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궁금하다, 당신만의 이야기가

나경희 기자 2023. 9. 8.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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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도, 사무실도 없지만 10년 넘게 이어진 프로젝트가 있다. 거리를 지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행복과 슬픔을 묻는 ‘휴먼스 오브 서울’ 팀을 만났다.
왼쪽부터 조영은 인터뷰어, 강리나 번역가, 임소이 포토그래퍼. 강리나 번역가가 신간 <HUMANS OF SEOUL>을 들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인터뷰할 때마다 들은 이야기를 자신이 하게 될 줄 몰랐다. “저 진짜 별로 이야기할 거 없는데. 특별한 게 없어요.” 길거리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묻고, 듣고, 기록하는 프로젝트 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 of Seoul, 이하 HOS)’ 멤버 중 한 명이 말하자 모두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인터뷰 ‘당하는’ 분의 마음을 알 거 같아요.”

이들의 작업 방식은 단순하다. 길 가는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경계하고 주저하는 상대를 설득한다. 단 5분이라도 대화를 나눈다. 사진도 찍는다. 하지만 이들은 기자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고용돼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다. 각자 전혀 다른 본업이 따로 있다. 단지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아서 주말과 휴일 시간을 쪼개 역으로, 공원으로, 놀이터로 나가 사람을 붙잡고 잠시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한다. 돌아와서는 SNS 계정에 사진 한 컷과 짤막한 인터뷰 한 대목을 올린다.

2013년 11월부터 시작한 HOS 프로젝트는 올해로 꼭 10년째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인터뷰’는 조용히 입소문을 탔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텀블러 등 각종 채널에서 총구독자 17만명이 모였다. 매주 인터뷰 콘텐츠를 보는 사람은 30만명에 달한다.

지난 5월31일에는 그동안 쌓인 인터뷰 약 1600건 중에서 베스트 인터뷰를 골라 모은 책 〈HUMANS OF SEOUL〉을 냈다. 부제는 ‘Another You on the Street(길에서 만나는 또 다른 당신)’이다. 출간하자마자 구독자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6월에는 교보문고 POD 도서(주문하면 한 권씩 제작에 들어가는 도서) 분야 베스트셀러 2위, 7월에는 1위에 올랐다.

시작은 미미했다. HOS의 원조 격인 ‘휴먼스 오브 뉴욕(Humans of New York·HONY)부터가 그랬다. 2010년 미국의 채권 중개업자였던 브랜던 스탠턴 씨는 직장을 그만둔 뒤 카메라를 들고 나가 뉴욕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루 몇 사람 정도 방문하던 개인 페이지가 갑자기 주목을 끌게 된 건 페이스북과 텀블러 덕분이었다. 소셜미디어가 본격적으로 흐름을 타던 때였다. 전 세계에서 ‘Humans of ○○’ 계정이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HONY 페이스북 계정을 보던 정성균씨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대학원을 준비하던 때였다. 게시물을 보고 있으면 설명할 수 없는, ‘울컥하는 마음’과 ‘탁 치는 마음’ 사이의 어떤 감정이 들었다. “이분들은 인기나 명예를 원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방금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공유해주는 거예요. 그런 인터뷰를 하고 나면,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는데 이상하게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요.”

정성균씨는 편집장을, 사진을 찍으면서 만난 친구 박기훈씨는 디렉터를 맡았다. “지금은 저희뿐이지만, 당시 HOS가 세 곳이나 있었어요. 제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요. 그중 한 곳에서 ‘humansofseoul.com’ 웹 주소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미 활동을 접었더라고요. 도메인을 양도받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죠. 알고 보니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분이었어요. 그분이 보여주고 싶었던 ‘휴먼스 오브 서울’은 다양성이었던 거예요.” 도메인을 넘겨받는 조건은 돈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정성균 편집장은 그들의 행사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홈페이지 도메인을 받아 왔다.

거절당해도 다시 거리로

두 명으로 시작한 HOS 멤버는 알음알음 세 명, 다섯 명으로 늘었다. 팀원 공개 모집을 시작했다. 인터뷰 다섯 건을 채워 오는 게 조건이었다. “거리로 나가보면 사람들 반응이 생각보다 싸늘해요. 기자도 아니고 유명한 사람도 아니니까 번번이 거절당해도 괜찮은 사람이어야 했어요. 실제로 못 버티고 나간 분들도 있고요.”

팀에 들어와도 일종의 수습 단계인 ‘준회원’을 거쳐야 ‘정회원’이 될 수 있다. 정회원이 되는 데는 기간도, 조건도 각자 다르다. 편집장과 상의를 거쳐 본인만의 통과 테스트를 정한다. 게시글에 달린 댓글 개수 혹은 공유 수가 기준이 되기도 하고, 평소 거리에서 자신이 말 붙이기 어려워하는 특징을 가진 인터뷰이들과 몇 건 이상 인터뷰를 성사시키는 게 기준이 되기도 한다.

현재 HOS 팀 멤버는 12명, 모두 정회원이다. 편집장은 인터뷰어의 글을, 디렉터는 포토그래퍼의 사진을, 영문 에디터는 번역가의 번역본을 살펴보고 다듬는다. 편집장과 번역가를 포함해 구성원 절반 이상이 해외에 거주하기 때문에 온라인 소통이 기본인 데다 어떠한 대가도 없이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인 만큼, 여느 언론사 못지않은 체계가 필수다.

길거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임규빈 인터뷰어. ⓒ휴먼스 오브 서울 제공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활발하게 활동할 때는 주 2~3개씩, 바쁠 때는 2주에 한 개씩 콘텐츠를 만든다. 한 달에 한 번 회의를 열어 인터뷰 일정과 장소를 조율한 뒤에 인터뷰어와 포토그래퍼가 함께 거리로 나간다. HOS 인터뷰의 원칙은 ‘즉흥성’이다. 초창기 경험이 토대가 됐다. “한 분이 인터뷰를 하다 시간이 촉박해서 중간에 가야 했어요. 그래서 채팅으로 인터뷰를 이어가기로 했는데, 그사이 답변을 엄청나게 준비한 거예요.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단어 하나하나를 고른 거죠. 이렇게 하면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겠더라고요.” 코로나19 팬데믹 때 줌으로 인터뷰할 대상을 찾기 위해 미리 사연을 받은 걸 제외하면, 한 번도 즉흥성을 깬 적 없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인터뷰 대상은 다르다. 또래 젊은이에게 더 쉽게 다가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장년층에게 말을 붙이는 게 더 편한 사람이 있다. 정성균 편집장은 후자다. “젊은 사람들은 의외로 섭외도 쉽지 않고 생각보다 답변이 뻔하기도 해요. 그런데 어르신들은 한평생 고민해왔던 생각들이 있거든요. 나이가 들면 누구나 좋은 배우가 된다고도 하잖아요.” 혼자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커플이나(헤어졌으니 글을 내려달라는 연락을 많이 받아 한동안 인터뷰 대상에서 제외한 적도 있다) 가족을 주로 인터뷰하는 이도 있다.

인터뷰 장소도, 대상도, 방식도 제각각이지만 끌어내는 이야기만은 공통점이 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이지, 휴먼스 오브 ‘서울’이 아니라는 점. 정성균 편집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종교나 정치적 성향, 좋아하는 연예인의 소식은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죠. 평범한 사람들이 특별한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남다른 점은 꼭 있거든요. 광맥이 탁 터지는 듯한 그 부분이 되게 오묘하면서도 재미있어요. 그게 바로 저희가 캐치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고요.”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이나 두루뭉술한 이야기가 나올 경우 인터뷰를 했어도 콘텐츠로 만들지 않는다.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왜 기꺼이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지는 알 수 없다. “자신의 이야기가 어딘가에 남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정성균 편집장의 추측이다.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기는 한데 온라인에 이상하게 올라가서 퍼지는 걸 원하지는 않고요. 그래서 인터뷰 대상을 섭외할 때, HOS가 당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좋은 채널이라는 걸 설득하려고 노력해요.”

모든 이에게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은 HOS 프로젝트의 뿌리다. 상대에게 특별함을 찾으려는 노력은 일상에서도 이어진다. “주위 사람들한테 ‘언제 행복하냐’ ‘요즘에 가장 좋았던 게 뭐냐’고 늘 물어봐요. 사람들이 ‘너 만나기 전에는 항상 그 대답을 준비해온다’고 할 정도로.(조영은 인터뷰어)” “내가 만약 저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할까 혼자만의 대답을 생각해보기도 해요. 굳이 찾아보면 이런저런 게 특별할 수도 있겠구나,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다 똑같은 하루는 아니겠구나, 그런 포인트를 일부러 의식하려고 해요.(임소이 포토그래퍼)”

사진과 글, 번역본이 함께 올라오는 '휴먼스 오브 서울' 게시물. ⓒ휴먼스 오브 서울 인스타그램 계정 갈무리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감정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통한다. HOS는 처음부터 영문 번역본을 함께 올렸다.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는 한국에 온 외국인들에게 ‘두 유 노 김치?’ ‘두 유 노 싸이?’를 묻던 시대였다. 연예인의 모습도 아니고 드라마에 나온 모습도 아닌,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현재 HOS 멤버 12명 중 절반인 6명이 번역가일 정도로 번역에 공을 들인다. “어르신들이 쓰는 옛날 말투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뒤져서 느낌을 살려요. ‘돌잔치’ 같은 영어에 없는 단어를 어떻게 표현할까 일주일 내내 궁리하기도 하고요.” 강리나 번역가의 말이다. 매끄러운 번역 덕분에 영어권인 필리핀에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HOS 게시물을 그대로 긁어다 게재하는 사칭 계정이 생길 정도였다.

HOS의 또 다른 특징은 누가 인터뷰를 했는지, 사진을 찍었는지, 번역을 했는지 이름을 적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바이라인이 없다. 구독자들이 인터뷰어라는 ‘매개체’를 의식하지 않고 곧바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터뷰를 할 때에는 인터뷰 대상에게 이름이나 연락처 등을 묻지 않는다. 개인정보를 물으면 인터뷰이가 부담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콘텐츠를 올렸을 때 당사자가 직접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기도 한다.

구독자는 HOS 팀을 구성하는 ‘제2의 멤버’다. “예전에 망원동 골목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리어카에 실린 채소를 파는 분이었는데, ‘미끄러지지 않고 언덕을 넘어가려면 반듯이 올라가지 말고 요리조리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그 글 밑에 누군가 친구를 태그하고 ‘인생을 반듯이 가려고만 하면 미끄러지는 거야, 천천히 지그재그로 가자’라는 댓글을 남겨주신 거예요. 그 댓글로 인터뷰가 완성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영은 인터뷰어가 말했다.

HOS 멤버들의 바람은 소소하다. 임소이 포토그래퍼는 단지 계속해왔던 걸 앞으로도 잘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월급도, 사무실도 없는 프로젝트가 10년 넘게 이어진 남다른 비결은 딱히 없다. 그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단순한 호기심이 전부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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