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앞으로 매고 노이즈캔슬링 끄고"…'흉기난동' 트라우마 언제까지
당분간 오인신고 이어질듯…전문가 "공포 쉽게 안 사라져"
(서울=뉴스1) 조현기 유민주 기자 = "지하철에서 무서워서 내렸어요"
매일 서울지하철 4호선을 이용하는 김모씨(32·여)는 최근 출·퇴근길에 불안감에 주위를 둘러보는 습관이 생겼다. 무선 이어폰을 끼더라도 주위 소리를 들을 수 있게 주변소리 차단 기능을 끄거나 이전보다 음량을 줄였다.
그는 "최근에 공공장소에서 흉기 난동 등 이상한 일들이 계속 발생하면서 긴장하면서 다니는 것 같다"며 "솔직히 예전엔 별거 아니라고 넘어갔는데 최근에 지하철 안에서 뭔가 '쿵' 소리가 나서 불안해서 다음 정류장에 내려서 다음 열차를 타고 갔다"고 고백했다.
이어 "솔직히 누군가는 '유난 떠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건 없을 것 같다"며 "지하철에선 가방도 앞으로 메고 있다. 그나마 좀 흉기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1호선을 매일 이용하는 윤모씨도 "1호선에 워낙 유별난 분들이 많아서 그동안에는 그냥 눈 감고 무시했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다"며 "얼마 전에 지하철 안에서 승객 한명이 갑자기 술을 벌컥벌컥 마셔서 놀라서 옆 칸으로 옮겼다"고 고백했다.
신림역·서현역 흉기 난동 등 연이은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서 불안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일부 승객들이 '흉기 난동'으로 오인해 대피하면서 부상당하는 소동까지 연일 일어나고 있다.
8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최근 이틀 연속 출퇴근길에 흉기 난동이 발생한 것으로 오해해 지하철 내에서 소란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승객은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지난 6일 출근길인 오전 8시23분쯤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 노숙인을 흉기 난동범으로 오인한 승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발생했다. 탑승객 중 한 명이 노숙자로 추정되는 신원 불상의 남성이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자 그를 흉기난동범으로 오인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에 급히 하차를 시도하던 승객 4~5명이 뒤엉키며 경상을 입었다. 그중 1명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지난 5일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비슷한 일이 이었다. 지하철 9호선 메트로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20분쯤 20대 남성이 열차를 기다리던 승객을 추행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비명을 지르자 다른 승객들이 흉기 난동이 벌어진 줄 알고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지하철뿐만 아니라 길거리와 전시장 등 공공장소에서도 흉기난동을 오해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마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전모씨(51)는 "최근에 전시회장을 다녀왔는데 어떤 사람이 뭔가를 계속 뜯으려고 했는데 뜯기지 않았다"면서 "이에 그 사람이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냈는데, 이 모습을 보고 한 사람이 경찰에 신고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흉기난동이 일어난 서현역 일대인 분당에서 사는 직장인 손모씨(27·여)는 "길 가다가 조금이라도 걸음걸이가 이상하거나 눈빛이 이상하면 바로 방향을 틀거나 경보로 벗어난다"면서 "사람이 많으면 그나마 좀 나은 것 같지만 사람이 없으면 무섭다. 미리미리 무서운 상황을 안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강력 범죄가 계속 발생하면서 다수가 흉기난동 오인 상황에 동조할 수 있는 상황이 돼 당분간 흉기난동 오인 소동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상균 백석대 교수(전 한국범죄심리학회장)는 "언론과 주위에서 일련의 범죄 사실을 접하면서 사람들이 자율신경계가 예민해져 아드레날린이 많이 생성되고 과민해져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조그마한 일도) 집단이 동조하는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고 설명했다.
프로파일러 출신인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강력 범죄가 연이어 반복되면서 불신이 늘어나고 있다"며 "범죄 현상이 사회화가 되면, 이 공포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당분간 흉기난동 오인 소동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6일 지하철에서 승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연일 벌어지자 '긴급상황 시 대응법'을 안내하고 나섰다.
공사는 긴급상황 발생 시 비상호출장치나 전화·스마트폰을 이용해 직원에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 후 지시에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역 화장실에도 칸마다 '비상콜폰'이 있으며 엘리베이터에도 비상호출장치가 있어 역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choh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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