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격이 다시 올라올 때까지 버텨보렵니다” 이보나의 영원한 도전[인터뷰&]

윤은용 기자 2023. 9. 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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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보나. 대한사격연맹 제공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사격 황제’ 진종오(서울시청)가 첫 올림픽 메달을 따낸 대회였다. 진종오는 이후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메달을 거머쥐며 한국 사격의 전설이 됐다.

진종오에 가려져 있지만, 아테네 올림픽은 한국 사격에 또 다른 기록이 세워진 대회였다. 당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트랩과 더블 트랩에서 깜짝 메달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주인공이었던 이보나(42·부산시청)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태극마크를 달며 날아가는 물체를 맞추는 클레이 사격의 전설이 됐다. 이제는 은퇴를 고민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그는 지금도 세계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보나는 지난 5일 창원국제사격장에서 기자와 만나 “그동안 아시안게임에 많이 출전했는데, 지금도 부담을 안 가질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모든 것을 순리대로 하면서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결과는 반드시 좋게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각오를 밝혔다.

이보나는 한국 클레이 사격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존재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따낸 은메달(더블 트랩)과 동메달(트랩)은 한국 클레이 사격 사상 최초이자 지금까지 나온 메달의 전부다.

사실 이보나는 원래 공기소총을 희망하는 선수였다. 하지만 1999년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한 뒤 클레이 사격으로 종목을 전환했다. 자신이 원해서는 아니었다. 이보나는 “테스트를 받아서 상무에 뽑혔는데, 그때만 해도 공기소총으로 들어간 줄 알았다. 그런데 당시 상무의 트랩 종목 감독이었던 박철승 감독님의 권유로 하게 됐다”며 “당시 감독님이 내가 걸어오는데 빛이 났다고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구나 싶었다. 결국 그렇게 종목을 바꿔 올림픽에서 메달도 땄다. 진짜 지도자를 잘 만났다”고 말했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보나. 대한사격연맹 제공



2003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후 올해로 대표팀 생활만 벌써 21년차다. 아시안게임도 2006년 도하를 시작으로 이번 항저우 대회까지 무려 5번을 나섰다. 아시안게임에서 딴 메달만 6개(금1·은2·동3)다. 이보나는 “(진)종오 오빠랑 거의 같은 시기에 대표팀 생활을 시작했다. 오빠는 중간중간 대표팀을 안 했을 때도 있었는데, 난 한 번도 태극마크를 내려놓은 적이 없다”며 “아시안게임은 단체전도 있어서 젊은 선수들을 받쳐주고 끌어줄 사람이 필요해 계속 하고 있는 것도 있다. 책임감, 의무감 같은 것보다는 그냥 주어진 상황이 그런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내가 맏언니이고, 그래서 좀 더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 후배들이 나를 보며 더 오랫동안 선수로 뛸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존재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많은 나이에도 여전히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이보나는 분명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보나가 아직까지 태극마크를 달아야 할 정도로 한국 클레이 사격의 성장이 지지부진하다는 뜻도 된다. 오랜기간 대표팀 생활을 해오면서 보고 느낀 것도 많은 이보나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크다. 이보나는 “일단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아테네 올림픽이 끝난 후 내가 해야할 역할을 잘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며 “실업팀이 좀 더 많이 생겨 클레이 사격을 지원해줬으면 한다. 한화갤러리아에서 나와 2년 동안 소속팀 없이 개인자격으로 대회에 참가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지원해주는 팀이 없으면 다른 선수들은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어느덧 40대에 접어든 이보나도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만둘 생각은 없다. 이보나는 “예전에 이경규씨가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에 ‘한 명이라도 박수를 안 칠 때까지 활동하겠다’고 얘기한 것을 보고 정말 멋있게 느껴졌다”며 “선수들이 더 많이 생겨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설 때까지는 내가 좀 더 버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평생을 승부의 세계에서 살았기에 좀 힘들긴 하지만, 한국 사격이 지금보다 더 발전할 때까지는 잘 버텨보겠다”고 다짐했다. 베테랑 사수 이보나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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