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마주』 최은미 “타인의 신발에 발 넣었을 때의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했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3. 9. 8.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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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작품 ‘여기 우리 마주’ 세계 확장
아이 키우는 기혼여성 ‘나리’·‘수미’ 중심
팬데믹 속 자신과 타인 마주하는 여정
“타인의 신발 잘못 신었던 강렬한 경험
공감 다루게 된다면 꼭 쓰고 싶다 생각
계속 새롭게 읽힐 수 있는 작가 되고파”

예상치 못한 팬데믹이 닥치자, 소설에서 그려온 여성들 역시 현실의 사람들처럼 팬데믹을 겪고 있었다. 중편소설 『어제는 봄』과 소설집 『눈으로 만든 사람』을 비롯해 몇 년 전부터 아이를 기르는 기혼 여성을 화자로 내세워 작품을 써온 그였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학교가 문을 닫았고, 아이들은 주로 집에서 생활했다. 확산하는 팬데믹에 안전에 대한 강박은 커져갔다. 여성들은 기존 돌봄이나 교육에 방역 책임까지 부과됐다. 여기에 이태원 클럽발 확산 사태까지 터지면서 혐오와 갈등도 증폭됐다. 개인 및 사회적 문제가 팬데믹으로 폭발하는 양상이었다.
최은미 작가.
소설가 최은미는 2020년 여름 기혼 여성의 시각으로 팬데믹을 겪는 한국 사회를 그린 단편소설 「여기 우리 마주」를 써서 그해 『문학동네』 가을호에 발표했다. 소설은 십대의 딸을 키우는 자영업자 여성의 시선으로 팬데믹 유행과 ‘N번방’의 충격에 빠진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묘파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자 주인공 수미가 확진이 된 채로 딸 서하와의 갈등을 풀지 못한 채 끝나서,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물들의 앞 이야기와 뒷이야기, 앞으로 더 나아간 이야기를요. 팬데믹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고 재난에 대해 다각도로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단편 「여기 우리 마주」를 아이를 키우는 두 여성 나리와 수미 안팎의 이야기로 확장해 장편소설을 써내려갔다. 실시간으로 팬데믹을 겪어가면서 소설 속 인물들과 3년을 함께 보냈다. 팬데믹이 시작된 이듬해부터 계간지에 일부를 연재도 하고.

애초 팬데믹이 터진 첫 해까지만 다루려던 계획이어서 서사 사체가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방역 상황이 계속 바뀌면서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소설을 처음 시작했던 마음으로 돌아가 나리와 수미 등 인물에 집중해 나감으로써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었다.
“소설을 쓰는 동안 실외 마스크가 해제돼 처음으로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기도 했고, 오미크론 유행 때 저도 걸리면서 감염 상황을 좀더 실감하게 되기도 했어요. 현실에서 저한테 영향을 주는 상황 변화를 겪을 때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이 영향을 받곤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이 장편의 도입부를 쓰면서 그렸던 장면으로 가게 됐어요. 수미와 나리를 협곡의 언 강 위에서 만나게 해주고 나서야 소설을 완성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가 최은미가 팬데믹을 배경으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 나리가 자신의 내면은 물론 같은 또래의 기혼 여성 수미의 고민과 마주하는 여정을 그린 장편소설 『마주』(창비)를 들고 돌아왔다. 『아홉번째 파도』 이후 6년 만의 장편이다.

향초 및 비누 공방을 연 나리는 과호흡 증상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가 예전에 결핵을 앓았고 지금도 잠복결핵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어릴 적 결핵약을 먹던 딴산의 만조 아줌마를 떠올린다. 그즈음 나리는 우연히 위기에 처한 딸의 또래 아이 서하를 공방으로 피신시킨 뒤 공방으로 찾아온 서하 엄마 수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틀 뒤 수미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두 달 넘게 격리된다. 나리는 서하를 억압하는 수미를 증오하고 수미 역시 딸과의 단절에 영향을 준 나리에 적대심을 표시하면서 두 사람 간 갈등은 팬데믹의 불안과 함께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나리는 돌연 수미에게 딴산에 가자고 말하고, 두 사람은 함께 만조 아줌마가 일구고 있는 딴산 사과밭으로 향하게 되는데.

“협곡에서 돌아온 뒤 나는 수미와 내가 낯설고 추운 북쪽 소읍에서 사과를 사 먹었던 날을 자주 떠올렸다. 그날 나는 다른 사람의 신발에 발을 넣어보았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모자를 써보거나 다른 사람의 장갑을 껴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무게로 실감된다는 것을 나는 그 협곡에서 알게 됐지만, 내가 나를 온전히 감각해본 순간을 거치고서야 수미의 신발에 발을 넣어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은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314쪽)

작가는 왜 단편을 확장해 장편소설로 써야 했을까. 팬데믹 시절을 함께 살아낸 소설 속 주인공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최 작가를 지난달 30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왜 팬데믹 첫 해를 주요한 시대적 배경으로 한 것인지.

“우리가 팬데믹을 겪으면서 경험한 두려움과 외로움이 혼란 속에서 가장 극대화됐던 해라고 생각했다. 타인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실감을 할 수밖에 없었고 사회가 어떤 질서로 구획되고 작동해왔는지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보게 된 해였다. 소설을 쓰면서 이 인물들에게 2020년이 여러 의미에서 어떤 기준점이자 원년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리와 수미가 자녀 문제 등으로 갈등하면서 긴장이 더욱 고조되는데.

“나리와 수미는 비슷한 상황 속에 있지만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성향도 다른 인물이다. 코로나에 확진돼 두 달 넘게 격리되는 동안 수미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지 않은 선택이 뭘까 생각했다. 딸 서하에 대한 회피 심리나, 자기를 가장 괴롭게 했던 상황 속으로 다시 들어가 뭔가를 만회하려는 심리를 오가면서 수미는 아이를 또 낳겠다고 말한다. 나리는 그 말이 가진 함의를 알아챌 만큼 수미와 가까운 상황에 있으면서도 수미한테 쉽게 공감하지 않는 거리감과 내면의 이유가 있는 인물이다. 나리와 수미가 이해와 반목 사이의 긴장 상태에서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를 볼 수 있길 바랐다.”

―나리는 왜 공방을 하는 사람으로 정한 것인가. 캐릭터가 엉뚱하면서도 매력적이다.

“누군가한텐 무용한 것들을 만드는 공간으로 보이지만 누군가한텐 많은 걸 걸고 지켜내야 하는 공간을 그리고 싶었다. 머리를 식히러 가끔씩 캔들 공방에 가면서 평소에 관심이 있기도 했다.(나리라는 인물과 문장 때문에 소설 속으로 쉽게 끌려가는 것 같다) 나리는 따뜻한 오지랖이 있는 인물이고, ‘여자여자’한 모습으로 규정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그게 사회에 얼마나 쉽게 용인될 수 있는지를 알고 긍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알고 이용할 줄도 아는 인물이다. 나리의 캐릭터가 친근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엉뚱하면서도 솔직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특히 애정이 가는 인물이나 캐릭터가 있다면.

“역시 만조 아줌마였다. 만조 아줌마 이야기를 쓸 때가 가장 즐거웠고, 가장 애정을 많이 쏟았던 것 같다. 만조 아줌마는 겉으로 다정다감하거나 사근사근한 사람은 아니지만, 툭 툭 던지는 말 속에서 애정이나 관심이 느껴지는 사람이고, 계속 나리를 지켜봤던 여성이다. 만조 아줌마는 제가 어려서부터 봐왔던 동네 아주머니나 할머니, 어른들의 모습이 조금씩 담겨 있고, 또 인상적인 모습을 조금씩 따오기도 했다. 만나고 싶고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여자 어른의 모습을 상상한 부문도 있다. 나중에 만조 아줌마가 나리에게 호리병에 든 술을 주면서 적적할 때 먹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만조 아줌마가 전해주는 것들이 즐거움의 영역에 있는 것이길 바랐다. 안 먹어도 살 수 있지만 먹으면 즐거운 것, 나리와 수미가 자신을 조금 풀어놓고 즐거워질 수 있는 것을 주는 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안의 사과농장 장면은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인상적이다.

“단편 「여기 우리 마주」는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얼굴을 보고 앉아있는 느낌이었다면, 장편 『마주』는 특정 공간을 벗어나 나란히 어딘가로 걸어가는 느낌을 생각하면서 썼다. 여안행을 통해서 인물 간의 갈등이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물들에게 각자 자기와 자기 곁과 타인을 볼 수 있는 여정이길 바랐다. 여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왔더라도 긴 겨울 대면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때부터 더 심한 갈등이 시작될 수도 있고. 다만, 그곳을 경유했던 어떤 기억들이 이들한테 이후 시간을 조금 더 견뎌낼 수 있는 자원이 돼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특히 나리의 경우 미처 풀리지 못했던, 자기 안에 억누르고 있던 어린 시절을 대면하고 만조 아줌마한테 들었던 말을 되살리면서 힘을 받아오길 바랐다. 만조 아줌마가 자신을 봐줬던 힘, 경험으로 자기 또한 수미의 딸 서하를 포용해 줄 수도 있길. 아울러 이들이 2020년 겨울 여안의 딴산이 격리되는 걸 겪으면서 사회의 장소 구획과 배제에 대한 질문에 근본적으로 가닿기를 바랐다. 그것이 재난 이후 서하와 은채가 살아갈 사회에 대한 고민과 질문으로 확장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딴산이란 곳은 실제 모델이 있는가.

“사과밭과 양조 취재를 위해서 충남 예산에 갔는데, 그곳에 딴산이란 지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따로 떨어져 있어서 딴산이라고 한다는 얘기를 듣고 지명을 빌려왔다. 참고문헌에도 언급했지만, 자료 조사 중에 1950년대 중반 광주 무등산에 결핵 요양 공동체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고, 그곳을 참고해 딴산의 형성 과정을 썼다.”
―나리가 수미의 신발에 발을 넣어보는 장면은 어떤 의미인지.

“언젠가 실제로 다른 사람의 신발에 발을 잘못 넣어본 적이 있다. 그 느낌을 좀처럼 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의 전 존재를 실감하고 나온 것처럼 강렬한 느낌이었고, 제 신발에 발을 넣었을 때와는 모든 게 다른 느낌이었다. 그 후로 두 인물의 길항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소설을 쓰게 된다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신발에 발을 넣어보는 장면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소설을 연재하던 중에 일본에서 자라고 영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브래디 미카코의 글을 읽었다. 타인의 입장에 서본다는 뜻의 영어 관용 표현인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이란 말을 엠퍼시(Empathy)로 해석하는 글이었다. 엠퍼시는 감정적 공감의 영역인 심퍼시(Sympathy)와는 다른, 나와 의견과 입장이 다르더라도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일컫는다는 말. 소설을 쓰는 동안 이 엠퍼시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했다.”

―이번 작품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제 글에는 비관적, 염세적이라는 평이 늘 따라다녔다. 주로 인물의 고통에 집중하면서 썼기 때문에 서사 자체도 고통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실제 팬데믹 3년을 겪으면서 그 기간 동안 쓴 글에선 이전처럼 감정적 발산과 고통의 극단에서 소설을 끝낼 수가 없었다. 장편 『마주』를 쓰면서 재난 상황을 다룬 단편 「그곳」을 같이 썼는데, 내 인물들을 재난 상황에 몰아넣고서 체념이나 냉소나 절망에서 그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삶 쪽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붙들고 소설을 썼던 것 같다. 소설을 쓰면서 이런 마음이었던 적이 별로 없어서 제게는 이런 마음이 생겨났다는 자체가 의미가 있다. 물리적으로 50년을 더 살지만 당장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300년, 500년 후를 생각하며 살기도 한다. 재난 이후의 시간을 얼마나 상상하느냐에 따라서 재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재난을 쓴다는 것은 그 이후를 상상하는 일이고,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타인의 삶까지도 계속 생각해야 되는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마주』를 쓴 시간은 내게 의미가 크다.”

대학 백일장이 열리는데, 혹시 소설을 한번 써서 내보지 않겠니? 교실에 들어온 국어 선생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모 대학의 백일장 행사를 소개하면서 말했다. 책 좋아하는 모범생이던 그는 백일장에 참여하기로 했다.

역사나 고고학 쪽에 관심이 많았고 시대물을 좋아했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사상이 다른 남녀 연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을 구상했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당시 경성이라는 공간을 상상했고, 이념이 다른 1940년대 초의 두 남녀의 고민과 갈등을 생각했다.

철원여고 1학년생 최은미는 이때 처음으로 50~60매짜리 소설 비슷한 글을 썼다. 소설가라는 직업을 생각하진 않았지만, 처음 단편소설을 썼을 때의 느낌과 즐거움을 잊을 수 없었다. 소설가 최은미의 원점이었다.

“소설 쓸 때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재미를 그때 맛봤던 것 같아요. 선생님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반에서도 재미있게 읽어주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제가 심혈을 기울였던 장면이 읽는 사람에게 같은 강도로 받아들여졌을 때 느꼈던 기쁨이 기억나요.”

예선에 당선된 그는 친구와 함께 백일장 본 행사에 참가했다. 물론 본선에선 당선되지 못했지만, 행사 참여 자체가 즐거웠다.

대학에 진학해 역사를 전공하면서 선배의 권유로 문예창작을 복수 전공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설 습작을 했다. 이 즐거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소설가가 직업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습작을 계속 했다.

1978년 인제에서 태어나고 철원에서 자란 최은미는 2008년 단편소설 「울고 간다」가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등단 이후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 『눈으로 만든 사람』, 중편소설 『어제는 봄』, 장편 『아홉번째 파도』 등을 펴냈다.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 세계를 조금 설명해 달라.

“등단 초기부터 주로 인물들이 느끼는 고통의 감각에 집중해왔다. 첫 번째, 두 번째 소설집(『너무 아름다운 꿈』과 『목련정전』)이 개인의 고통을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냈다면,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강원도 동해안 소도시에서 불어 닥친 강풍에 대해 쓴 첫 장편 『아홉번째 파도』는 사회적인 맥락이나 재난 속에서 고통을 바라본 작품이었다. 공간과 인물을 모두 상상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아홉번째 파도』를 쓴 이후에 저와 가까운 화자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페미니즘 리부트를 겪으면서 제 소설 속 인물들이 왜 고통스러운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던 시기였다. 그때부터 『마주』까지 몇 년간 현실의 제 상황과 밀착된 일인칭 여성 화자의 목소리로 주로 소설을 써온 것 같다.”
―소설쓰기에서 중요한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소설의 질이 물리적으로 앉아 있는 시간과 비례한다는 믿음이 있다. 작가마다 작업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저는 글을 쓰거나 퇴고할 때만이 아니라 구상을 할 때도 노트북 앞에 앉아 있어야만 한다. 물론 일상생활을 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소설의 핵심적 구상은 앉아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소설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여건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작품 또는 작가로서의 비전이나 포부는 무엇인가.

“소설에서 유머 욕심이 좀 있는 편이다. 인물들이 무겁고 심각한 상황 속에 있더라도 한 번씩 피식, 하고 웃을 수 있는. 그런데 이게 소설의 구조를 짜거나 의미를 생성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포기를 못하겠다. 소설에서 유머를 적절히 구사하려면 소설의 흐름을 장악하면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고, 캐릭터와 상황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고, 동시대적 감각도 살아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도 지나도 제가 쓰고 싶은 것을 확신을 가지고 쓸 수 있는, 늘 날 선 감각을 가진 작가였으면 좋겠다.”

―하루 일상이나 루틴은 어떤지.

“보통 오전 7시쯤 일어난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오전 9시 집 근처의 오피스에 출근해 글을 쓴다. 그 동안 카페에서 오랫동안 글을 써왔는데, 어느 순간 공간을 바꿀 필요를 느꼈다. 집필실을 얻기 전의 중간 과정으로 작년부터 집 근처에 공유 오피스를 이용하고 있다. 처음엔 한 달 정도만 있어볼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공간에 너무 잘 적응하고 일도 비교적 잘 된다. 보통 오후 5시까지 오피스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물론 마감이 있을 때는 거의 계속 쓰지만. 밤 12시나 1시쯤엔 무조건 잔다.(건강관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헬스장에 가서 웨이트를 한다. 앉아 있는 시간에 비례해 소설이 나오기 때문에 운동을 안하면 오래 쓰기가 힘들다.”

인터뷰 내내 차분한 모습으로 소설과 자신의 이야기를 조단조단 들려줬지만, 이전과 달라진 소설가 최은미가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재난 속의 인물들이 단념이나 체념이나 냉소 쪽이 아닌, 어떻게든 삶 쪽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 작가로. 고통을 극단까지 밀고 가는 것이 아닌, 그 이후를 상상하고 찬찬히 들여다보려는 작가로. 사방을 둘러보면서, 두리번거리면서.

⋯여기라고, 여기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 석양이 눈앞으로 쏟아져 내려 우리는 다리 한 중간에서 걸음을 멈췄다. 눈을 떴을 때 내 옆에는 수미가 울먹이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면서, 두리번거리면서. 갔어? 그 애들이 갔어? 수미가 물었다. 다리 저쪽 끝의 인파를 보면서 나는 말했다. 응, 갔어. 잘 건너갔어⋯.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허정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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