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남아 있는 차별, '이철수 사건' 기억해야 하는 이유죠"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다음 달 1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프리 철수 리'(Free Cholsoo Lee)의 중심엔 1973년 6월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 있다.
중국인 갱단 조직원이 총에 맞아 숨진 이 사건의 용의자로 당시 스물한 살의 한인 청년 이철수가 지목돼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사건 현장에도 없었지만, 재판에선 아시아계의 외모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백인 목격자의 증언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한인 기자 이경원이 끈질긴 취재로 이철수의 억울한 사연을 폭로하고,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공동체에서 이철수 구명 운동이 들불처럼 번진다. 이철수는 10년의 옥살이 끝에 재심에서 무죄 평결을 받고 풀려난다.
'프리 철수 리'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하줄리(미국명 줄리 하) 감독은 지난 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이철수 사건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한국계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인종차별에 맞서) 함께 저항한 역사를 배운다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죠. 이것은 그들의 자기 인식도 변화시키는 것 같아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다시 확산하는 분위기다.
하 감독은 아시아계에 대한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아시아계의 외모를 가진 사람은 표적이 돼 물리적인 공격을 받고, 어떤 사람은 살해되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이철수는 미국을 넘어 모든 사회의 차별받는 약자를 상징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의 이야기가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 이유다.
하 감독은 "(이철수 사건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세계 어느 곳에서든 보편적인 의미를 가진다"며 "이철수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하다. 그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이철수를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한국에서 태어난 이철수는 미국인과 결혼한 어머니를 따라 열두 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지만,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영화 '프리 철수 리'에는 이철수가 어린 시절 집을 나와 떠돌다가 자기도 모르게 바닷가에 도착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한국이 그리웠나 보다"라고 털어놓는다. 하 감독은 "이철수를 보면 집과 가족을 갈구하는 한 명의 소년을 마주하게 된다"고 말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이철수는 이경원 기자의 기사로 차별받는 아시아계의 상징으로 떠오르지만, 출소한 뒤에도 미국 사회에 뿌리를 못 내리고 마약에 손을 대는 등 탈선을 거듭한다.
하 감독은 이철수가 아시아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데 대해 "이철수가 수감됐던 교도소는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재소자들 사이의) 폭력으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며 "그가 어린 시절부터 겪은 학대와 방임까지 고려하면, 정상적인 삶을 살기가 쉽진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철수는 2014년 세상을 떠났지만, '프리 철수 리'는 그가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일인칭 시점을 채택했다. 내레이션은 교도소에 수감된 경험을 가진 한국계 미국인 세바스찬 윤이 맡았다.
하 감독은 "이철수의 관점으로 내레이션하면 그를 좀 더 잘 그려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프리 철수 리'는 하 감독과 한국계 이성민(유진 이) 감독의 공동 연출작이다. 두 사람은 이철수가 당한 고통과 아시아계가 차별에 맞서 투쟁한 이야기를 잊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다큐 제작에 착수했다.
이 감독은 "이철수 사건은 학교에 다닐 때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 심지어 대학의 아시아계 관련 연구에서도 다루지 않는다"며 "생전의 이철수도 자신을 위한 아시아계의 구명 운동이 다른 인권 운동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점을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언론인인 하 감독은 이철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이경원 기자의 영향을 받아 신문기자가 됐다고 한다. 그는 이철수에 관한 책을 쓰기보다 다큐를 만들기로 한 데 대해 "기자로서 자부심이 있지만, 글보다는 영화가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하 감독은 이 기자에 대해선 "한국계로는 미국 언론계의 주류에 처음으로 진입한 인물로, 심층 취재를 통해 정치적 부패 문제를 많이 보도했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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