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깊은 곳에 다녀온 남자

서울문화사 2023. 9. 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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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중 가장 깊은 바다까지 다녀온 과학자가 바다에서 꺼내온 보물 같은 이야기.
2004년 심해를 탐사한 노틸호의 모습. 김웅서가 2004년 당시 직접 촬영했다. 원통형의 외피 안에 공 모양의 주거구가 보인다.

2023년 6월 말 타이타닉의 잔해를 구경하러 갔다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오션게이트의 타이탄호 사건이 있었다. 온갖 뉴스가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가 사라지는 시대다. 그런 만큼 오션게이트 뉴스도 많은 사람들의 눈에 잠깐 띄었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우리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됐을까? 심해로 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한국에서 가장 깊은 바다에 다녀온 사람은 누구일까? 수소문 끝에 한국에서 가장 깊은 바다에 다녀온 이와 연락이 닿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10대 원장 김웅서 박사, 그가 2004년 해저 5,000m까지 다녀왔다.

김웅서와의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 인터뷰는 만남 전에 보낸 질문지의 답변이었다. 김웅서는 ‘만났을 때 인터뷰에 도움이 되기 위해’라고 했지만 이미 거의 완성된 원고 수준의 답변을 보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서면으로 나눈 첫 번째 인터뷰다.

어떻게 2004년에 심해에 다녀오시게 되었나요?

저는 프랑스 국립해양개발연구소가 보유한 ‘노틸호’에 탑승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와 프랑스가 협력 심해 광물자원 탐사 연구를 진행했는데, 향후 자원을 채광할 때 심해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과학적 자료를 얻는 것이 주 탐사 목적이었습니다. 채광 예정 지역의 심해 환경을 조사하고, 퇴적물과 생물을 채집해 생태계를 파악했습니다. 그때 수심 5,000m가 넘는 북동태평양의 심해저평원 바닥까지 내려갔죠. 노틸호 모선 아탈랑트호는 2014년 5월 18일 멕시코의 만사니요항을 출발해 태평양을 가로지르며 6월 28일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 누메아항에 입항하였습니다. 한 달 반을 태평양에 떠 있었던 거지요.

박사님께서 ‘해저 5,000m까지 잠수한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기록이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습니까?

네. 한국인 가운데 아직까지 더 깊이 들어간 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4년이면 거의 20년 된 과거입니다. 그동안 한국의 각종 연구 역량과 성적도 많이 좋아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박사님의 기록이 깨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선은 우리나라가 6,000m 이상 잠항 가능한 과학탐사용 심해유인잠수정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서일 겁니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중국이 보유한 심해유인잠수정을 타야 하는데 그 기회를 얻기가 쉽지는 않지요. 유인잠수정을 타고 심해에 직접 들어가 탐사하는 것이 위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학자 입장에서는 위험하더라도 유인잠수정을 타고 직접 탐사하는 것이 장점이 있다고 봅니다. 현장감을 느끼면 과학적 호기심을 풀어나가는 데도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2004년 해저 탐사 당시의 일들이 여전히 많이 기억나십니까? 두렵지는 않으셨습니까?

그럼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었기 때문에 약 20년 전 일이지만 기억이 생생합니다. 잠수정을 타고 수천 미터 바닷속으로 들어가는데 두려움이 조금도 없을 수야 없죠. 잠항 준비를 할 때 동료들이 유서는 써놓았느냐고 장난스럽게 물어보기도 했고요. 저는 과학자의 호기심과 모험심이 심해 잠수의 두려움보다 훨씬 컸기에 공포를 크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해양과학자는 다른 분야의 과학자와 달리 연구 대상이 바다이다 보니 험한 파도에 맞서는 기개와 탐험 정신이 없으면 연구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재 한국의 해저 탐사선 제작 기술은 어느 정도나 발전했습니까?

전 세계적으로 수심 6,000m 이상 심해를 과학적으로 탐사할 수 있는 심해유인잠수정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1964년), 프랑스(1984년), 러시아(1987년), 일본(1989년), 중국(2010년)입니다. 우리나라는 프랑스가 6,000m급 심해유인잠수정 노틸을 만들 당시 250m까지 잠항 가능한 ‘해양 250’을 만들기 시작해 1986년 건조를 완료하고 1996년 12월 퇴역했습니다. 2013년에는 심해 6,500m까지 잠항 가능한 유인잠수정 기획 과제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예산타당성 과정에서 기술성 평가는 통과했는데 경제성 평가를 넘지 못했습니다. 이는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6,000m급 심해유인잠수정을 세계에서 6번째로 건조할 수 있는 과학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해유인잠수정은 과학 탐사, 자원 개발, 심해 공간 활용에서 꼭 필요한 장비입니다.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심해 탐험이 부담스럽거나 두렵지는 않으셨습니까? 미리 운동이나 준비 등을 하셨습니까?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는 우주인처럼 특별히 훈련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심해는 압력이 높지만 잠수정 내부는 대기압 상태가 유지됩니다. 잠수정을 타기 위해 꼭 필요한 요건은 폐쇄공포증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잠수정은 사람이 타는 거주구의 지름이 2m도 안 될 만큼 좁습니다. 이 공간에 3명이 타고 10시간 정도 탐사를 하니 폐쇄공포증이 있으면 탈 수 없습니다. 잠항을 위한 사전 교육과 비상시 대처 요령 등은 충분히 숙지합니다. 잠수정 안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 전날부터 커피 등 이뇨 작용을 하는 음료를 마시지 않는 등의 사전 준비도 필요합니다.

심해에 다녀오신 뒤 건강에는 무리가 없으셨습니까?

심해 잠수를 하면 거주구 안에서 대기압보다 약간 높은 압력을 받습니다만 건강에 문제는 없습니다. 나중에 잠수정의 해치를 열 때 압력 차이로 귀가 멍멍한 정도, 우리가 비행기 여행할 때 느끼는 정도가 신체적으로 느껴지는 변화였습니다. 심해에 다녀오고 샤워를 하며 어지럽긴 했지만, 긴장한 채 추운 곳에 오랫동안 있다가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더운 물로 샤워해서 그랬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바다 탐사를 하면 몸은 고달파도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하는 ‘물멍’이 정신 건강에는 아주 좋습니다.

잠수를 준비하는 노틸호의 모습.
탐험을 끝내고 배로 올라온 과학자들.
해저 5,000m 심해에서 시료를 확보하는 모습. 조명을 켰기 때문에 밝지만 실제로는 암흑이다.
해저에 묻혀 있는 심해 생물.
시력이 퇴화되어 눈이 없는 심해 물고기. 심해에서는 빛이 없어 시각도 필요하지 않다.
바다 밑바닥에 있는 고래의 턱뼈.
심해에서 식사하는 김웅서의 모습. 화장실이 없으므로 먹는 것도 제한된다. 물이 없다.
탐사선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은 2004년의 김웅서.

그 이후에도 심해에 가신 적이 있습니까?

연구선과 무인잠수정을 이용한 심해 탐사는 2018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원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거의 매년 해왔습니다. 2016년에는 한국 무인잠수정 해미래를 이용해 마리아나 해저분지에서 열수분출공을 발견하고 영상 기록을 남기기도 했고요. 당시 기상 악화 등 변수가 많아 탐사 마지막 날 열수분출공을 찾는 등 극적인 기억이 있습니다.

우주비행사는 우주를 다녀온 이후 세계관이 변했다든지 하는 사례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심해 체험이 박사님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습니까?

심해 체험은 물론 다양한 바다를 탐사하면서 자연 앞에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갖고 살게 되었습니다. 광대한 바다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지만 가장 낮게 자리하며 육지에서 흘러드는 다양한 물을 모두 포용합니다. 아울러 전 세계의 바다는 모두 통합니다. 지구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마리아나해구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됩니다. 누가 어디에 버렸든 인간의 발자취를 잘 허락하지 않던 가장 깊은 바다마저도 쓰레기 문제가 심각합니다. 지금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세계 곳곳이 자연재해에 시달리죠. 기후를 조절하는 곳이 바다입니다. 바다는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습니다. 전 인류가 모두 바다를 아껴야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최근 심해 탐험을 갔다 돌아오지 못한 오션게이트 사건으로 심해 탐험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해당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셨습니까?

타이탄 잠수정 사고가 난 시점에 저는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뉴스를 통해 알았습니다. 그 당시 모르는 전화번호로 갑자기 전화가 많이 왔어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해외 로밍 중이라 받지는 못했습니다. 심해잠수정 사고에 대해 물어보려는 전화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심해 탐사 경험이 있었으니 당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죠. 참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많은 종류의 심해유인잠수정을 직접 보았으나 타이탄은 못 봤어요. 그래서 사고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나름대로 추론해보았습니다. 심해유인잠수정은 사람이 타는 거주구가 고압을 견뎌야 합니다. 그래서 심해유인잠수정은 티타늄 합금 재질로 된 공 모양의 구()형을 띱니다. 사진으로 본 타이탄의 거주 공간은 원통형입니다. 더 많은 인원을 태우기 위해서였겠지만 원통형은 구형보다 압력에 약합니다. 잠수정 선체는 한 번 잠항하고 나오면 높은 압력을 받았다가 이완되므로 선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 잠항할 때 압력에 눌려 부숴질 수도 있죠. 그래서 과학 탐사용 심해잠수정은 잠항 후 유지 보수 관리가 철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타이탄은 티타늄 합금 이외에 탄소섬유를 썼다고 했는데, 성질이 다른 재질을 섞어 쓰면 접합부 등이 취약해질 수 있습니다.

해저 탐험을 마치고 기념 촬영을 한 과학자 일행.

해당 사건 관련해 심해에 다녀온 해양과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셨습니까?

귀국해서 심해유인잠수정 프로젝트를 같이 수행한 이판묵, 전봉환 박사를 만났습니다. 당연히 타이탄 잠수정 이야기도 나왔고요. 공학을 전공한 두 분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탄소섬유는 양쪽에서 당겼을 때 견디는 인장력이 강해도, 양쪽에서 누를 때의 수축력은 약하다고 합니다. 외부에서 강한 압력을 받는 잠수정의 구조물로는 적합하지 않겠죠. 탄소섬유는 가벼우니까 잠수정을 건조할 때 부력 조절 등에는 좋지만, 이런 약점 때문에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역으로 심해 탐험선을 민간단체에서 만드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까?

민간 분야에서도 심해유인잠수정을 만들어 활용합니다.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은 ‘딥시챌린저’라는 1인용 심해유인잠수정을 만들어 수심 약 11,000m의 마리아나해구까지 다녀왔습니다. 미국 탐험가 ‘빅터 베스코보’도 ‘리미팅팩터’라는 심해유인잠수정을 만들어 마리아나해구에 갔고요. 심해유인잠수정은 무시무시한 고압에 견뎌야 하므로, 거주구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평생 바다라는 하나의 주제를 연구해오신 비결은 무엇입니까? 직업의식입니까?

대학교 2학년 때 바다에서 난생처음 본 야광충이 저를 바다의 세계로 인도했습니다. 바다에서 하늘의 은하수를 발견했을 때의 신비 때문에 생물학에 해양학을 얹어서 공부했지요. 어렸을 때 읽었던 쥘 베른의 <해저 이만 리>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해양학이라는 학문이 낯설 때라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받았고요. 저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 바다에 관심이 갔던 것 같습니다. 시간을 따져보면 평생을 바다와 친구로 지내온 셈인데, 단순히 직업의식으로 해양과학자를 했다면 멀미를 하며 바다의 신비를 파헤치는 과정이 무척 괴로웠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바다가 좋아서 시작한 공부였기에 평생 제 일을 즐기면서 바다를 연구하였습니다.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심해에 또 가고 싶습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19년이 지난 2023년의 김웅서. 2023년 초까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원장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여기까지 메일로 이야기를 나누고 스튜디오에서 김웅서 박사를 만났다. 원래 만나려던 날이 태풍 ‘카눈’이 서울에 오는 날이라 날짜를 미뤘다. 바다에서 태어난 태풍 때문에 해양학자를 못 만나다니 여러모로 자연의 힘을 실감했다. 다음 날 김웅서는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평생 현장에서 연구를 했다는데도 신기할 만큼 피부가 좋았고, 인상도 그만큼 좋았다. 다음은 그와 마주 앉아 나눈 두 번째 인터뷰다.

해저 5,000m까지 탐사하셨을 때 한 달 반쯤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더 오래 탐사한 적도 있으세요?

보통 한 달 정도 나가요. 우리가 조사하는 곳은 대부분 하와이에서 동남쪽으로 1,000km쯤 떨어져 있습니다. 하와이까지 비행기로 가서 배를 타고 나갑니다. 하와이에서 출항하는 온누리호는 1천5백 톤인데 극지방에 가는 아라온호는 거의 8천 톤이에요. 제가 2월까지만 해도 그 배들의 선주였어요(김웅서는 올해 2월 퇴임했다). 행정적으로 한국해양과학기술연구원 원장이 선주로 되어 있습니다. 좋은 것만은 아니고 거기서 사고 나면 책임이 선주에게 있어요. 그래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남북극, 인도양, 태평양에서 전화가 오니까요.

저와 사진가도 어선에 타고 취재하다가 멀미로 고생한 적이 있어요. 배멀미 안 하십니까?

술 잘 드세요? 보통 술 잘 마시는 사람들은 멀미를 거의 안 해요. 멀미의 요인도 몇 가지 있어요. 심리적 요인, 소화기관, 귀의 전정기관, 시각적, 후각적인 게 있죠. 멀미를 안 하는 사람은 없어요. 저는 덜 했지만 그래도 배를 타면 이틀 정도는 고생해요.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은 유인심해잠수정 기술력은 있으나 경제성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경제성이 왜 없을까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나로도에서 쏘아 올린 나로호처럼, 과학기술과 경제력을 갖춘 국가들 사이에서는 (첨단 탐사선이) 첨예한 경쟁이에요. 지금은 일본과 중국이 경쟁합니다. 2012년에는 6,500m까지 들어가는 일본의 신카이 6500이 가장 깊이 들어갔어요. 그런데 중국이 좌우룽을 만들어 7,000m까지 들어갔어요. 일본은 11,000m까지 들어갈 수 있는 걸 만들겠다고 하고요. 저도 그 설계도를 봤어요. 잠수정은 구형이 좋은데, 구가 클수록 압력에 취약하니까 마냥 크게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본은 공간을 넓히려고 구 2개를 연결한 디자인을 했어요. 중국은 그 사이에 11,000m 들어가는 ‘펀더제’를 만들었어요. 시진핑 이후 중국이 선두로 치고 나가는 거죠. 한국은 기술성은 다 확보했어요. 예산을 짜보니 필요 예산이 1천2백억 정도인데 경제적 타당성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요. 누리호가 우주로 올라갈 때 국민의 어깨 힘이 팍팍 들어갔잖아요. 심해유인탐사선도 마찬가지로 국민에게 자부심을 줄 수 있죠. 하지만 이런 건 경제성 평가할 때 잘 안 잡혀요.

잠수정 모양이 구형이 좋다면 반원을 2개 만들어 용접을 하나요? 용접 완성도가 정말 중요하겠습니다.

밀도가 정말 고르지 않으면 안 되죠. 힘을 받을 때 골고루 압력이 분산되어야 하니까요. 바다에 들어가 높은 압력을 받았다 올라오면 이완되고, 그러다 보면 금속 피로로 크랙이 생겨요. 그래서 원래는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반드시 비파괴검사를 해야 해요. 잠수정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해요. 들어가면서 압력이 커지면 어느 순간엔가 뭔가 (금 가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어요. 그 소리가 난다는 얘기는 구조물이 압력을 받아 내파가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건데, 그때 무리하면 사고가 나죠. 제가 2004년 탐사한 뒤에도, 나중에 노틸호를 점검하며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금이 갔다고 해서 수리에 들어갔어요. ‘뭐야, 큰일날 뻔했잖아’ 싶었죠.

말씀대로라면 심해유인잠수정이 아주 복잡한 기계라기보다는 노하우가 필요한 기계 같습니다. 소재 기술이 핵심일 수도 있고요.

네 맞습니다. 고압에 견디는 게 핵심이에요. 소재도 중요하죠. 1960년에 만든 잠수정 트리에스테호를 보면 사람이 타는 거주구는 작고 그 위에 거대한 게 달려 있어요. 부력재인 가솔린이 들어 있는 탱크였어요. 지금 잠수정의 부력재는 아주 작아졌어요. 유리로 작은 공을 만들고 수지를 입혀서 단위 부피당 부력을 엄청 견딜 수 있는 소재를 개발했거든요. 그걸 잠수정의 부력재로 쓰고 나서 잠수정이 많이 작아졌죠. 타이탄이 탄소섬유를 쓴다고 한 것도 혁신적인 발상은 맞아요. 다만 그러려면 오랜 실험을 걸쳐서 안정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타이탄은 상업 잠수정이다 보니 철저한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최근 오션게이트 사건도 있었으니 심해의 위험성을 많이 느낄 것 같습니다. 무인탐사정으로 대체하면 안 될까요?

위험하니 무인 연구도 많이 해요. 무인잠수정은 두 가지가 있어요. 모선에서 케이블을 연결하고 배에서 원격조종하는 ROB가 있고, 프로그래밍으로 동선을 지정하면 정한 대로 다니며 작업하는 AUB가 있어요. 유인잠수정은 사람이 타는 공간을 만들어야 하니까 제작이 더 힘들죠. 그런데 축구를 TV로 보는 거랑 경기장에서 보는 건 다르잖아요. 과학자도 같아요. 자기가 연구하는 대상을 멀리서 모니터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느끼며 탐사하는 건 다르죠. 자연과학자는 그 현장감을 굉장히 중시해요. 거기 가서 자기가 직접 두리번두리번 관찰도 하는 느낌을요. 우리나라가 심해유인잠수정을 갖고 있다면 후배 과학자들이 좋은 결과를 많이 냈겠지만 지금은 세계 5개국이 갖고 있는 잠수정을 타지 않으면 심해로 내려갈 기회가 없죠.

박사님은 어떻게 그 기회를 얻으셨습니까?

제가 국제해저기구 법률기술위원을 했거든요. 국제해저기구는 국제법상 공해의 자원을 관리하는 기구예요. 공해의 자원을 확보하는 절차가 있어요. 자원 탐사도 해야 하고, 나중에 자원을 탐사할 때 환경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자원을 개발하는 방법도 연구해야 해요. 그런 걸 연구한 리포트를 축적하면 조사를 하고, 그걸 조사한 뒤 광물자원이 많은 지역을 확보하겠다고 신청해서 통과되면 우리 광구가 되는 거죠. 저는 프랑스의 연구선에 탑승했던 거고요. 우리나라도 1980년대 말부터 거의 20년간 연구해서 북동 태평양에 망간 단괴가 있는 배타적 광구를 확보했죠. 그 면적이 75,000예요. 대한민국 영토 면적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우리 땅이 북동 태평양에 있는 거예요. 한국의 광구는 공해상에 3개 있고 다른 나라 EEZ에도 있어요. 통가, 피지, 남태평양. 거기도 화산 활동이 활발해서 열수광산이 많거든요. 그곳은 해양과학 기술력이 덜하니까 우리가 가서 탐사하고 자원량을 평가하고 나중에 개발해서 수익이 나면 나누는 방식이에요.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해양과학자들이 지금 알게 모르게 하는 일이 많아요. 우리 후손이 잘 살려면 자원을 확보해줘야 하니까요.

김웅서가 2004년 해저 5,000m에서 꺼내온 망간 단괴. 실제 크기는 야구공과 비슷했다. 운석이 그러하듯, 보통 돌에서는 볼 수 없는 반사광을 띤다. 망간 단괴는 중심부에 상어 치아 등의 핵이 있고 그 주변으로 광물이 퇴적되어 만들어진다. 김웅서는 이 망간 단괴의 나이를 1천5백만 년 정도로 예측했다

통가와 피지도 다 가보셨겠네요. 피지는 직항이 있는데 통가는 어떻게 갑니까?

피지에서 갈아타고 통가에 가죠. 직항이 없을 때는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가서 피지를 통해 가고.

모험가의 인생을 살아오셨네요.

여태까지 하늘과 바다에 떠 있는 시간이 육지 밟고 있었던 시간보다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남극과 북극에도 기지가 있으니까요.

마지막 심해 탐사는 언제였습니까?

2016년 마리아나 해저분지 탐사였습니다. 열수분출공 주변 생물을 탐사해야 했는데 이때가 극적이었어요. 망망대해에서 열수분출공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어렵게 찾아서 열수분출공을 확인하면 잠수정을 투입합니다. 그때는 무인잠수정에 문제도 있고, 날씨도 안 좋고, 탐사를 마칠 날은 점점 다가오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탐사할 수 있는 날이 딱 하루 남았어요. 그날도 날씨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고요. 엄청 고민했습니다. ‘사고 나면 내가 책임진다’고 결심하고 탐사대원들을 독려했어요.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해보자고. 그래서 마지막에 잠수정을 집어넣었는데 그걸 찾은 거예요. 그때 다들 껴안고 울고 그랬습니다.

그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곳이 미국의 천연기념물이었거든요. 탐사 6개월 전에 신청서를 냈더니 ‘여기가 미국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서 원래는 탐사할 수 없다’는 답이 왔습니다. 이런저런 부분을 탐사할 거라고 했더니 ‘만약 탐사하다가 열수분출공 등이 파손되면 물어내겠느냐’는 서류가 왔어요. ‘잘못하다가 집 팔고 담보 잡히나’ 하는 생각도 했죠. 그래서 탐사선에는 미국인 감독관도 타서 우리를 감독했어요. 탐사 과정에서 자연물을 건드려 부서뜨리는지 보려고요. 날씨 때문에 배가 너무 흔들리고, 잠수정이 해저 3,000m 이상 아래에 와이어로 매달려 있으니까 조종을 해도 시차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 걱정을 했죠.

해저 5,000m에 내려가셨던 2004년 그날도 딱 날씨 조건이 맞아서 가능했다고 하셨죠.

인간이 과학기술로 못할 게 없는 것 같아도 해양 탐사는 바다가 허락해주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요. 해양 여건이 나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항상 그게 조심스러운 거고요.

심해 연구를 떠나는 과학자들만의 기념품. 스티로폼 컵을 잠수정에 매달아두고 심해 탐사를 한 후 해수면으로 올라오면 해저의 압력 때문에 커피숍 테이크아웃 컵만 하던 스티로폼 컵이 성인 엄지손가락만큼 작아져 있다. ‘너드’ 같은 면이 있으나 귀여운 기념품이다.
심해 연구를 떠나는 과학자들만의 기념품. 스티로폼 컵을 잠수정에 매달아두고 심해 탐사를 한 후 해수면으로 올라오면 해저의 압력 때문에 커피숍 테이크아웃 컵만 하던 스티로폼 컵이 성인 엄지손가락만큼 작아져 있다. ‘너드’ 같은 면이 있으나 귀여운 기념품이다.
2004년 아탈랑트호에 탑승한 과학자들에게 나눠주었던 기념 USB 메모리. 김웅서는 실제로 이 USB 안에 데이터를 넣어 왔다.

기초 해양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어디에 좋습니까?

바다에서 얻는 게 굉장히 많아요. 생물자원, 광물자원, 에너지 자원, 물 자체의 수자원, 바다 공간 등이 있겠죠. 그 자원을 현명하게 활용하려면 과학 기반이 튼튼해야 해요. 식량자원은 관리만 잘하면 화수분이에요. 먹어도 계속 번식하니까. 그 자원을 관리하려면 생물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있어야죠. 해양생명공학 면에서는 해양생물이 함유한 물질의 가치도 굉장히 많아요.

해양생물이 육상생물보다 과학적 가치가 더 있습니까?

육상생물은 포식자가 따라오면 여러 곳으로 숨을 수 있죠. 하지만 망망대해에서 작은 물고기가 쫓길 때 할 수 있는 방법은 몸의 독을 풀어서 못 먹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해양생물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독을 가지고 있어요. 그 독이 어딘가에 쓸모 있는 화학물질이 되죠. 우리가 먹는 약은 독 성분의 농도를 적당히 중화해 우리에게 영향은 없지만 우리 몸속 박테리아 등을 죽이는 거니까요. 해양생물이 지닌 독을 의약품으로 개발할 수 있고, 실제로 개발된 사례도 많아요. 화장품이나 건강보조식품으로도 쓰고요. 예를 들어 불가사리에는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이 들어 있어요. 그렇게 과학이 바탕이 되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가치도 늘어나죠.

최근 임기를 마치고 은퇴하셨습니다. 과학자 인생을 자평하신다면요?

임기 마지막에 원장 출마를 했어요. 평생 몸담아온 기관을 위해 사심 없이 남의 눈치 안 보고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가 안산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던 때였어요. 이전 과정에서 혼란이 있었고, 그때 원장에 취임했어요. 어느 누구라도 그런 시기에 하면 쉽지 않아요. 여러 수습과 마무리를 하는 동안 연구 건물, 탐사선, 인도네시아 센터도 만들었죠.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린 적도 있었고요. 그걸 잘 마무리하고 변호사가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했지만, 공공기관장이 그런 걸 문제 삼고 싸우기 시작하면 기관이 망가지잖아요. 임기가 4년인 사람이 4년 9개월을 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아줄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내가 몸담았던 곳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던 것, 그게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트레스를 받아도 바다에 나가면 행복해요. 바다를 보고 있으면 갈등이 없어지고 포용력도 생겨요.

연구자라기보다는 행정가의 이야기를 하시는 점이 의외입니다.

과학자로서 논문이야 기본적으로 써야 하는 거고, 해양 생태계를 연구할 때 생태계의 기능을 보는 방법론의 씨를 뿌렸다고 생각해요. 심해 탐사의 중요성을 알린 것도 의미 있었습니다. 이제는 정부도 심해 탐사가 중요한 걸 알아요. 해양에 대한 책을 써서 사람들에게 바다의 재미를 알리려고도 했고요. 그래도 한 번 사고가 나면 국민이 바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죠. 그게 마음이 아파요. 앞으로는 바다에 대해 재미있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 국민이 바다를 사랑할 수 있게, 바다의 친구가 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평생 바다를 배웠는데 아직 바다가 좋으세요?

그럼요. 기회만 되면 바다에 나가려 해요.

Editor : 박찬용 | Photography : 김웅서(2004년 남태평양), 신동훈(2023년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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