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마약 시장, ‘고위험 저수익’으로 만들어야
소비자부터 사회경제적 구조까지
‘처음과 끝’까지 가감 없이 설명
적극적 치료로 수요를 저감해야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
일상을 파고든 마약의 모든 것
양성관 지음 l 히포크라테스 l 1만8000원
“나는 코카의 이런 효과를 수십 번이나 직접 시험해 보았는데, 배고픈 것도 잠도 피로도 잊게 되며 지적인 노력의 효과도 더 높아진다.”
이런 고백의 주인공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코카에 대하여(Über Coca, 1884)’라는 논문에서다. 젊은 시절 프로이트는 코카인의 뛰어난 진통 작용과 각성 효과에 환호했다. “심지어 여러 번 반복 사용해도 그 흥분제를 더 사용하려는 충동적 욕망은 생기지 않는다”고도 했다. 앞부분은 맞고 뒤는 틀렸다. 프로이트는 코카인 덕분에 자신의 모르핀 중독이 나았다고 착각했지만 중독 약물이 바뀌었을 뿐이다.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는 가정의학 전문의가 최근 15년간 20만명의 환자를 만난 임상 경험을 토대로 ‘일상을 파고든 마약의 모든 것’(부제)을 풀어놓은 책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마약을 시작하고 중독되며 파멸해가는지(1부, 마약 하는 마음)를 살핀 뒤, 마약의 생산-유통-판매-소비를 둘러싼 사회구조적 병리 현상과 국제분업의 실태를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분석”(2부, 마약 파는 사회)하고 해법을 진단한다.
마약은 두 얼굴을 지녔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만병통치약, 다른 하나는 “황홀함을 넘어 천국을 맛보는” 쾌락을 미끼로 복용자의 육체와 정신을 파괴하고 당사자와 가족까지 파국으로 몰아가는 악마의 사과. 마치 마술이 놀랍고 환상적인 기적과 음험하고 파괴적인 흑마술로 나뉘는 것과도 같다. 그렇다고 마약(痲藥)을 ‘마법(魔法)의 약’으로 착각하진 말자. 마약의 한자 ‘마’는 ‘魔’(마귀)가 아니라 ‘痲’(저리다, 감각이 마비되다’는 뜻이다. 극심한 고통이 두려워 환자가 도망가거나 자살까지 했을 만큼 공포스러웠던 외과수술에 생명의 빛을 준 마취제도 마약류의 강력한 통증 억제 덕분이다.
마약은 의학적으로 인간의 뇌와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끼치며 중독성이 강한 약물이다. 인체에는 도파민(쾌락), 노르에피네프린(흥분), 세로토닌(행복), 엔도르핀(진통·환희) 같은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중독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도파민이다. 마약을 하면 “마치 둑이 터져 홍수가 난 것처럼” 도파민이 분출되며 환희의 절정을 경험한다. 문제는 평소 저장된 도파민을 한순간에 다 써버린다는 것. 그 다음부터 쾌락은커녕 극심한 갈증과 고통에 시달리며 더 강한 자극을 갈망한다. 그 과정에서 뇌 손상도 따른다.
한국에선 마약류를 성분과 의학적 사용에 따라 대마(대마·해시시), 마약(천연 마약과 그 추출물, 합성 마약), 향정신성 약물 등 세 범주로 분류한다. 약의 효능에 따라 업(up·흥분제), 다운(down·진정제), 환각제로 나눠 볼 수도 있다. 이중 의료용으로 허가된 향정신성 약물류를 뺀 나머지는 모두 ‘불법’이다.
마약류가 처음부터 불법은 아니었다.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외상이든 질병이든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아편뿐이었다. 코카인은 최초의 국소 마취제였다. 질병의 치료법은커녕 그 원인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편에서 모르핀, 모르핀에서 헤로인으로 농도가 진해질수록 내성과 의존성 같은 부작용도 커진다. 20세기 들어 의학 지식과 의료 기술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마약류의 효능보다 폐해가 도드라졌다. 국가 차원의 제재가 본격화한 것도 이때부터다.
마약은 부패한 정권, 가난한 나라에서 생산돼 부유한 나라에서 소비된다. 그 원동력은 엄청난 고부가가치다. 콜롬비아에서 500만원이던 코카인 1㎏이 미국에선 1억원 안팎에 거래된다. 콜롬비아의 농부가 커피와 코카 중 하나를, 아프가니스탄의 농부가 밀과 아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결론은 뻔하다. 가난한 농부부터 범죄 카르텔, 관료, 군인, 정치인까지 촘촘히 엮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은이는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마약을 둘러싼 지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마약류에 대한 지은이의 태도는 단호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일단 손을 대는 순간 파멸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그저 나쁘니까 하지 마라”는 식은 아니다. “마약의 처음(호기심)부터 끝(감옥·사망·자살)까지를 가감 없이 설명해 자연스레 마약의 위험성을 자각하도록” 했다.
마약 생산과 공급의 근본적 차단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지은이는 유통·판매의 금지와 병행한 ‘수요 저감’이 가져올 효과에 주목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인 마약 시장을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고위험 저수익)’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마약 중독자를 ‘범죄자’가 아닌 ‘환자’로 보고 처벌보다 “적극적인 치료”를 하는 것은 수요 저감과 직결된다. 처벌이 아닌 치료가 더 효율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일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비용도 훨씬 저렴하다. 지은이는 “이 책이 마약에 대한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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