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사람 사는 이야기 가득한 광주예술가유람
(광주=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독일 사상가이자 문예평론가 발터 벤야민은 "도시는 거대한 이야기책이다. 그 이야기는 걷는 자에게만 읽힌다"고 했다.
광주광역시 도심관광트레일은 광주 사람들의 이야기가 밤하늘의 별처럼 촘촘히 박힌 길이다. 1코스 김현승플라타너스길, 2코스 광주예술가유람길, 3코스 정율성음악산책길, 4코스 K-POP스타골목길, 5코스 민주열사오월길 등 5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군부 쿠데타를 막고자 일어선 민중, 예술가, 외국 선교사 등 숱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펼쳐지는 이 길들이야말로 읽을거리 가득한 책이다.
살아있는 역사…5·18 민주화운동
광주도심관광트레일 5개 코스는 모두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1980년 신군부의 권력 찬탈을 막아섰던 광주 시민들의 최후 항전지였던 옛 전라남도 도청 자리에 설립돼 있다. 광주의 길들은 옛 도청으로 통하고 있었고, 광주라는 거대한 이야기책은 5·18 민주화운동을 빼놓고는 성립하기 어려웠다.
현대 한국 역사와 가장 내밀하게 연결되는 도시는 어디일까. 각자의 시각과 기준에 따라 대답은 다양할 수 있겠으나 '광주'라는 답변에 수긍하는 이가 적지 않을 듯하다. 43년 전 5·18의 아픔은 한국 국민과 광주 시민의 기억 속에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이다. 당시 숨진 민간인이 정확히 몇 명인지,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의 진두 지휘자는 누구인지, 시민에게 발포 명령을 내린 자는 누구인지 등 규명해야 할 숱한 의문이 숙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순신은 1592년 임진왜란(단순한 왜군 침입이 아니라 조선, 명나라, 일본이 전쟁을 벌였다는 점에서 요즘 학계에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합해 동아시아 7년 전쟁이라고 부르는 추세인 듯하다)이 발생하고 나서 1년쯤 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라고 했다. 호남이 없다면 국가도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호남 민중의 항일과 단결, 지원을 전제하지 않은 이순신의 승리란 가능하지 않았던 데서 연유한 말로 생각된다. 임진왜란부터 19세기 말 동학혁명,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5·18까지 호남과 광주의 저항 정신에 한국 역사가 지고 있는 빚은 작지 않은 듯하다.
도심관광트레일 중 2코스 광주예술가유람길은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출발해 3갈래로 뻗어나간다. 1구간은 예술의 거리∼금호시민문화관∼대인예술시장으로 이어진다. 2구간은 양림마을∼박구환갤러리∼한희원미술관∼이이남미술관∼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이강하미술관∼칠보공예관∼515갤러리이다. 3구간은 의재미술관∼춘설헌∼의재묘소∼전통문화관으로 연결되는데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의재미술관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편리하다. 안내서에 예술가유람길은 '총길이 5.5㎞, 6시간 소요'라고 소개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 걸어보면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여기저기 널린 이야깃거리에 몰입하다 보면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세계 최대 규모 복합 문화공간…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전당은 몇 가지 점에서 특별했다. 무엇보다 5·18항쟁의 무대로서 갖는 역사성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옛 전남도청, 5·18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됐던 상무대, 5·18민주광장과 분수대, '민주의 종'은 전당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콘크리트 건물인 옛 도청 외벽에는 총탄 자국을 알려주는 표시가 부착돼 있었다. 전당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전일빌딩245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빌딩의 고층으로 올라가면 아래로 전당과 민주광장이 내려다보이고, 위로는 무등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이 빌딩의 이름은 헬기 사격 등으로 인한 총탄 자국 245개가 발견된 데서 유래한다.
건축 측면에서도 전당은 특이했다. 겉에서는 전당의 전체 면모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전시, 공연 공간이 지하에 구축돼 있고 지상으로는 그저 5·18 사적과 공원이 드러나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 무슨 대단한 문화 공간이 있으랴 싶었지만, 내부로 들어가니 공연, 전시, 체험, 휴식 공간과 도서관이 상상 이상의 규모로 전개됐다.
전시의 내용과 수준은 관람객을 압도했다. 7∼9월에는 2023 ACC 콘텍스트 <걷기, 헤매기>, 몰입미감-디지털로 본 미술 속 자연과 휴머니즘, 사유정원 상상 너머를 거닐다, ACC 아시아네트워크 <일상첨화>, 2023 민주 인권 평화 네트워크 특별전 <아로새김> 등 20건에 육박하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당을 둘러보고 나올 때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5·18항쟁의 상처와 예술의 여운이었다. 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건축물 자체의 미학은 그 여운 속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겉보기에 존재감이 없는 듯한 전당의 설계와 건축은 이처럼 오롯이 역사와 예술을 담는 그릇이 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헌신과 감동의 대서사…아름다운 사람들 이야기
광주예술가유람길의 또 다른 핵심은 2구간에 있는 양림마을이었다. 해발 고도 100m가량의 양림산과 사직산 기슭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한국과 서양, 유교와 기독교,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고, 근현대 역사 100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을은 서양 기독교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대서사를 써 내려간 장소였고, 기라성 같은 문화예술가들을 배출한 요람이었다.
유진 벨(한국 이름 배유지), 클레먼트 오웬(한국 이름 오기원) 등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1904년 광주읍성 밖 광주천 건너에 있는 이 마을에 교회, 학교, 병원을 세워 복음 전파의 터전을 만들었다. '광주의 예루살렘'으로 불린 이곳에 유진 벨은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광주 최초의 종합병원인 광주제중원(광주기독병원)을 세웠다. 그의 외증손자들은 유진벨기념재단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한국 관련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의사이자 목사인 오웬은 전남 선교의 개척자이다. 과로하며 순회 선교하다 급성 폐렴을 얻어 숨진 그의 유지를 받들어 성경회관에 해당하는 오웬기념각을 유족들이 양림동에 설립했다. 기념각은 개화기 광주의 많은 문화행사가 열린 곳으로 근대 광주의 문화전당, 신문화 전당으로 꼽힌다.
우일선(미국 이름 R.M. 윌슨) 선교사는 광주제중병원의 2대 원장으로 자택에서 고아들을 돌봤으며, 한국 최초의 나병원인 광주나병원을 건립해 운영했다. 서서평(미국 이름 E.J.셰핑, 여) 선교사는 광주나병원 설립을 돕고 한센병 환자를 진료했으며 걸인, 미감아(나환자 부모에게서 태어나 감염되지 않은 아이), 불우여성 등의 숙식, 교육, 진료에 전념했다. 독신이었던 그는 한국 고아 14명을 입양해 키웠다. 일제가 나환자 강제 불임 정책을 펴자 나환자 50여 명을 이끌고 서울을 향해 행진을 벌였다. 이는 소록도 한센 요양시설 및 병원 설립의 발단이 됐다. 과로, 영양실조로 고생하다 54세에 숨진 그의 유산은 담요 반장, 동전 7전, 강냉이 2홉이 전부였다.
보위렴(미국 이름 W.H. 포사이드) 선교사는 보육원을 운영하고, 길가에 쓰러진 한센병자들을 치료했다. 유화례(미국 이름 F.E 루트, 여) 선교사는 일제의 선교사 철수 명령에도 한국에 남아 1978년까지 51년 동안 헌신적 사역 활동을 계속했다. 양림동 외국인선교사 묘원에는 외국인 선교사와 가족 26명이 잠들어 있다.
교육자이자 시인이었던 김현승, 작곡가 정추와 정율성, 화가 한희원과 이강하, 시인 이수복과 곽재구, 소설가 문순태와 황석영, 드라마 작가 조소혜, 정추의 동생인 동요 작가 정근 등도 이 마을 출신이거나 이곳에서 활동해 양림의 정신이 된 사람들이다. 정추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적 계보를 이은 직계 제자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활동한 정율성은 중국 혁명가곡의 최고봉 '옌안송'과 중국 인민해방군가가 된 '팔로군 대합창'을 작곡한 인물이다.
숲이 아름다운 양림동은 광주의 5대 부자들이 살았던 동네이기도 하다. 최승효 가옥은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였으며, 이장우 고택은 조선 말기 전통가옥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양림동산은 400년 넘는 호랑가시나무를 비롯해 참나무, 도토리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1900년대 초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심은 피칸, 흑호두 나무들이 굵은 둥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사직산에 세워진 사직전망타워에서는 광주 시내와 무등산을 조망할 수 있었다.
3구간에 있는 의재미술관은 한국 남종문인화의 대가였던 의재 허백련(1891∼1977)의 화업과 정신을 기리고자 건립된 미술관이다. 한국화의 향기를 지역민과 나누는 광주의 대표적 문화공간이다. 의재는 화가인 동시에 농업학교를 만들어 농업 지도자를 길러낸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였다. 미술관은 무등산 자락에 있다. 40여 분만 올라가면 무등산 중턱인 중머리재에 이른다.
정치적 사건의 연속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구체적인 생각과 삶의 변화무쌍한 흐름이 역사의 실제라고 한다면 다양한 인물의 궤적을 따라가 볼 수 있는 예술가유람길이야말로 역사를 실감하기에 적절한 행로일 듯싶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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