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섬산로드 교동도] 태풍이 몰고온 비바람 유배된 王의 눈물인가
두 강이 해 지는 바다와 만나는 섬에서, 두 용이 숨을 거두었다. 임진강과 한강이 바다를 만나는 곳에 있는 섬. 1237년 고려 희종과 1506년 조선 연산군이 여기서 운명을 달리했다. 역사는 두 왕을 정반대 성격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비극적인 죽음은 같았다. 두 용이 숨을 거둔 유일한 섬, 교동도다.
현명했으나 힘없는 왕과, 강력했으나 잔인했던 폭군의 마지막 페이지는 교동도였다. 고려 무신정권의 힘에 눌려 꼭두각시 왕이었던 희종은 왕자 시절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과오를 모른다. 나 또한 스스로 알지 못하니 경들에게 부탁한다. 숨기지 말고 언급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은 "겸손하고 현명하다"며 왕자를 칭찬했다.
1211년 실권자 최충헌을 없애고 왕권을 회복하려 했으나, 실패한 뒤 폐위되어 유배길에 오른다. 유배 생활을 하다 귀양에서 풀려 수도 개경으로 돌아오기도 했으나, 왕권 찬탈을 노린다는 무고로 인해 다시 귀양길에 올라 교동도에서 숨을 거뒀다. 교동도를 비롯한 황무지나 다름없는 주변 섬에서 18년간 귀양살이한 후였다.
300여 년 후 교동도는 다시 어두운 기운이 드리웠다. 폭정을 견디다 못한 신하들이 군사를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한 것. 체포된 왕은 곧장 강화도로 추방되었다가 교동도로 옮겨졌다. 장녹수를 비롯한 후궁들은 종로와 남대문에서 돌을 맞아 죽었으며, 어린 아들들도 군사들에 의해 죽었다. 연산군은 교동도에 온 지 2개월 만에 역질(천연두)과 화병으로 숨을 거뒀다. 죽기 직전 부인인 "폐비 신씨가 보고 싶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미세먼지 삼킨 태풍 전야의 하늘
태풍이 온다는 경보가 연신 울렸으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았다. 펜으로 그은 듯 선명한 수평선과 산세가 대번에 잡히는 능선. 1년에 며칠 없는, 미세먼지 없는 날이었다. 섬으로 가는 배편은 모두 끊겼으나 다리가 있는 교동도는 태연히 차로 갈 수 있었다.
출연자들과의 약속, 차량 렌트, 마감 일정이 엮여 있어 미룰 수 없었다. 주인공은 열정적인 사업가이자 아웃도어 마니아인 이윤서(@leeyoun0619)·윤호(@retroper_)씨다. 이씨는 경기도 평택·시흥·수원 일대에서 교육 사업을, 윤씨는 제주에서 '조용한 게스트하우스 산방산점'을 운영하고 있다.
걷기길과 화개산 화개정원, 대룡시장을 둘러보는 여정이다. 북한과 인접한 최전방 섬답게 검문소의 군인이 차량을 세운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QR코드로 출입자 정보를 등록하는 방식이다. 군대도 디지털화되며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강화 나들길 9코스의 시작 월선포. 배에서 내리고 타는 이들로 왁자지껄 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침묵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망망대해는 아니었다. 강 같은 바다 건너 석모도가 있고, 상주산이 꽤 큰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264m의 낮은 산도 해수면 0m에서 보니 높았다.
압도적 존재감은 태풍이다. 다가오는 것만으로 미세먼지를 싹 치워버렸다. 캐나다의 어느 공항에 내렸을 때 보았던 물감 같은 파랑. 하늘이 이렇게 예뻤나 싶었던, 낯선 파랑과 천재 화가의 붓질 같은 구름. 해안선을 따라 저수지를 따라, 여한 없이 이어지는 곧은 걷기길. 걷는 것은 나인데, 흰 파랑이 물결치며 가슴으로 걸어 들어오고. 30분을 걸어도 아무도 없는 섬의 경계가 이어졌다. 어쩌면 이 길을 걸었을 빛날 희熙를 쓰는 고려의 왕. 56세의 빛나는 생애 중 23년 왕자, 7년의 왕, 26년의 고독이었다.
애달팠던 마음이 분홍으로 변했을까. 억울함, 후회, 환멸 같은 것이 쌓이면 분홍이 되는 걸까. 갯벌을 따라 칠면초가 핑크빛으로 번지고 번져, 시선으로 쫓기 벅차다. 해안선 굽이굽이 돌아갈 적마다 고요한 분홍이 시야에 와락 몰려들었다. 바람에 묻어나는 짠내음은, 섬 어디엔가 먼 바다만 보는 사내가 있어 그의 몸에서 모락모락 풍기는 고독 같았다.
태풍 전날 섬을 찾는 이는 없는 것이 당연했다. 남산포의 식당은 문을 닫았고, 고기잡이배는 육지로 끌어올려져 있었다. 사방팔방에서 부는 바람은 배려심 있게 부드럽게 밀려와 땀만 슬쩍 가져갔다. 땡볕인데도 걷기 좋은 날이었다.
걷는 내내 배경을 이룬 초록 실루엣이 섬 최고봉 화개산(259m)이다. 능선 너머로 하얗게 보이는 탑 같은 것이 신경 쓰였는데, 능선에 세운 전망대다. 찻길을 따라 이어지는 걷기길을 생략하고 차를 몰아 곧장 전망대 입구로 갔다. 연산군 유배지였던 화개산 기슭을 정원으로 꾸미고, 주능선 전망대까지 모노레일을 놓았다.
깔끔한 주차장과 건물, 정돈된 정원이 산기슭을 따라 계단식으로 이어졌다. 교동도의 역사를 담은 전시관과 연산군의 유배 생활을 재현한 모형이 왕들의 단골 귀양지음을 알리고 있었다. 최신 모노레일을 타고 20여 분을 오르자 정상 같은 전망대였다.
전망대는 저어새의 긴 부리와 눈을 본 따서 만들었다. 날카로우면서도 둥근 전망대에 서자, 북한 땅이 드러났다. 강처럼 흐르는 좁은 바다 건너 굽이쳐 흐르는 북녘 땅. 뉴스에서만 보던 북한이 하나의 능선으로 뻗어 있었다. 습관처럼 피어오르는 '저 산줄기를 어떤 코스로 종주할까'하는 생각을 지웠다.
BAC 인증지점인 정상은 여기서 300m 거리. 등산로가 뻔히 보이는데 난간이 막고 있다. 직원에게 물어도 "모르겠다"는 답뿐이다.
산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수는 없는 노릇이라 산길로 폴짝 건너가 정상에 올랐다. 최신 전망대가 생긴 탓에 정상은 소외된 분위기다. 원래 경치 좋은 곳이었지만, 지금은 풀이 높아 경치가 없다.
평야의 일몰, 황홀한 용의 추락
산을 내려와 나들길 10코스를 향했다. 햇살이 뉘엿했으나, 태풍이 오기 전 최대한 많이 둘러보고 싶었다. 읍내를 빠져나와 서쪽으로 가자 대평원이었다. 초록 논두렁이 몇 km 넘도록 펼쳐져, 육지 평야에 온 것 같았다. 멀리 직선주로가 이어졌다.
모처럼 오르막이 나오나 싶었으나 빈장산 고개를 넘자, 가시덤불과 수풀, 거미줄이 길을 막는다. 곧 어둠이 내릴 텐데, 시간이 없다. 차로 섬을 둘러보기로 한다. 오늘처럼 시야가 맑은 날 노을을 사진에 담고 싶었으나, 최전방답게 서쪽은 막혀 있다.
숙소로 가는 길, 기어코 노을이 차를 멈춰 세운다. 용의 추락이 이토록 황홀할까. 사랑에 취해 춤추는 여인의 소매가 지나간 여운마냥, 스쳐가는 노을. 태풍 전야에 맞춰 왈츠를 추는 거대한 벼이삭 물결. 논두렁 길가에 차를 세우고, 용의 낙하 같은 일몰을 마중했다. 드넓은 평야 가운데, 노을에 젖어든 이는 우리뿐이었다.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태풍이 관통하는 날, 아침이었다. 교동향교와 화개사, 대룡시장 순으로 둘러보았다. 빗줄기가 점점 세게 몰아쳤다. 1980년대 시장 풍경으로 유명한 대룡시장을 걸었다. 태풍 소식에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아 한적했다.
자존심 팽개치고 펑펑 우는 듯한 폭우. 더 이상 걷기는 무리였다. 카페에 들어 창밖을 보았다. 성난 듯 추락하는 빗줄기가 교동도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쫓겨난 왕의 슬픔이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섬 여행 가이드
BAC 인증지점은 화개산 정상이다. 화개정원 주차장을 기점으로 원점회귀 산행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주차장 왼쪽 산길로 1.2km를 오르면 정상에 닿는다. 지난해 지은 최신 전망대인 화개산전망대는 정상에서 300m 떨어져 있고 연결 통로가 없어 주의를 요한다. 정상은 풀이 높아 경치가 시원찮으며, 전망대 경치가 훨씬 낫다. 다만 전망대는 화개정원 입구에서 입장료 5,000원을 내야 입장 가능하다. 정원 임도를 따라 전망대까지 걸어서 오를 수도 있다.
8월 중순 나들길 9코스 안양사지와 교동향교 방면은 이용자가 거의 없어 풀이 높아 걷기가 어려웠다. 월선포에서 남산포까지는 정비가 잘되어 있고, 해안선을 따르는 길이라 교동도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10코스 밀채고개에서 죽산포로 이어진 길도 풀이 높아 진행이 어려웠다. 대룡시장에서 난정저수지로 이어진 5km의 넓은 논길이 추천할 만하다. 뙤약볕 찻길이라 자전거나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월선포에서 남산포로 이어진 해안길은 3km이며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교통
대중교통은 일단 강화도 버스터미널까지 온 후 교동18번(강화버스터미널↔월선포) 버스를 타야 한다. 주말에는 1시간 10분 간격(06:10~20:30)으로 운행한다. 강화터미널을 출발해 대룡시장을 거쳐 월선포까지 운행한다. 자가용 이용 시 교동대교 앞 검문소에서 간단한 출입신청서를 스마트폰으로 등록해야 한다. 최전방의 섬이라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임도가 많다. 다만 북쪽과 서쪽 해안선은 철조망이 있어, 경치를 제대로 즐기기 어렵고, 내비게이션도 무용지물이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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