포츠는 오히려 몰락이다.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협회, 기업, 국가가 적극 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엘리트 체육이 1964년 도쿄올림픽 몰락 이후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되살아났듯이 우리도 40~50년이 걸릴 수 있다"면서 "공부와 운동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극단적인 전시행정에 우리 아이들이 희생된다. 운동, 공부 둘다 완벽하지 않아도 서로 밸런스를 맞춰주고 잘 지원해주면 된다. 어른들이 시스템을 만들어주면 아이들은 절로 따라온다. 운동하는 아이들에 대한 지원책 없이 획일화된 테두리만 강요하면서 학원 스포츠가 추락하고 있다. 재능을 키워주고 밀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여성 체육 리더로서 후배들을 향한 따뜻한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꼭 말해주고 싶은 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성과 능력, 네트워크를 갖추고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어야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 후배들이 야심과 목표를 가졌으면 좋겠다. 안주하지 말고 들어앉지 말고 흐름을 놓치지 말고 성장하고 도전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여성 후배들이 체육계에서 한낱 '양념'이 아닌 한 사람의 체육인으로 또렷한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과감하게 도전하라. 당연히 난관은 있을 것이다. 그걸 뚫고 나가야 능력 있는 것이고, 이뤄내야 이기는 것이다. 거기까지 가지도 않고 불평만 해선 소용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이 의원은 할 말을 했다.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여성 후배들이 더 많은 기회를 받기 위해선 윤석열 대통령도 언급하신 체육계 인적 카르텔을 반드시 깨야 한다. 해묵은 인적 카르텔과 조직을 쇄신하지 않고는 여성 후배들의 기회도, 체육계 발전도 기대하기 힘들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 의원은 "선배 체육인으로서 지금껏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왔다"면서 "앞으로도 늘 옳은 길을 걷고, 사회에서 책임 있는 모습으로 후배들의 길이 되고 본이 되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답했다. '사라예보 챔피언'의 마지막 한마디는 한국 탁구를 위한 응원이었다. "안방에서 열리는 평창아시아선수권, 부산세계선수권이 한국 탁구가 다시 우뚝 서는 계기가 됐음 좋겠다. 우리 탁구는 늘 어려운 가운데서 뭔가를 해냈다. 대한민국 여자탁구가 다시 정상에 서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한편 대한탁구협회는 중고탁구연맹과 함께 9일 오후 평창아시아탁구선수권 시상식 현장에서 이 의원의 장학금 기탁식을 가질 예정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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