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선 GDP·GDI 격차가 불황 신호라는데 韓은 다른 이유 [조지원의 BOK리포트]
민간 소득 여건 약화로 침체 임박 해석
GDI·GDP 격차 벌어진 건 美 특유 요인
美 제외 모든 국가는 ‘삼면등가의 원칙’
생산·지출·분배 국민소득 같도록 측정
韓 GDP·GDI 격차는 교역조건 악화 탓
“韓美 GDI 용어만 같을 뿐 다른 지표”
최근 미국에서 국내총생산(GDP)과 국내총소득(GDI) 간 격차가 역대 최대로 벌어지면서 이를 경기 침체 신호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생산 지표인 GDP가 아직 양호한 모습이지만 소득 지표인 GDI가 2분기 연속 감소한 만큼 미국 경기가 곧 꺾일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이달 5일 블룸버그는 미국의 GDI가 GDP 대비 3790억 달러 적은 수준으로 두 지표 간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고 전했다. 지난해 3분기 이후 실질 GDP 감소세가 중단된 반면 실질 GDI가 지난해 4분기(-3.3%)와 올해 1분기(-1.8%) 연속 감소한 결과다. 블룸버그는 1973년 이후 GDI가 GDP보다 경기침체 예측 관련 신뢰성이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만큼 9월 이후 경기가 꺾이고 겨울(침체) 국면에 진입할 수 있음을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GDI를 활용한 경기 진단이 종종 나온다. 미국 실질 GDP가 지난해 1분기(-1.6%, 전기 대비 연율 기준)와 2분기(-0.9%) 연속으로 역성장했을 당시에도 실질 GDI를 근거로 경기 침체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GDP 부진에도 민간 부문의 소득 여력을 나타내는 GDI 증가율이 이를 웃돌았기 때문이었다. GDP가 시간이 지나면서 GDI로 수렴하는 만큼 GDI를 통해 경기를 진단해야 한다는 일부 연구도 있다.
미국에서 실질 GDP와 실질 GDI 격차가 크게 발생하면서 이같은 분석이 나오는 것은 처음부터 명목 GDP와 명목 GDI가 다르게 측정돼 따로 발표되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ureau of Economic Analysis)은 GDP과 GDI를 같은 수준으로 일치시키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소득 측면에서 측정한 GDI가 생산·지출 측면에서 측정한 GDP와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GDP(생산)=GDI(분배)=GDE(지출)’라고 보는 ‘국민소득 삼면등가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한 방식이다.
어느 국가나 GDP는 생산, 지출, 분배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측정할 수 있다. ①생산국민소득은 농림어업,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 산업과 정부 생산자로 이뤄진 항목이다. ②분배국민소득은 피용자보수, 영업잉여, 고정자본소모 등으로 본다. ③지출국민소득은 최종소비지출, 총고정자본형성, 재고증감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세 가지 중 어떤 방식으로 산정하더라도 같은 값이 나오는 것을 국민소득 삼면등가의 원칙이라고 한다.
한국은행의 ‘우리나라의 분기 국민계정(2021)’에 따르면 생산 주체인 기업이나 정부가 노동·자본·토지·경영 등 생산요소를 투입해 생산활동을 수행한 결과로 발생한 소득이 ‘생산국민소득’이다. 여기서 생산에 참여한 근로자는 급여를 받고 정부는 세금을 받게 되며 나머지 이윤은 기업에 돌아가는데 이를 ‘분배국민소득’이라고 한다. 분배된 소득은 다시 개인이 소비하거나 기업이 투자하게 되는데 이를 ‘지출국민소득’으로 본다. 만들어서(생산) 나누어 갖고(분배), 쓰는(지출) 양이 모두 같다는 원칙이다.
한은은 생산접근법으로 경제 부가가치를 측정한다. 제조업·서비스업 등 생산 측면에서 기초 자료를 수집해 국민소득을 추계하는 과정에서 피용자보수·영업잉여 등 분배 측면에서도 자료를 수집해 양 자료 간 오차를 줄여가며 GDP 수준을 측정한다. 이와 별도로 소비·투자 등 지출 측면에서도 국민소득을 추계한 이후 생산·분배 측면에서 나온 GDP와 세부 부문을 일치시키고 상호 비교해 GDP 수준과 성장률을 확정한다. 생산·분배·지출 등 세 가지 갈래로 GDP를 측정하지만 결국 연간 확정치는 같게 된다.
우리나라 역시 ‘국민소득 삼면등가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명목 GDI는 명목 GDP와 같다. 다만 명목 GDI에는 외국인이 국내서 만들어 낸 소득(국외지급요소소득)도 포함되기 때문에 국민총소득(GNI)을 계산할 땐 이를 제외해야 한다. 대신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만들어 낸 소득(국외수취요소소득)을 포함한다. 명목 GDI에 국외순수취요소소득(국외수취요소소득-국외지급요소소득)을 합친 값이 GNI다. 이를 인구로 나눈 1인당 GNI를 통해 국민 생활 수준을 판단한다.
또 하나 알아둬야 할 것이 명목 지표와 달리 실질 GDP와 실질 GDI는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생산 지표인 실질 GDP를 소득 지표인 실질 GDI로 전환하려면 교환되는 상품 간 상대가격 변화에 따른 구매력 변동분을 감안해야 한다. 국민경제 전체로 봤을 때 우리 국민끼리 거래는 결국 손익이 상쇄되지만, 외국인과 무역으로 거래할 땐 손익이 상쇄되지 않는다. 따라서 실질 GDP에서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실질 무역손익’을 더한 값을 실질 GDI로 계산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미국은 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GDP와 다른 GDI를 발표하고 있을까. 미국은 소득 측면에서 자료를 입수하고 GDI를 측정하는 방법이 발달한 만큼 이를 독자적으로 발표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GDI보다 GDP를 더 중요 지표로 보고 있다. 두 지표 간 차이가 발생했을 때 통계상 불일치 항목을 GDI 측에 넣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도 실질 GDP와 실질 GDI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다. 지난 5일 발표된 올해 2분기 잠정 국민소득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실질 GDP가 전기 대비 0.6% 성장했으나 실질 GDI는 전기 대비 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0.3% 감소하면서 6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 3분기 이후 5년 넘게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실질 무역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데 지난해 3분기부터 손실 규모가 30조 원 이상으로 확대된 상태다.
이는 미국과 같은 직접적인 경기침체 신호라기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지표보다 체감경기가 나빠진 것으로 봐야 한다. GDI는 물량에 변함이 없어도 특정 재화의 가격이 하락하면 소득이 줄었다고 평가되기 때문에 실질소득이 줄어들면서 체감경기가 좋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실질 GDP와 실질 GDI 차이 대부분이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주요 수입품인 유가가 차지한다. 이후 반도체 가격이 오르고 유가가 내리면 실질 GDI는 실질 GDP보다 커질 수 있다.
미국에서도 GDP와 GDI의 격차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전혀 다른 데이터를 통해 따로 측정하는 값인 만큼 통계적 불일치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삼면등가의 원칙에서 보면 GDP와 GDI는 같기 때문에 오히려 통계적인 불일치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의 실질 GDP와 실질 GDI 값의 차이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연구·분석의 영역이지만 아직 이론적인 근거가 명확하진 않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와 미국이 쓰는 ‘GDI’는 용어만 같을 뿐 사실상 다른 지표로 봐야 한다. 한은 관계자는 “통계가 사실상 다르기 때문에 미국과 같은 분석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봐야 한다”며 “우리나라에서 GDP와 GDI 차이는 교역조건에 따른 실질무역손익을 의미할 뿐 미국과 같은 개념으로 분석하긴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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