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혼자 두지 않을게,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름을 붙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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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코코에게'(창비, 2023)는 한 사람이 반려동물 '코코'와 살면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얘기가 있는 최현우 시인의 시를 이윤희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과 함께 담아낸다.
시를 읽을 때는 화자인 '나'와 코코가 산책 중에 나눌 법한 표정을 독자마다 제각기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면, 그림책을 읽을 때는 이들이 함께 거닐며 마주한 동네 풍경이 행간에 숨어 있지 않고 구체적인 장면으로 나타나 흥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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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언의 시동걸기]
코코에게
최현우 글 , 이윤희 그림 l 창비( 2023)
그림책 ‘코코에게’(창비, 2023)는 한 사람이 반려동물 ‘코코’와 살면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얘기가 있는 최현우 시인의 시를 이윤희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과 함께 담아낸다. 시를 읽을 때는 화자인 ‘나’와 코코가 산책 중에 나눌 법한 표정을 독자마다 제각기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면, 그림책을 읽을 때는 이들이 함께 거닐며 마주한 동네 풍경이 행간에 숨어 있지 않고 구체적인 장면으로 나타나 흥미를 더한다. 이 지면에서는 시를 만나기로 하자.
“가장 쉬운 이름을 골라 주었지/ 다른 이름을 가졌던 네가/ 같은 상처를 생각할까 봐// 마음에 드니?/ 내가 너와 살아도 되겠니?// 지하 주차장 버려진 박스 속에서 나를 따라온/ 나의 강아지// 코코, 저기 봐/ 코코 오락실 코코 헤어 코코 슈퍼 코코 살롱/ 세상에는 코코가 참 많아// 짧고 단순하고 반복하는 발음처럼/ 내 마음이 네게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코코,/ 너는 물고 질질 끌어당기며/ 가장 밝은 산책을 부탁했지/ 어둡게 누워 있던 내게/ 좋아하는 전봇대와 그 밑에 핀 풀꽃/ 놀이터 모랫바닥에 숨겨진 반짝이는 병뚜껑들과/ 천변의 붕어들을 보여주었지// 여기, 아직 많아/ 이렇게 감추어진 일들이/ 내가 찾은 재미있는 골목을 줄게/ 너의 두 발, 이렇게 뛸 때마다/ 즐거운 냄새로 충만해지는 날들을// 도무지 버릴 줄을 모르는 너를/ 다시는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름을 붙여 주었지// 늘 궁금해/ 너는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 네가 골라 준 나의 진짜 이름은// 코코,/ 부르면/ 견딜 수 있는 다정함으로// 세상보다 따뜻한 것을/ 한입 가득 물고서// 심장을 포개어 주려고 달려오는/ 작고 기쁜 영혼이었지” (‘코코, 하고 불렀습니다’ 전문)
밑줄을 긋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대목이 많다. 첫 번째 밑줄은 1연에 긋는다. 어두컴컴한 곳에 홀로 있었을 이를 안아주면서 너는 버려진 게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위해 여기 있는 것이라고 일러주는 사람의 마음을 배우면서. 그림책에서는 눈이 내리는 겨울날 소년이 저를 따라온 강아지에게 빨간 목도리를 둘러주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두 번째 밑줄은 7연에 긋는다. 누군가에게는 내쳐지고 허물어뜨려도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실은 “즐거운 냄새”와 삶의 리듬을 품고 살아가는 것임을 발견해주는 코코의 시선을 느끼면서. 그림책에서 코코는 재개발로 훼손되어가는 동네 사이사이에 숨겨진 생활의 보물을 찾아 나선다. 코코를 따라 걸을 때 동네의 풍경은 새롭게, 다르게 펼쳐진다. 세 번째 밑줄은 8연, “다시는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으로”라는 구절에 그어본다. 세상이 함부로 밀어내는 것들을 다시 살피고,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들의 연대를 새기면서.
그리고 지금 나는 그림책에 등장한 ‘나’와 코코 사이에 연결된 끈을 보면서, 외롭게 힘든 시간을 견디다 떠난 분들의 죽음마저 홀로 남겨둘 수 없다는 심경으로 거리로 나선 선생님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내쳐졌다고 여긴 이를 안아주는 마음, 훼손된 교육의 의미를 바로잡고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기를 그치지 않겠다는 마음, 무엇보다 상처받은 이들을 “다시는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많은 이름”으로 함께하겠다는 마음. 이제 우리는 그 마음을 안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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