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472억원의 주인공, 바스키아의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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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홍콩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자그마치 472억원에 낙찰되었던 그림이 있다.
'전사'라는 제목의 그 그림이 서울 용산구에 있는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공개됐다.
한때 해부학에 빠져 있었던 영향인지 바스키아가 그린 인물들은 대부분 해골과 뼈대가 드러나 있다.
그러자 바스키아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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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홍콩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자그마치 472억원에 낙찰되었던 그림이 있다. ‘전사’라는 제목의 그 그림이 서울 용산구에 있는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공개됐다. 아시아 경매에서 판매된 서양 작품 중 최고가라고 하는데, 화가는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년)다. 그는 ‘블랙 피카소’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피카소처럼 창의적이고 열정 넘치는 천재라는 뜻이지만, 피카소와 다른 점이라면 바스키아는 자신의 명성을 오래도록 즐겨보지는 못했다. 안타깝게도 한창 활동해야 할 나이에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전사’는 바스키아의 인기가 치솟았던 1982년, 전성기의 작품이다.
미국 뉴욕 출생인 바스키아는 부모의 모국어인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에 유창했고, 청소년기에는 시와 신화 등 인문학에 두각을 나타냈다. 공식적으로 미술 수업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에게는 탁월한 미적 감각과 반항 기질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맨해튼 골목에서 몇몇 학생들과 스프레이 페인트로 몰래 그림을 그리고, ‘SAMO’(Same Old·예전의 그)라는 서명을 남긴 채 사라지곤 했다.
한때 해부학에 빠져 있었던 영향인지 바스키아가 그린 인물들은 대부분 해골과 뼈대가 드러나 있다. ‘전사’에서도 칼을 든 해골 인물이 보이는데, 장난스러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위협적으로 보인다. 흑인이 대접받기 어려웠던 시절에 만인의 왕이 되길 꿈꾸었던 그였다. 사진 속의 바스키아는 개구쟁이 같은 표정이지만, 내적으로는 전사처럼 주위의 편견들과 싸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떤 미술 평론가는 이 인물이 곧 바스키아이며, 진짜 왕을 알아보지 못한 군중에게 박해받는 예수를 연상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바스키아가 만난 최고의 인생 친구는 선배 미술가, 앤디 워홀이었다. 바스키아가 먼저 뉴욕 소호 거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워홀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 “내 그림을 10달러에 사시죠.” 그러자 워홀이 “흠, 좋긴 한데, 그림이 어째 손이 좀 덜 간 느낌인데”라고 답했다. 그러자 바스키아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 그림도 마찬가지잖아.” 워홀은 어린 친구의 대담함에 끌렸고, 둘은 곧 친해져서 함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워홀과 바스키아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됐다. 1987년에 워홀이 세상을 뜨자, 이듬해에 바스키아도 약물 중독으로 생을 마쳤다. 바스키아의 죽음이 워홀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워홀이 떠난 뒤 바스키아는 홀로 전사로 사는 게 어쩌면 피곤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스물일곱에서 멈추어버린 바스키아의 인생과 예술을 떠올리니, 472억원이라는 작품 가격이 마치 화가가 누려보지 못한 수십년의 나날들에 대해 매겨진 값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삶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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