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정보라의 ‘저주사회’…고통으로 죽은 자가 구원받을지니

임인택 2023. 9. 8. 05: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저주토끼'의 정보라 작가가 '붉은 칼'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다.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하고 피임 처방을 엄마로부터 받았던 경, 가정폭력으로부터 도망쳤으나 단 하나의 사회적 피난처를 찾지 못해 교단에 당도한 홍, 그 대가로서 교단의 충직한 사도가 되고자 '고통'에 사목했던 홍의 두 아들 효와 태, 제약회사가 실은 교단의 배후라고 의심하며 교단에 들어간 '민', 사실상 신의 위치에서 이를 모두 관찰하고자 하는 자 등이 때로 전형적으로 때로 전격적으로 맞물려 '고통받는 삶'의 의미를 추궁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설 ‘저주토끼’로 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가 스릴러 양식의 장편 ‘고통에 관하여’를 펴냈다. 한겨레 자료사진

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l 다산책방 l 1만8000원

‘저주토끼’의 정보라 작가가 ‘붉은 칼’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다. 지금껏 그가 쓴 소설 가운데 처음으로 스릴러의 형식과 기풍이 더해졌다. 통상의 스릴러가 사건의 실체와 진범을 좇는다면, 이 작품은 사건의 의미와 진리를 좇는다. 실은 정보라의 기풍인 거다. 주변부로 내몰린 여러 개인사가 형사사건에 얽히고설키나 책의 제목이 ‘고통에 관하여’일 수밖에 없는 이유라 하겠다.

한 제약회사가 만능의 진통제를 개발한다. 이는 다분히 병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고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되고, 고통이 인류에게 주던 겸손, 지혜, 영성 따위는 미덕일 수 없다. “사회적·문화적·철학적·정신적 의미의 고통에 대한 질문은 점차 사라”진다.

이에 맞서는 신흥종교집단이 있으니, “고통과 절망을 통해서만 지혜와 초월을 얻을 수 있”음을 교리 삼는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길이다. 교단은 고통의 생산과 재생산에 집중한다. 마침 그 제약회사가 후속 개발 중인 진통제는 약효 소멸 뒤 고통이 극심해진다.

교단에선 “고통만이 진실”로 섬겨지므로 신도들은 기도회에서 가해적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마치 두려움을 잊어 종교(신)가 불필요해질까 희극과 웃음을 차단하는 중세 교회의 논리(‘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와 조응한다.

교단 일원의 폭탄테러로 제약회사의 대표가 죽는다. ‘경’의 부모다. 그리고 12년이 지나 사실상 와해된 줄 알았던 교단의 지도자들이 연쇄살해당하며 다시 수사가 시작된다. 당시 회사 건너편에서 드론 폭파 버튼을 누른 이는 이제 교단 탈퇴 수감자로 경찰을 돕는다. 테러한 자 ‘태’와 부모를 잃고 홀로 된 경이 만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태에게 테러를 명령했던 형 ‘효’가 용의선상에 있지만 그도 곧 살해당한다.

사건의 진실도 목표가 아니라 이 사회의 골병을 문진하는 수단 같다.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하고 피임 처방을 엄마로부터 받았던 경, 가정폭력으로부터 도망쳤으나 단 하나의 사회적 피난처를 찾지 못해 교단에 당도한 홍, 그 대가로서 교단의 충직한 사도가 되고자 ‘고통’에 사목했던 홍의 두 아들 효와 태, 제약회사가 실은 교단의 배후라고 의심하며 교단에 들어간 ‘민’, 사실상 신의 위치에서 이를 모두 관찰하고자 하는 자 등이 때로 전형적으로 때로 전격적으로 맞물려 ‘고통받는 삶’의 의미를 추궁한다.

‘고통의 단독성’을 시사하는 대목이 시선을 붙잡는다. “…통증을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온전하게 표현하여 전달할 언어가 없었다.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흔히 그 의미가 왜곡되었다. 신체의 고통이 그러할진대 마음의 절망을 표현한 언어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았다.”

고통을 사회가 초래하여 개인화하는 현실에서 저 단독성은 더 악랄해지리라. 자멸, 자살이 곧 구원이 되기 때문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