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납 농·축협은 ‘사업 축소’…판로 잃은 농가는 ‘생존 위기’

김윤호 2023. 9. 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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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군급식 개선’ 피해 현실로
수의계약 줄이고 경쟁입찰 늘려
내년까지는 70% 유지한다지만
2025년 이후 계획은 알 수 없어
경기·강원 접경지대 농민 경영난
군납농협, 지난해 실적 18.5% ↓
“물량 현수준 지속…구제책 필요”
강원 양구군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군납 저장고에서 직원들이 감자를 살펴보고 있다.

“수십년간 접경지에서 각종 규제와 군부대 소음을 감수하며 농사를 지어왔는데 결국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처지에 내몰렸네요. 앞으로 농·축협 수의계약 비중이 더욱 줄어들면 우리 같은 군납농가들은 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국방부가 식자재를 조달할 때 농·축협 수의계약 물량을 해마다 줄이기로 하면서 경기·강원 접경지대 농민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오랫동안 군부대와 협력관계를 유지해오다 국방부가 갑작스레 정책을 변경하자 주요 판로를 잃은 농가는 생존기반마저 잃을 처지에 놓였다. 경쟁입찰 특성상 ‘최저가’가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다보니 국내 농산물이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지금 군납농가 대부분은 파산 직전입니다. 앞으로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는 물론이고,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어요. 궁여지책으로 3300㎡(1000평)가량 규모를 줄였는데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어요.”

강원 화천군 화천읍에서 1.32㏊(4000평) 규모로 배추·양파 등 밭농사를 짓는 김규철씨(67·상리)는 군납 수의계약 물량이 줄어든 이후 상황을 묻자 연신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인제군 북면에서 2.58㏊(7800평) 규모로 감자·오이·피망·풋고추 등을 재배해 군부대에 납품하는 이재석씨(71·월학리)는 “지난해 ‘군급식 개선 종합대책’이 시행돼 결국 군납 농축산물 공급규모가 이전보다 30% 넘게 감소했다”며 “농가는 물론 지역경제마저 휘청거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접경지대 농민이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이유는 국방부가 ‘농·축협 수의계약’ 체계를 무리하게 손본 탓이다. 국방부는 2021년 10월 군급식 개선 종합대책을 세우고 농·축협 수의계약 물량을 2021년 대비 2022년 70%, 2023년 50%, 2024년에는 30%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나머지 물량은 경쟁입찰을 거쳐 농·축협이 아닌 일반 급식업체나 농산물 가공업체 중심으로 납품망을 재편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농업계의 강한 반발이 이어지자, 내년까지는 농·축협 수의계약 물량을 70%로 유지하기로 한발 물러났다.

군납에 참여하는 농협도 사업량이 급격하게 위축되며 비상이 걸렸다. 현재 강원도 내에는 10개 농협이 군납사업에 참여한다. 이들이 집계한 군납 사업량은 2021년 1만7126t(458억원)에서 지난해 1만1933t(380억원)으로 17%가량 줄었다. 특히 사업규모가 가장 큰 화천군은 사업량이 2021년 4161t(101억원)에서 지난해 2968t(84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18개 농협이 있는 경기지역은 15.9%(640억원 → 538억원) 줄었다. 피해규모를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지난해 전국 48개 군납농협의 사업 실적은 1367억원으로 2021년의 1677억원보다 18.5% 축소됐다.

상대적으로 판로가 안정적인 무·배추 출하 실적도 하락세가 뚜렷하다. 인제농협(조합장 정성빈)에 따르면 무 출하 실적은 2021년 1∼9월 228t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153t, 올해는 92t으로 주저앉았다.

배추는 더 심각하다. 2021년 1∼9월 235t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183t, 올해는 불과 25t으로 집계됐다.

군납농가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농협경제지주 강원본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도내 군납 계약농가는 2021년 576곳에서 지난해 477곳으로 100곳 가까이 줄었다.

국방부는 2025년 이후 농·축협 수의계약 비중을 어느 선까지 유지할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군인 숫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무·배추보다는 김치 등의 완제품을 요구하고 있고, 장병들 역시 간편식을 선호하면서 원물 농산물을 중심으로 납품하는 군납농협의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경쟁입찰 비중을 높이겠다는 국방부 방침도 농·축협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저가 낙찰로 진행되는 경쟁입찰 특성상 100% 국내산 농산물만 사용하는 농협이 군납권을 따내기가 쉽지 않다. 실제 김치 1㎏ 단가를 보면 일반 업체가 3500원선인 데 반해 농협은 4200원선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국방부 군납방식 변경에 따른 접경지대 농협과 농민 피해 확산이 우려되면서 4일 경기 연천 임진농협에서 열린 경기농협 군납협의회(회장 현상태·임진농협 조합장) 정기총회에 참석한 조합장들은 농·축협 수의계약 비중을 70%로 유지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현상태 회장은 “2025년 이후 농·축협 수의계약 비율 확정은 내년 하반기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때까지 모든 군납농협들이 단결해 농·축협 수의계약 물량을 70%선을 유지해줄 것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명규 전국군납협의회장(화천농협 조합장)은 “농가들이 기존 무·배추 판로를 잃고 대체작물로 손실을 만회하려 하지만 여의찮아 정부 차원의 구제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며 “군 장병에게 신선하고 안전한 식자재를 오랫동안 공급해온 농·축협과 농민의 역할을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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