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혼돈의 미학
시원하게 뚫린 잘 구획된 대로나 신도시보다 자연스럽게 조성된 마을과 오래된 거리가 더 끌린다. 편리함으로 따지면 질서 정연하게 만들어진 도시가 좋지만, 안정감이나 친근함으로 따지면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무질서한 골목과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오래된 마을이 더욱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북촌 한옥마을에 더욱 붐비고, 전주 한옥마을을 더욱 선호한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빌딩을 보러 관광을 가는 경우는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없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본 알함브라 궁전을 끼고 있는 오래된 집들, 북경의 작은 골목, 일본의 시골 온천마을 장터, 도무지 질서하고는 거리가 먼 혼돈의 장소에 왜 사람들은 몰리고 감동할까?
우리는 질서는 아름답고 무질서는 추악한 것이라고 교육받았다. 그래서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은 질서를 따르고 신봉하는 사람이었고, 질서를 벗어난 사람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모두가 인정하는 대학을 나와 좋은 기업에 취직하여 정년퇴직할 때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다니다가 자식들 좋은 배필 만나 결혼시키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었다. 자녀 결혼식과 자신의 장례식에 화환을 놓을 곳이 없어 꼬리표만 떼어내 벽에 줄지어 걸어놓으면 정말 인생 잘 산 사람이라고 사람들 입에서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상식적 인생에서 벗어나고, 사회의 규범에 도전하고, 정해진 패턴을 벗어나는 인생을 사는 사람에 대하여는 온전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지 않았다. 혼돈(混沌)이란 단어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불확실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직장을 자주 바꾸고, 전공이 무엇인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왜 좋은 직업을 내려놓고 힘들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사람을 혼돈의 인생이라고 부른다.
혼돈(混沌), 무질서와 불확실성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패턴이 없고, 마구 뒤섞여 예측이 안 되는 무질서의 상태를 혼돈이라 한다. 질서의 관점에서 보면 해결되어야 할 상태며, 미숙한 단계다. 그러나 혼돈은 질서를 넘어 더 높은 차원을 설명하는 새로운 세계로 재해석 된다. 카오스(chaos)이론은 무질서하게 보이는 혼돈의 상태에서도 논리적 법칙이 존재하고 있으며, 무질서 속에 있는 또 다른 질서를 찾아내는 사고의 틀로 새롭게 응용되고 있다. 혼돈은 하늘과 땅이 분리되기 전의 세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늘과 땅, 바다와 산이 뒤섞여 분리되지 않은 태초의 세상이다. 혼돈의 세상에는 미추(美醜)도 시비(是非)도 없다.
혼돈이란 단어는 <장자(莊子)>에 등장한다. 남해의 왕 숙과 북해의 왕 홀, 그리고 중앙의 왕 혼돈이 있었다. 숙과 홀은 자주 혼돈의 땅에 가서 서로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을 매우 잘 대접해 주었다. 숙과 홀은 혼돈의 덕에 보답하려고 서로 의논을 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7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쉰다고 하는데 혼돈은 구멍이 없이 무질서하니 우리가 그 구멍을 뚫어줘 보답하자고 결정하고 날마다 한 개의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리고 일곱째 되는 날 혼돈의 몸에 7개의 구멍이 뚫리며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다. 혼돈은 무질서가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숙과 홀은 혼돈의 몸에 구멍을 내어 질서를 만들어주었다. 결국 혼돈은 질서라는 칼에 맞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질서와 합리성보다 어쩌면 무질서와 모호성에서 더 큰 생명력을 볼 수 있다는 장자의 역설의 철학이다. 혼돈은 질서보다 경쟁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질서는 언제나 아름답고 우리를 안정시키는 것인가를 회의해 보고, 혼돈은 늘 추하고 불안하고 제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보아야 한다. 질서와 법을 강조한 나머지 세상의 모든 것을 그 틀 안에 넣고 줄을 세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세상은 어쩌면 질서보다는 무질서 속에서 더욱 예쁜 꽃이 피고, 순종보다는 잡종이 훨씬 더 경쟁력이 있고, 확실함 보다는 혼돈 속에서 해답이 더욱 다양할 수 있다. 혼돈을 기쁘게 맞이하자. 대한민국 발전의 주역은 혼돈에서 나온 역동성이었다. 혼돈의 다양성이 죽으면 사회도 죽는다. 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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