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생명의 탄생과 인간의 출현은 우주의 명령”
생명의 기원과 진화 물리학적 해명
생명 포함 만물은 물질+정보로 구성
물질 속 정보가 생명 탄생 이끌어
기계 속의 악마
생명은 어떻게 물질에 깃드는가
폴 데이비스 지음, 류운 옮김 l 바다출판사 l 2만5000원
폴 데이비스(77)는 우주론과 천문학을 연구하는 영국 출신 이론물리학자다. 데이비스는 학문 인생의 상당 부분을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답을 찾는 데 바쳤는데, 2019년 펴낸 ‘기계 속의 악마’는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물리학과 생물학의 최신 성과에 기대어 풀어놓은 논쟁적 저작이다. 결론을 미리 이야기하면, 데이비스는 생명이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를 ‘정보’에서 찾는다. 정보야말로 ‘물질이라는 기계 속에 깃든 악마’다.
생명에 관한 물음은 생물학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물리학이 생물학적 물음을 묻는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양자역학의 위대한 이론가 에르빈 슈뢰딩거가 1943년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이름으로 한 연속 강의가 대표적이다. 슈뢰딩거의 그 물음을 이어받아 생명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해명해 가는 작업이 이 책이다. 데이비스는 슈뢰딩거 시대 이후로 물리학과 생물학이 비약적 발전을 거듭해, 이 물음의 해답이 저만치 내다보이는 인식의 ‘문턱’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물리학자가 생명이라는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주만물을 물리법칙으로 해명하는 것이 물리학이고, 생명이란 그 물리법칙 속에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아무리 복잡한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닌 이상, 물질세계의 기본법칙과 무관할 수 없다. 그러니 생명도 물리법칙의 연장 속에서 해명돼야 한다. 문제는 물질의 법칙과 생명의 법칙이 아주 다른 양상을 띤다는 데 있다. “생물에는 목표와 목적, 다시 말해 수십억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 있다. 반면에 원자와 분자는 물리법칙을 맹목적으로 따를 뿐이다.” 이 둘을 어떻게 통일성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데이비스는 바로 이 의문을 출발점으로 삼아 생명 자체의 고유한 성격을 밝히는 데로 나아간다.
생명체들은 자기 생명을 보전하거나 후손을 생산하려는 의도에 따라 행동한다. 그것이 의도 없이 행동하는 물질과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설명하려면 생명체의 물리화학적 특성에 무언가 다른 특성이 더해져야 한다. 이 책은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비유로 든다. 하드웨어가 아무리 정교하게 구성돼 있더라도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컴퓨터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생명체도 분자구조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런 물리화학적 바탕만으로는 생명체 구실을 하지 못한다. 생명체가 자기복제라는 생명의 고유한 행위를 하려면 반드시 복제의 프로그램 곧 유전체가 있어야 한다. 유전체는 극도로 복잡한 정보체계다. 그러므로 생명체란 물질과 정보가 결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컴퓨터와 생명체의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명확히 분리돼 있지만, 생명체에서 물질과 정보는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질적 바탕이 없다면 생명 정보는 깃들 곳이 없다. 물질은 정보를 실어 나르고 정보는 물질을 복제한다.
이쯤에서 데이비스는 생명 진화의 법칙을 들여다본다.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함으로써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 진화의 법칙으로 올라섰다. 앞 시대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유전이론은 패퇴해 역사의 뒷길로 사라졌다. 다윈 이론의 핵심은 생명의 진화가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론만으로는 그토록 놀랍고도 다채로운 생명의 진화 양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최근 사례를 보자. 미국 터프츠대학의 마이클 레빈 연구팀이 발표한 실험 결과는 다윈 이론에 심각한 의문을 야기했다. 이 연구팀은 플라나리아라는 편형동물을 둘로 나눈 뒤 머리가 있는 반쪽에 전기 자극을 주어 머리가 또 하나 생겨나게 했다. 양쪽으로 머리가 달린 플라나리아가 태어난 것인데, 이 머리 둘 달린 플라나리아를 다시 반쪽으로 자르니 또 다시 머리가 자라났다. 머리 둘 달린 플라나리아 두 마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은 후천적인 변형이 그대로 유전되는 것과 같다. 이걸 두고 ‘후성유전’이라고 하는데, 이런 후성유전은 플라나리아뿐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생물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후성유전은 후천적으로 획득된 형질이 유전된다는 라마르크 학설의 부활을 알리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더 눈여겨볼 것이 ‘정보 저장’ 문제다. 머리와 꼬리로 이루어진 플라나리아와 나중에 생성된 머리 둘 달린 플라나리아는 형태는 전혀 다르지만 유전적으로는 동일하다. 머리 둘 달린 플라나리아의 형태 정보가 유전자에 저장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 저장돼 있는가? 데이비스는 그 형태 정보가 세포 전체 혹은 몸 전체에 분산돼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거듭 분명해지는 것은 다음 사실이다. 생명체는 몸을 이루는 물질과 비물질적인 정보의 복합체이며, 이 정보는 유전자에 한정되지 않고 훨씬 더 넓은 범위에 퍼져 있다.
그렇다면 이 ‘정보’라는 것은 생명체의 탄생과 함께 처음 출현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데이비스는 말한다. 생명 발생 이전의 물질세계도 물질 자체와 함께 어떤 정보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정보가 물질의 운동에 방향성을 준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데이비스는 생명의 기원을 보는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하나가 생물학자 자크 모노가 이야기한 ‘통계적 요행’이다. 생명의 탄생과 인간의 출현은 무수한 우연이 중첩돼 일어난 기적 같은 사건일 뿐이라는 것이 모노의 관점이다. “우주는 생명을 잉태하지 않았고 생물권도 인간을 잉태하지 않았다.”
반면에 다른 생물학자 크리스티앙 드뒤브는 ‘우주적 명령’을 이야기한다. “생명과 인간은 우주 안에 잉태돼 있었다.” 다시 말해 우주의 물질에 담긴 자기진화의 정보 패턴이 생명에 친화적이었기에 생명 탄생이라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으며, 그 생명의 진화 속에서 인간과 의식과 마음이라는 극한의 복잡성 체계가 출현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데이비스의 생각은 드뒤브 쪽에 가깝다. 데이비스는 생명의 탄생을 우주의 명령으로 볼 때 우리 인간의 존재에 “우주적 수준의 의미”가 깃들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진정 집으로 느낄 수 있는 우주는 바로 그런 우주일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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