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할 때 지혜로운 노옹이 나타나는 삼척
[[휴심정] 원철스님의 소엽산방]
문화가 지역사회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절이다. 가는 곳마다 지역문화를 선양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유형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보이지 않는 무형문화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스토리텔링 발굴을 통해 관광객을 부르고 또 그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아 두는 것이 지역공무원과 주민들의 중요한 의무 아닌 의무가 되었다. 늦더위를 피해 강원도 삼척에서 2박3일을 보냈다. ‘절친(절친구)’이 사찰주지로 머물고 있는 덕분에 바다가 보고 싶으면 아무 때나 훌쩍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올 때마다 ‘바다는 역시 동해야!’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유형의 관광자원 바다와 더불어 무형의 스토리텔링까지 더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방문의 만족도를 더욱 높이는 일이 된다. 또 기록과 흔적까지 남아있다면 그 즐거움은 몇 배로 증가된다.
수로부인과 애랑낭자는 신분도 다르고 시대도 달랐지만 강원도 삼척 바닷가라는 동일지역이 배경이다. 그리고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수로부인 이야기는 ‘삼국유사’권2 ‘기이(紀異)’편에 나온다. 애랑낭자는 ‘해신당(海神堂)’이라는 사당의 주인이다. 구전으로 전해오던 전설을 채록하여 최근에 문자정리까지 마쳤다.
먼저 ‘수로부인헌화’공원을 찾았다. 남화산은 공원이 조성되기 전부터 동해안의 유명한 일출명소였다.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 시절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부군 순정공(純貞公)을 따라 행차하던 중이었다. 도중에 삼척 바닷가의 임해정(臨海亭) 인근에서 점심을 먹고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잠깐 사이에 부인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미모에 반한 용왕의 초청에 의한 것이었다. 함께 가던 일행들은 납치로 간주하고 구할 대책을 논의했지만 바닷세계 일이라 땅 위에서 할 수 있는,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 어떤 노옹(老翁 어르신)이 나타나 처방책을 내놓았다.
“여러 사람의 말은 무쇠도 녹인다고 하였으니 인근 어민들을 모아 막대기로 언덕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불러보자.”고 건의했습니다. 물론 노래의 작사작곡은 노옹의 몫이었다. 뒷날 ‘해가(海歌)’라는 제목이 붙었다. 용왕의 명령에 따라 초청업무를 수행한 것은 심부름꾼인 거북이였던 모양이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아내 빼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어기고 돌려주지 않는다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
그러자 얼마 후 수로는 거짓말같이 뭍으로 돌아왔다. 신랑은 부인을 보고서 반가워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의구심과 함께 목소리를 착 깔고서 용궁에 다녀 온 과정을 하나하나 물었다.
“칠보궁전에 음식은 맛있고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인의 옷에도 색다른 향기가 스며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는 맡을 수 없는 향내가 났다.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종적을 알 수 없는 노옹이 바람같이 나타나서 해결사 노릇을 했다. 진달래꽃을 갖기를 원하는 수로부인을 위해 용감하게 깎아지른 절벽으로 올라가면서 신라가요(향가)인 ‘헌화가(獻花歌)’를 부른 이도 어떤 노옹이었다. 필요한 곳마다 필요할 때마다 어김없이 신인(神人)이 등장하는 삼척바닷가는 참으로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땅이라고 하겠다.
공원의 돌 조각으로 재현된 수로부인과 용왕은 거창한 자리 위에서 사이좋게 앉아있다. 멀리 언덕 위에는 신랑인 순정공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다. 주변의 광활한 언덕과 하늘 그리고 바다가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수로헌화공원을 뒤로 하고서 발길의 방향을 돌렸다. 바로 해안가에 향나무가 둘러싼 절벽 위에 자리 잡은 한 평짜리 작은 사당인 ‘해신당(海神堂)’으로 향했다. 해신당의 주인공 애랑낭자의 사랑 이야기는 몇백년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로 매우 직설적이다. 미래를 약속한 떠꺼머리 총각이름은 덕배다.
애랑은 미역 등 해초를 채집하기 위해 덕배에게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바위섬으로 데려 달라고 했다. 얼마 후 쓰나미가 몰려 왔고 애랑은 파도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그 날 이후 흉어의 연속이다. 물고기가 전혀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수입이 아예 없던 어느 날이다. 어젯밤 꿈속에서 만났던 애랑 생각마저 간절하던 덕배는 홧김에 분풀이 삼아 바다를 향해 오줌을 휘갈겼다. 어라! 이상하게도 그 날부터 고기가 잡히기 시작했다. 다른 어민들도 소문을 듣고서 바로 따라 했다. 결과는 같았다.
이후 해신당을 짓고 애랑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해마다 공물로 남근(男根)모양을 향나무로 여러 개 깎아서 바쳤다. 바위 섬에는 치마저고리 차림의 낭자모습의 실물도 세웠다. 육지에서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망원경까지 설치했다. 인근에서 영업하려는 사람들도 개업고사를 지낸 후에는 해신당에 들러 인사를 한 후 바닷가로 내려가 애랑바위를 향해 힘차게 소변을 본 뒤 사업의 성공을 기원하곤 했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바닷가 지방의 살아있는 소박한 민간신앙이라 하겠다.
해신당 인근의 산비탈에는 지자체에서 의욕적으로 여러 가지 남근모양으로 오줌싸개 공원을 만들고 경사로에는 걷기 좋도록 나무계단까지 설치했다.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겸한 관광을 위해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일행도 삼척의 성지(性地)공원(?)을 순례했다. 연신 킥킥거리며 한 바퀴를 돌았다. 지역사회의 원로이신 최선도 삼척문화원장께서 신라시대 노옹처럼 나타나 전 일정을 함께 하면서 애로 해결은 물론 친절한 설명까지 아끼지 않으셨다.
원철 스님 (불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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