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가상인간' 마케팅에는 '이야기'가 없다
스토리텔링 부재…디테일 없는 설정
캐릭터 관계 설정·세계관 구축 필요
최근 들어 기업 광고에서 '어 누구지?'하는 모델들이 종종 보이곤 합니다. 내가 또 유행에서 뒤처졌나, 내가 모르는 라이징 스타인가 하고 자세히 보면 무언가 정감이 덜 가고 약간의 이질감도 듭니다. 바로 '가상인간' 모델입니다.
유통업계에도 가상인간을 모델로 쓰는 기업들이 꽤 있습니다. 롯데홈쇼핑은 올해부터 가상인간 '루시'를 정식 쇼호스트로 기용하고 라이브커머스를 중심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SSG닷컴도 '와이티'를 발탁해 다양한 방송에 출연시키고 있죠. 편의점업계에서는 CU가 가상인간 모델 '하루'를 개발해 보도자료 등에 등장시켰습니다.
이밖에도 칠성사이다 광고를 찍었던 류이드, 정관장·GS리테일 광고에 나왔던 로지, 네이버가 만든 이솔 등 수많은 가상인간 모델들이 광고계를 누비고 있습니다. '아담'이 그리던 신세계가 드디어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가상인간을 찾는 이유가 뭘까요. 가상인간 이슈가 활발했던 2021년만 해도 가시적인 효과가 있었죠. 가상인간이 모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이 모였으니까요.
대표적인 게 신한라이프의 가상 인간 모델 '로지'였습니다.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의 통합법인 출범 소식을 알리는 데 로지의 공이 컸죠. 업계에선 신한라이프와 로지가 '가상인간 모델' 트렌드의 신호탄을 울린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가상인간 모델이 두자릿수를 넘어가면서 가상인간에 대한 관심도는 많이 줄었습니다. 단순한 모델 기용만으로 이슈를 불러올 수 있었던 시기가 지나간 거죠.
이렇게 되면 가상인간의 활용도는 일반 모델에 비해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은 브랜드의 이미지에 맞는 모델을 기용해 소비자로 하여금 모델과 브랜드를 동일시하도록 유도합니다. 연예인 모델은 광고 외에도 연기나 가수 활동, 일상생활 노출 등을 통해 꾸준히 자신의 이미지를 외부에 노출합니다.
이 점에서 가상인간 모델은 실존하는 연예인 모델에 비해 불리한 점을 안고 있습니다. TV를 보던 소비자가 '가상인간 루시'를 보고 떠올릴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정해진 광고·방송을 제외하면 일반에 노출될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상인간과 유사한 시장인 캐릭터 IP 시장은 이미 이 문제를 해결해 가고 있습니다. 해답은 '세계관 구축'입니다. 단순히 새로 만든 캐릭터가 귀엽다, 예쁘다는 것만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치밀한 세계관 구축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그들의 세계를 '납득'시켜야 하죠.
최근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인 시나모롤이나 티니핑 등을 보면 수많은 캐릭터 간 관계 설정, 세계관 구축 등에 엄청난 힘을 쏟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대중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캐릭터를 선택하고 몰입할 수 있죠.
최근의 '가상인간' 마케팅에는 이런 스토리텔링이 부재합니다. CF에 나와서 이야기를 하고 SNS에도 사진과 글을 올리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성격도 취향도 친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가상인간에 우리가 어떤 이미지를 부여해야 할까요.
물론 가상인간 마케팅에 긍정적인 면이 없는 건 아닙니다. 유명 연예인을 기용하는 데 비해 투입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각종 사건사고 등 부정적 이슈에서도 자유롭습니다. '로우 리스크'를 추구하는 기업으로서는 솔깃할 만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게 가상인간 모델을 선택하는 이유의 전부라면 그냥 일반인 모델을 쓰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을 겁니다.
국내에서 '가상인간'이 처음 등장한 건 1998년. '사이버가수 아담'이 데뷔한 해입니다. 25년이 지난 지금, 어색한 3D그래픽은 진짜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듬어졌고 나무토막 같던 움직임도 댄스가수 못지않게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을 채워야 할 내용물은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상인간이 '가상'보다 '인간'에 가깝길 바라는 건 아직은 조금 이른 걸까요.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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