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좌 완등 위해 죽어가는 사람 두고 올랐다?

오영훈 2023. 9. 8.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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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1일 만에 히말라야 14좌 오른 하릴라, 도덕성 논란
하릴라 “다른 등반가들은 무시… 우리 팀이 먼저 끌어올렸다”
오스트리아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공개한 사고 당시 보틀넥 구간 전경. 동그라미 친 부분이 하산이 위치한 지점이다. 사진 필립 플래믹.

노르웨이의 크리스틴 하릴라(37)가 K2를 끝으로 올해의 프로젝트였던 히말라야 14좌를 단 3개월 1일 만에 모두 올랐다. 그런데 마지막이었던 K2 등반 당시 사고로 부상 당해 죽어가는 등반가를 '기록 수립을 위해 못 본 체 돕지 않고 지나쳤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하릴라만이 아니라 같은 날 등반했던 다른 등반가 수십 명도 그를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시즌 K2의 날씨는 매우 지독했다. 정상 등반이 가능할 만큼 날씨가 좋았던 날은 7월 27일 단 하루였다. 그 전날 저녁 마지막 캠프를 출발한 등반가들은 선두에서 고정로프를 직접 설치하며 올라야 했기에 매우 더딘 속도로 올랐다. K2의 해발 8,200m 부근은 보틀넥(병목 지역)이라 불리는 곳으로, 약 400m에 걸쳐 50~60도 경사의 빙벽으로 형성된 위험한 구간이다. 과거에 눈사태나 추락 등으로 수많은 사망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등반가들이 이곳을 오르던 도중 새벽 2시 15~25분경에 사고가 발생했다. 선두에서 두 번째로 가던 포터가 로프에 매달린 채 5m가량 추락했다. 파키스탄 고소포터 무함마드 하산(27)이었다. 러시아계 원정대행사인 '세븐서밋클럽'에서 고용한 인물로, 각 원정대에서 3명씩 차출했던 정상부 로프 설치 팀의 보조 인력이었다. 하산은 5m 아래 매달려 충격으로 의식을 잃은 듯했고, 산소마스크도 부서졌다.

이 사고 상황은 오스트리아 방송사 '세르부스TV'의 드론이 포착했다. 다큐멘터리 촬영 차 K2를 올랐던 필립 플래믹은 드론 촬영을 위해 보틀넥 하단부에 있었다. 새벽 5시를 전후해 1시간가량 드론으로 등반 장면을 촬영했다. 내려와 영상을 확인해 보니, 로프에 매달린 하산이 스스로 다리를 움직이는 것 같은 장면이 있었다. 사고가 난 뒤 두 시간 이상 지난 뒤였다. 즉 하산이 아직 살아 있는데 아무도 구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은 촬영 팀의 빌헬름 슈타인들은 "50명 이상의 등반가들이 아직 살아 있는 그를 지나쳤고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하산의 아내, 세 아들과 모친 등 유족을 찾아가 면담한 뒤 웹사이트 '고 펀드 미'로 모금을 진행해, 목표 금액 13만 유로(1억9,000만 원)를 5일 만에 모았다.

K2 등정을 마친 크리스틴 하릴라. 사진 크리스틴 하릴라.

하릴라 "오히려 우리 팀이 선제 구조"

한편 하릴라는 며칠 뒤 장문의 반박문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뒤에서 오르던 다른 팀에 소속된 하릴라를 포함한 다른 동료들이 한 시간 이상 시간을 들여 하산을 가까스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이후 하릴라와 그의 팀은 눈사태가 났다는 보고를 받고 팀원 체크를 위해 정상을 향해 떠났고, 대신 팀의 다큐멘터리 촬영대원인 가브리엘 타르소가 남아 하산에게 자신의 산소마스크를 공유하고 식수를 나누어 주면서 두 시간 이상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등반가들은 이들을 지나쳐 정상으로 향했다. 가브리엘은 산소가 떨어짐에 따라 산소통을 구하고자 정상 팀으로 합류했다. 하릴라와 다른 일행은 오전 11시 정상에 섰다.

하릴라는 "사고가 난 지점은 협소하고 가파른 빙벽 위였으며, 모두 극심한 피로 속에 있는 고소였다. 아래에 여러 등반가들이 줄을 서서 하나의 로프에 매달려 있었다. (하산이) 죽음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즉 추락한 지점에서 끌어올려둔 점, 대원 한 명을 남겨둔 것으로 구조를 위한 노력을 했고, 설마 죽음으로 이어질지 몰라 더 적극적인 구조활동은 하지 않았다는 것.

결국 하릴라를 포함해 여러 등반가들이 구조를 위해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가 도마에 올랐다. '푸르텐바하 어드벤처'의 루카스 푸르텐바하는 이런 상황이라면 "모두가 정상 등반을 중지하는 게 맞다. 산소 장비든 정상이든 다 포기하고 돕는 게 우선이다"라고 강조했다. 즉 하산에게 산소마스크를 새로 씌우고 내려 보내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산의 고용주였던 '세븐서밋클럽'에서 적절하게 관리와 보호를 했는지도 비판 대상이 됐다. 하산은 이전까지 평지 포터로만 일했을 뿐 이런 수준의 고산등반 경험이 없었다고 한다. 등반 기술이나 장비 수준, 복장도 충분치 못했다. 중간에 그를 되돌려 보내라는 권유도 있었는데 세븐서밋클럽이 이를 무시했다는 후문도 있다.

K2 전경. 사진 재커리 그로센.

이 소식은 세계 주요 언론이 전하면서 크게 화제가 됐다. 영국 유명 원로 산악인 스티븐 베너블즈는 "8,000m 산에서 등반은 끝났다. 자기만의 영광을 찾는, 겉만 번지르르한 카르텔이 독점하는 시대다. 이건 등반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고 했다. 국제산악연맹의 등반위원장 그렉 모슬리(남아프리카공화국)도 "8,000m 봉우리를 오르는 사람은 모험 관광객으로, 등반의 역사와 윤리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일갈했다.

반면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시도했던 영국 앨런 힝크스는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것 같다"고 하릴라의 구조 시도를 평가했다. 또한 "그런 곳에서 부상으로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라면 생존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들것에 사람을 실어 내리려면 최소 8명이 있어야 하고, 다른 8명이 교대해 줘야 하지 않나"며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짐꾼을 올린 대행사를 비판했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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