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씻어내는 소리…“듣고 나서 화장실 가는 분 많아” [ESC]
공·싱잉볼·핸드팬 등 치유 악기의 공명, 몸속 정체된 에너지 순환시켜
“‘누워서 듣기’ 효과 극대화…몸 이완하되 잠들지 말고 소리 집중해야”
요가·명상과도 접목…집에서 간편하게 싱잉볼·앱 통한 수련도 가능
요가 매트에 누운 청년 14명 사이를 ‘사운드 테라피스트’(소리의 진동 에너지를 활용한 치료사) 박설아(37)씨가 종횡무진으로 오간다. 그의 손에는 한국의 징과 비슷한 ‘공’(청동이나 놋쇠로 만든 둥근 타악기)이 들려 있다. 박씨가 한 손에 든 채로 프라이팬 크기의 공을 문지르거나 칠 때마다 온몸이 떨린다. ‘웡’ 소리로 시작해 ‘왱’ 하며 잦아든다. 귀는 바다에 잠수했을 때처럼 먹먹하고 몸은 휴대전화가 진동하는 것처럼 간지럽다.
크고 작은 7개의 공을 번갈아 연주하는 ‘카오스 구간’에 들어가자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로 빨려 들어간 듯 어지럽기까지 한데, 매섭게 몰아치던 울림에도 끝은 있다. 자리에 앉은 박씨가 하얀색 ‘크리스털 싱잉볼’의 바깥쪽을 채로 문지르자 부드럽고 잔잔한 파동이 공간을 채운다. 거북이 등딱지를 닮은 핸드팬(다양하고 몽환적인 음계 표현이 가능한 둥글고 볼록한 금속 타악기)을 연주할 때는 숲속 연주회에 온 듯 청량하다. 이어 박씨의 목소리가 사람들을 깨운다. “손과 발을 부드럽고 친절하게 움직여 봅니다. 숨은 함부로 쉬지 않습니다. 한겨울 유리창에 성에를 만들 듯 긍정의 에너지를 들숨으로 마시고, 부정적인 감정은 날숨과 함께 내뱉습니다.”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한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오전부터 비가 쏟아지던 지난달 29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웰니스센터 ‘숲의 그림자’에서 사운드 테라피 프로그램 ‘공 사운드 배스’(gong sound bath)가 열렸다.
수련 끝나고 화장실에 가는 이유
박씨는 “고대 티베트에서는 공이 ‘영혼을 달래주는 소리’여서, 신성한 의식이나 제사 때 사용했다”며 “생각이 과도하게 많거나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의 에너지를 해소해 준다”고 설명했다. 또 자신의 감정만 해소하는 게 아니라 타인과의 연결성을 회복하는 효과도 있다고 밝혔다.
“공의 파동이 가슴의 정체된 에너지를 순환해 주면 실제 가슴에 여유 공간이 생기죠.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관대해지잖아요. 나에게도 남에게도 친절해집니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자신에게 보낸 연민을 남에게도 보낼 수 있죠.”
박씨는 사운드 테라피스트이기 이전에 국립창극단과 국립극단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국악인이다. 그는 “학부 시절 징과 판소리를 접목한 ‘진도 씻김굿’을 배우며 소리가 일으킨 공명이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주는 매개체라 확신했다”며 현재는 명상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동이 가진 공명 효과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찾아냈다. 그는 서로 다른 템포로 흔들리는 추시계들을 한 공간에 뒀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템포가 거의 동일해지는 것을 발견하고, 추 사이 공기 진동이나 벽의 작은 떨림으로 두 추의 운동이 동기화됐으리라 추정했다. 공과 싱잉볼의 조화로운 진동이 인체의 재정렬을 돕는다는 것은 이에 근거한다. 인체의 70%는 물로 구성돼, 진동이 간섭하기 쉬운 조건이다. 박씨는 “공 소리를 듣고 나면 화장실에 다녀오는 분들이 많다. 그만큼 순환이 크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운드 테라피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은 ‘누워서 듣기’다. 여기에 더해 박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단체 수업에서는 테라피스트가 최소한 2~3개 이상, 다양한 울림을 가진 공을 30분 이상 연주하는 것이 좋습니다. 참여자는 평소 가벼운 운동을 해서 신체를 깨워 놓을 필요가 있어요. 테라피 시간엔 사회적 자아를 내려놓고 주의를 온통 소리에 집중해야 합니다. 또 여러번 반복해서 들어서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테라피 도중 깊게 잠드는 사람도 있지만, 이상적인 상태는 깊은 명상에 드는 것이다. 참여자의 상태를 관찰해 이를 구분할 수 있다. 박씨는 명상과 수면의 차이에 대해 “잠을 자면 코를 골고 의식이 없다. 반면 깊은 명상 상태에 들어가면 몸이 완전히 풀린다. 호흡은 깊어지지만 고르고 규칙적이다. 의식이 깨어 있으니 소리를 듣고 감각에 집중하는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의 소리가 명상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돕는다고 덧붙였다.
“공의 진동을 느끼면 뇌파는 일상적 의식 상태인 베타파(13~30㎐)에서 알파파(8~13㎐)로 바뀝니다. 알파파는 휴식·이완의 상태에서 발견되는데, 이때 다양한 사고 작용과 상상이 일어나죠. 여기서 세타파(4~8㎐)로 이행되면 깊은 명상에 들 수 있습니다.”
싱잉볼 구입, 진동과 에너지 확인해야
이날 공 사운드 배스에 참여한 상담심리학과 대학원생 민서인(32)씨와 파티시에 임혜린(31)씨는 공통적으로 “평소보다 쉽게 깊은 명상에 빠졌다”고 이야기했다. 20살 때부터 요가를 했다는 민씨는 “수업을 듣다 어느 순간 몸이 아래로 내려가며 무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깊은 명상에 들었다”고 전했다. 임씨는 “전에는 명상을 하면 가만히 눈 감고 있는 듯했는데, 오늘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다. 몰입도가 높았고 차분해지는 경험이었다”고 느낌을 말했다. 호기심을 갖고 오늘 처음 사운드 배스에 참여했다는 요가 강사 김예인(32)씨는 “현재 들리는 소리가 어떤 악기에서 나는 것일까 생각하느라 쉬지는 못했다”며 “매일 하기보다 감정이 강하게 휘몰아칠 때 평정심을 회복하기 위해 사운드 배스를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에 온 사람들은 모두 “사람에 따라 각성과 이완이 일어난다. 바로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경우 주의하라. 감정에 압도된다면 명상일지 쓰기 등 자기 돌봄을 꼭 해달라”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 박씨는 “공 사운드 배스는 싱잉볼과 달리 다소 무겁고 매서운 치유 방식으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권한다”며 “감정적 동요가 크거나 너무 무거운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서도 가볍게 쓸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사운드 테라피 도구는 그릇 모양의 ‘싱잉볼’이다.코미디언 조세호, 가수 화사, 래퍼 타이거 제이케이(JK), 배우 정유미도 싱잉볼을 애용한다고 한다. 국내에 싱잉볼 명상 체계를 정립하고 2008년부터 서울 강남구에서 ‘젠테라피 네츄럴 힐링센터’를 운영 중인 천시아(38)씨는 싱잉볼이 내는 맥놀이 파동(2~8㎐)으로 뇌파가 알파·세타·델타로 빠르게 전환돼 이완과 명상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그저 편하게 누워서 싱잉볼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깊은 명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매우 획기적이고 쉬운 방법이죠.”
싱잉볼을 연주하는 방법은 치기(바깥쪽)와 문지르기(안쪽) 주법으로 나뉜다. 천씨는 “치기 주법은 특유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고 진동이 동심원을 그리며 방사 형태로 퍼져나간다. 싱잉볼의 가장자리를 약간 힘 있게 문질러 진동을 증폭시키는 게 문지르기 주법”이라고 설명했다. 부드러운 스웨이드로 감긴 나무 맬릿이나 전용 해머로 싱잉볼을 접촉한다. 손바닥 위나 방바닥에서 연주할 수 있는데, 단 바닥에 두고 칠 때는 마찰에 따른 소음을 막기 위해 고무 재질의 미끄럼 방지패드나 쿠션을 깔아 줘야 한다.
싱잉볼 가격은 1만~30만원대로 편차가 크다. 천씨는 “싱잉볼은 수작업으로 만들기에 소리가 제각각이다. 모든 싱잉볼이 치유에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라며 “직접 들어보고 자신에게 맞는 소리와 주파수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싱잉볼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다. 나의 생체리듬을 변화시키는 일종의 주파수 도구, 파동 도구이기에 그것이 어떤 진동과 에너지를 가졌는지 사기 전에 미리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싱잉볼의 주파수를 직접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한 최민주(61) 제주대 의대 교수는 “싱잉볼의 소리 중 의학적으로 큰 효과가 있는 부분은 인간의 뇌파를 동기화시키는 ‘느리게 변하는 주파수 성분’”이라며 “싱잉볼마다 주파수 성분이 제각각이므로 싱잉볼을 고를 땐 음의 높낮이보다 주파수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예를 들어 세타파 주파수를 내는 싱잉볼 소리를 들으면 명상 상태에 들기 쉽다”고 설명했다.
요가 수업에서도 싱잉볼이 활용되는 추세다. 2019년부터 요가를 배워온 정혜인(27)씨는 지난해 요가 수업에서 싱잉볼을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는 “요가를 마무리하는 ‘사바아사나’라는 휴식 동작이 있는데, 회원들이 가만히 누워 있으면 선생님이 싱잉볼을 쳐 주신다”며 “그 전에는 사바아사나를 하면서도 일상에 대한 걱정과 잡념이 떠오르는 때도 많았는데, 싱잉볼을 들으면서는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어 명상에 도움이 됐다. 평소 자주 듣는 소리가 아니라서 환기가 되고, 일상적 공간이 아닌 산이나 절에 있는 느낌도 받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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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시작과 끝
명상 교육에도 사운드 테라피 도구가 사용된다. 동국대학교에서 ‘현대서구명상’, ‘위빠사나의 이해와 실습’ 등 수업을 하고 있는 캐나다 출신 브라이언 서머스(39) 박사는 “명상 워크숍을 지도할 때 작은 차임벨이나 싱잉볼을 사용해 학생들에게 명상이 시작됐거나 끝났다는 신호를 준다. 필수는 아니지만 명상의 대상에게 주의를 환기하는 부드러운 방법”이라고 했다.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 상태에 이르도록 이런 소리가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옆 사람의 기침 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 자신의 숨소리 등 명상 수행 시 들리는 각종 소리는 집중의 대상이 된다”며 “다양한 소리의 발생과 소멸에 집중하고 그 사이의 고요함을 알아차려 보라”며 소리 중심 명상법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핵심은 마음의 방황을 부추기지 않고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라며 “가사가 없거나 가사를 알아듣기 어려운 외국어로 된 음악을 들으며 소리 명상을 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사운드 테라피를 경험할 수 있는 힐링 공간은 저마다 특색을 지녔다. ‘숲의 그림자’에서는 국악 전공자 박설아씨의 구음을 얹은 공(공을 연주하면서 입으로 내는 악기 소리를 조화), 싱잉볼, 핸드팬 연주를 들을 수 있으며, 요가 수업도 병행된다. 박씨는 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주최한 행사 ‘왕릉 숲길 치유’를 통해 서울 강남구 선릉(10월4일)과 서울 성북구 의릉(10월11일)에서 성인 20명을 대상으로 무료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천시아씨의 ‘젠테라피 내츄럴 힐링센터’는 싱잉볼 명상을 전문으로 하며, 일대일 개인 세션과 온라인 교육과정, 기업 강의 등을 열고 있다.
인천시 중구에는 마음챙김 커뮤니티 ‘어반몽크’가 있어, 매달 ‘월간 사운드 배스’가 진행되는데, 크리스털 싱잉볼과 히말라야 싱잉볼을 활용한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 일출봉 근처에 있는 리조트 ‘취다선’에서도 다양한 싱잉볼 명상 프로그램이 열린다.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면 유료 앱을 활용할 수 있다. 수면·명상 앱 ‘코끼리’는 천시아씨의 싱잉볼 연주를 포함한 각종 오디오 콘텐츠를 제공한다. ‘뮤리프’에선 주파수 변조 기술을 이용한 사운드 테라피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유해강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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