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방위 아닌가요? 정당방위와 쌍방폭행 사이의 경계에 대하여[로앤톡]

청년이 미국에서 유학 생활 중 잠시 친구들과 시간을 갖기 위해 한 음식점에 들렀다가, 외국인 남성이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보았다. 외국인 남성은 영어로 온갖 욕설을 섞어가며 한국인을 비하하고 있었다. 청년은 “우리도 영어 다 알아들을 수 있으니 그만해달라”고 하며 외국인 남성을 진정시켜보려 하였으나, 오히려 외국인 남성은 청년이 있는 테이블로 와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유리잔을 벽에 던져 깨기도 하고 테이블에 걸려 넘어지면서 테이블도 함께 넘어졌다. 청년의 친구들은 외국인 남성을 제지하기 위하여 몸을 결박하려던 중 청년은 넘어진 외국인 남성의 어깨를 두어 번 찼다. 이미 외국인 남성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윤예림 법무법인 길도 변호사

청년은 자신이 피해자라며 경찰에 신고하였으나, 목격자의 진술 및 CCTV 등의 증거로 청년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었다. 즉 청년과 외국인 남성은 쌍방폭행으로 입건되었다. 청년은 정당방위가 아니냐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정당방위는 위법성 조각 사유 중의 하나이다. 어느 사람의 행위가 처벌받기 위해서는 위법성이 있어야 하는데, 정당방위, 피해자의 승낙 등으로 이루어진 행위에 대하여서는 위법성이 성립하지 않아 처벌되지 않는다.

정당방위는 행위가 일어난 당시의 사정과 행위 양태를 고려해 ‘상당한 이유’가 있는가를 판단한다. 형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접하는 매우 유명한 판례가 있는데, 성폭행에 저항하다 여성이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는데,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고 중상해죄로 6개월의 실형이 나온 사례가 있다. 이 사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고, 최근 여성은 재심을 청구하여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정당방위 판단에 중요한 것은 ‘상당한 이유’가 있느냐인데, 사회상규에 비추어 상당한 정도를 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행위가 일어난 당시 사정과 행위 양태를 따져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 정도, 침해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 등을 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국인 남성과 싸움에서 정당방위가 아니냐면서 억울함을 호소한 청년의 경우, 이미 제압을 당한 외국인 남성을 발로 어깨를 두어 번 찬 행위에 대하여 정당방위로 볼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었다. 외국인 남성이 위협을 하고 위험한 상황을 만든 것은 맞지만, 청년에게 가깝게 다가왔을 때 이미 넘어지고 결박된 상황에서 청년이 어깨를 때린 것은 폭행에 해당한다. 청년으로서는 덩치 큰 외국인이 완전하게 제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으나, 술을 마시고 이미 쓰러진 사람을 발로 차는 것은 개인적인 분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매우 많다. 먼저 시비를 걸었고, 먼저 폭행을 시작하여 자신도 맞대응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당방위가 아닌 쌍방폭행이라니. 하지만 일단 상대방이 먼저 폭행을 시작하였다 하더라도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닌데도 발생한 폭력은 상대방에 대한 폭행으로 평가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당방위의 범위를 너무 좁혀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정당방위는 어디까지나 ‘정당’해야 한다. 일단 급한 상황을 넘겼다면 그다음은 수사기관과 법원의 몫이지, 내가 무언가를 더 해보려 하다가는 정당방위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판단된다.

<윤예림 변호사 (법무법인 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