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법의 테두리를 넘나드는 범죄와 사건의 현장, 바다
공해상 임신중지 시술과 포경선 추적 등 ‘다른’ 활동들도
“바다는 여럿으로 나뉜 곳이 아니라 오직 하나다”
무법의 바다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로 떠나는 여행
이언 어비나 지음, 박희원 옮김 l 아고라 l 3만2000원
2010년 8월18일 사조오양 소속 한국 원양어선 오양70호가 뉴질랜드 동쪽 바다에서 침몰했다. 선원 45명은 구조되었지만, 한국인 선장은 실종되었고 외국인 선원 다섯 명이 사망했다. 오양70호는 기다란 원통형 어망을 뒤로 끌고 다니는 선미식 저인망 방식으로 남방청대구를 잡았는데, 이날은 어망이 가득 차고도 남을 정도로 청대구가 잡혀 배가 어망에 끌려 내려가기에 이르렀다. 선원들은 어망을 끊자고 간청했지만, 선장은 어망을 계속 끌어올리라고 명령했다. 결국 기울어진 배 안으로 물이 들이닥쳤고, 마지막 순간에야 어망을 끊으려 했지만 침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양70호를 침몰시킨 것은 물이 아니라 탐욕이었다. 배가 물고기를 과하게 집어삼키려 하자 바다가 역으로 배를 집어삼킨 것이다.”
2017년 현지에서 사건 파일을 조사하고 생존 선원들을 인터뷰한 탐사 기자 이언 어비나가 내린 결론이다. 그가 뉴욕타임스에 연재한 기사를 바탕으로 낸 ‘무법의 바다’는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온갖 무법적 행태를 추적하고 기록한 책이다. 해상 노예, 불법 어획, 폐유와 유독성 쓰레기 투기, 밀항자들과 유기된 선원들, 공장식 포경선을 쫓는 환경 보호 활동가들, 공해상에서 이뤄지는 임신중지 시술 등 법의 테두리를 넘나드는 범죄와 사건의 현장이 생생하다.
오양70호를 침몰시킨 것은 탐욕만도 아니었다. 한국인 사관들은 인도네시아 무슬림 선원들을 개나 원숭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식수는 흙빛이었고 마시면 쇠 맛이 났다. 2011년에는 오양70호의 후임으로 뉴질랜드 수역에서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오양75호에서 인도네시아인 선원 32명이 탈출해 배에서 겪은 일을 증언했다. 한국인 갑판장은 지속적으로 성추행과 강간을 저질렀고, 맞아서 코가 부러지거나 부분적 시야 손상을 입은 이도 있었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선원은 냉장실에 갇혔고, 썩은 미끼를 강제로 먹였다. 노동은 20시간씩 이어지기 일쑤였고, 때로는 48시간 연속으로 일하기도 했다. 2014년 12월 베링해에서 침몰해 53명이 숨진, 역시 사조오양 소속인 명태잡이 어선 오룡501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책 제4장 ‘상습 범죄 선단’에 묘사된 이런 폭력과 인권유린의 한층 극악한 형태는 10장 ‘해상 노예’에서 만날 수 있다. 타이 어선에서 노예 노동을 하다 구출된 캄보디아인 랑 롱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웃옷을 입지 않은 채 목에 녹슨 쇠고랑을 차고 있었다. 타이 내 건설업 일자리를 제안하는 남자의 꼬임에 빠져 국경을 넘었던 그는 헐값에 팔려 바다 위를 떠돌아야 했다. 여러 배를 옮겨 다니며 일했고, “3년 동안 육지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무나 쇠로 된 막대로 맞아가며 일을 했지만, 아무리 일을 해도 갚아야 할 빚은 줄지 않았다. 2009년 유엔이 타이 어선에 팔려 온 캄보디아인 50명을 조사한 결과, 그 가운데 29명은 선장이나 사관이 선원을 죽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노예제는 엄연한 현실로 존재한다.”
미국 국적 크루즈선 캐리비언프린세스의 기관사 크리스 키스는 2013년 8월, 배의 기관실에서 ‘마법의 관’으로 통하는 불법 장치를 발견해 당국에 고발했다. 배에서 사용한 기름과 다른 더러운 액체를 법에 정한 대로 항구에서 하역하는 대신 몰래 바다에 쏟아 버리기 위한 구조물이었다. 이 배만이 아니라, “석유와 오물, 사체, 화학 발산물, 생활 쓰레기, 군수품, 심지어 시추기 같은 해상 구조물까지도 바닷속으로 사라져 블랙홀에 삼켜진 것처럼 영영 자취를 감출 수 있었다.” 최근에는 여기에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수가 추가되었다. “송출 업체에 인신매매되는 선원이나 바다에서 죽임당하는 어민과 달리 파도에 토해진 폐기물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희석은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르고, 그러면 더 이상 문제를 녹일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어둡고 끔찍하다. 그러나 같은 무법이라도 색깔이 사뭇 다른 사례들도 있다. 네덜란드인 의사 레베카 홈퍼르츠는 임신중지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들을 배에 태워 공해상으로 나가서는 임신중지 시술을 해준다. 자신의 행위가 무법이라 생각하느냐는 지은이의 질문에 홈퍼르츠는 답한다. “우리는 법을 어기는 게 아니라 우리한테 유리하게 활용하는 거예요.”
시셰퍼드는 그린피스 설립자 중 한 사람이었던 폴 왓슨이 과격한 활동 방식 때문에 퇴출된 뒤 새로 설립한 단체로, “그린피스보다 더 급진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포경선과 불법 어선을 추적하고 나포한다. 지은이는 2014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이어진 “해양 사상 최장기 불법 어선 추적”을 동행 취재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신조를 지닌 시셰퍼드 요원들은 천둥호 어망의 부표를 끊어 어망 일부를 해저로 떨어뜨리고 나머지 어망을 압수하며 끈질기게 이 배를 추적했고, 연료가 떨어진 천둥호는 결국 불법 조업 증거를 불에 태워 인멸하고 고의로 자침한다.
시셰퍼드 설립자 폴 왓슨은 일본과 코스타리카 경찰에 의해 제소되어 인터폴의 수배령이 떨어져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세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공장식 포경선인 일본의 닛신마루호를 추적하는 시셰퍼드의 활동에 할애된다. 멸종 위기로부터 고래를 지키고자 국제포경위원회는 상업적 고래 포획을 일시 중지하기로 했고 국제사법재판소는 일본의 남극 내 포경 중지를 명령했지만, 일본은 연구 목적을 빙자해 포경을 강행하며 국제사법재판소의 관할 범위에서 자국의 포경 활동을 빼겠다는 뜻을 유엔에 통지했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무단 방류는 일본의 이런 안하무인 격 처신의 또 다른 버전이라 하겠다. 책의 결론은 이렇다.
“바다는 여럿이 아니라 오직 하나다. 바다는 산성화와 투기, 남획 등의 힘으로 무수한 측면에서 연결된 곳이지, 사유재산, 국경, 정부 규제라는 개념 등으로 구획이 나뉘거나 규정되는 곳이 아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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