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뭐해요?" "수능특강 풀어요!"...'의대 증원'에 반도체업계 '긴장'

김준석 2023. 9. 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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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미미미누 갈무리
[파이낸셜뉴스] "A기업 반도체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N년차 직장인입니다. 반도체 계약학과를 졸업하고 입사했습니다. 막상 입사하니 이 일을 평생할 수 있을까 고민이 생겼습니다. 필수 근속연수가 끝나 수능 준비에 나섰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직장 병행 수능 준비를 시작했지만 결국 결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퇴사를 하고 메디컬(의·치·한·약·수) 학과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입시 방향에 대해 상담을 신청합니다."
의대 광풍에 바짝 긴장한 반도체업계, 왜?

8일 기준 97만 구독자를 보유한 입시 유튜버 '미미미누' 채널의 'All About 입시' 코너에 한 달 전 올라온 사연 중 일부다. 의대를 비롯한 소위 메디컬 학과 '광풍'이 불면서 재수생·반수생에 이어 직장인들까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준비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의대 쏠림 현상이 더욱 더 강해질 것이라는 게 입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의대 정원 확대에 고심이 깊어진 곳이 있으니 바로 반도체업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인재 쟁탈전 속에서 채용전제형 계약학과를 개설해 우수 인재 입도선매에 나섰지만, 자칫 의대 증원으로 계약학과가 최상위권 학생들이 잠시 거쳐가는 '정류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023학년도 입시 기준으로 일부 반도체 계약학과의 수능 평균점수(백분위 기준)는 전국 의대 평균과 1점대까지 좁혀지면서 해당 우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2025년부터 의대 증원 잠정 합의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6월 2025년도 입시(2024년 수능)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6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의대정원 확대, 의료계와 공감대 이룬 상태"라며 "2025년까지 반영할 것"이라고 의대 증원을 공식화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의대 신입생 정원 확대를 논의한 정부가 환자·소비자·병원·전문가 등 여러 주체가 참여하는 보건복지부 소속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관련 협의를 시작했다.
공대 졸업생도 의대 '눈독'

이에 따라 의대 증원이 향후 몇 년간 입시계의 블랙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소위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대학의 전기전자공학부를 졸업한 김모씨는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전문연구원으로 병역을 해결하려고 했던 기존의 계획을 바꿔 군 입대를 했다. 김씨는 "군 입대를 해 다시 의대를 목표로 수능을 준비하려고 한다"면서 "주변 대학원 졸업 후 굴지의 반도체 회사의 연구원으로 입사한 선배들이 많은데, 생각했던 삶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아 진로를 변경했다"라고 전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현재 메이저 재수학원의 경우 3수 이상 N수생이 50%에 육박하고 있으며 40대 학생들도 간혹 보이는 정도"라면서 "SKY 재학생을 비롯해 반도체학과, 대기업 연계 계약학과 학생들도 의대 입시를 준비하러 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의 킬러문항 배제도 대학 졸업생 및 직장인 수험생들의 유입을 이끈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수종합학원 관계자 B씨는 "정부의 킬러문항 배제 관련 뉴스가 나오면서 반수반 등에 대한 입학문의가 많이 왔다"면서 "공무원의 인기가 시들면서 차라리 공무원 시험이나 전문직 시험처럼 장기전으로 의대만을 목표로 입시에 뛰어드는 학생들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의대 광풍에 공학 교육 '공동화' 우려
서울대 정문 전경. 뉴스1
의대 증원이 대학의 이공계 교육을 흔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장 올해 서울대 자연계열 합격자 평균 점수가 연세대와 고려대보다 낮았던 점이 그 예다. 임 대표는 "서울대 공대 일부 학과의 경우 3차까지 추가합격이 돌았다"면서 "의대와 중복 합격으로 인해 추가합격이 일어나면서 점수대가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증원규모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1000명 단위까지 늘어날 경우 서울대 공대 상위권 학과의 입시 점수 하락과 최악의 경우 결원모집까지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의대 정원 확대에 각 대학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신소재공학과에 재직 중인 한 교수는 "반도체 계약학과에 이어 이번엔 의대까지 증원하면서 공학 교육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해질 것"이라며 "공학 교육의 근간은 대학원인데 벌써 대학원생 모집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SKY 대학에 다니다가 자퇴 등으로 학교를 그만둔 학생이 최근 5년 중 가장 많은 2131명으로 집계됐다. 서울대 경영대를 비롯한 인문계열 '중도탈락자'가 급증했는데, 이를 두고 교차지원으로 인문계열에 진학한 이과생이 의대 재도전을 선택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도 탈락자가 많은 학과는 연세대 공학계열(119명), 고려대 생명공학부(69명), 고려대 생명과학부(65명), 서울대 생명과학부(25명), 서울대 응용생물화학부(24명),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22명) 등이 있었다.

삼성 반도체 수장도 "인력이 부족하다"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사장이 서울대학교에서 '꿈과 행복의 삼성반도체: 지속가능한 미래'를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의대 광풍으로 계약학과를 개설하는 등 인재 확보를 위한 자구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반도체업계의 근심이 깊어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계약학과 학생들 관리에도 고심인데 이젠 재직 중인 직원들의 이탈까지 신경 써야하는 상황이 허탈하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정년이나 소득면에서 월등히 우세한 의료계와 비슷한 처우를 기업이 급작스럽게 제공하기에도 무리가 있어 인력관리나 복지 측면에서 고민이 많다"라고 전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인력은 2021년 17만6000명에서 2031년 30만4000명으로 연평균 5.6%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매년 대학이나 대학원 등에서 배출되는 반도체 산업 인력은 5000명 이하 수준이어서 인력난이 매년 심화되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사장)도 지난 5일 서울대 공대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사람을 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 "회사가 지속가능하려면 사람이 가장 필요하다" "인력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는 발언을 하며 인재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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