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가득 불면의 날에도 한결같이 아름다운 문장[작가의 서재]

2023. 9. 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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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잘 못 자는 편이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자야 한다던데, 내게 그런 날은 아주 운이 좋은 경우로 일 년 동안 손으로 꼽을 만큼 적다.

"이혼, 저버림, 받아들일 수 없고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 끊임없이 움직이는데도 차오르는 권태. 충돌, 상실, 반란, 절박한 변화로 흔들리는 슬프고 격렬한 중년의 나날들"처럼 시나 아포리즘 같기도 한 문장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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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서재

평소 잘 못 자는 편이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자야 한다던데, 내게 그런 날은 아주 운이 좋은 경우로 일 년 동안 손으로 꼽을 만큼 적다. 대개 나의 밤은 짧은 쪽잠과 불면으로 이루어진다. 책과 영화가 좋은 벗이 돼 줄 때도 있지만 가끔은 기억이나 꿈, 상상 등으로 언제 찾아올지 모를 아침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럴 때의 기억은 순차적이지 않다. 잊고 지낸 것들이 갑자기 떠오른 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잠 못 드는 밤’은 불면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이다. ‘뉴욕리뷰오브북스’의 공동창간자인 엘리자베스 하드윅의 세 번째 장편인 이 책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불면의 밤을 그대로 따라간다. 앞선 나의 사례와 같이 기억의 편린과 지나가 버린 많은 것, 그에 대한 회한과 연민, 어디선가 만나고 전해 들었던 수많은 이에 관한 이야기가 조각보처럼 맞물리며 저자의 과거를 쌓아 올린다.

따라서 종종 소설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특정한 플롯이나 줄거리라고는 없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직접 경험했는지 전해 들었는지, 기억인지 상상인지 모를 단상들이 순서도 맥락도 없이 제시된다. “이혼, 저버림, 받아들일 수 없고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 끊임없이 움직이는데도 차오르는 권태. 충돌, 상실, 반란, 절박한 변화로 흔들리는 슬프고 격렬한 중년의 나날들”처럼 시나 아포리즘 같기도 한 문장으로 가득하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얼핏 연결되지 않는 듯 보이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눈을 뗄 수 없는 까닭은 그와 같은 문장이 한결같이 아름답고 쓸쓸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존하는 어떤 미국 작가보다 아름다운,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한다”는 수전 손택의 설명처럼 “거듭되는 끈질긴 희망” “이제는 없는 ‘우리’”와 같이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시간과 감정의 흐름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표현과 문장은 하드윅이 공유하고자 했던 기억과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결핍의 도시인 뉴욕에 살았던 외롭고 불행한 인물들, 견딜 수 없는 상실과 환멸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 망가지고 추락하고 실패했던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가득한데, 마치 저자 스스로에 대한 투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드윅 자신을 포함해 불행을 겪은 이들에 관한 기억으로 주로 채워져 있으나 그렇다고 이 책이 내내 어둡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외롭지만 항상 외롭지는 않았다”는 문장처럼, ‘잠 못 드는 밤’에는 고독하고 쓸쓸한 기억 사이사이 두려움을 모르는, 쉽사리 파괴되지 않는 순결하고 순수한 시선이 함께 깃들어 있다. 과거를 그대로 수용하고 직시하는 날카로운 관조와 용감한 태도 때문일까. 하드윅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잠 못 드는 밤은 끝나고 아침이 밝아 있다.

한승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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