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20 푼돈까지 먹잇감… ‘저인망식’ 보이스피싱 판친다
지난 4월 20대 남성 A씨는 전화 한 통을 받고 깜짝 놀랐다. 전화를 건 사람은 “서울중앙지검 유○○ 검사입니다”라며 “A씨 명의 계좌가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사기 범행에 사용됐으니, 공범이 아니라면 빨리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A씨는 그 말에 따라 자신의 은행 예금 2000만원을 ‘금융감독원 계좌’란 곳에 계좌이체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온라인으로 문화상품권 200만원어치를 산 뒤, 그 일련번호를 불러주기까지 한 뒤였다. 구체적으로 따져 물으려 하니 연락이 곧 끊겼다. 이후 알아보니 전화 건 사람은 검사가 아니었고, A씨가 2000만원을 입금한 계좌도 금감원 것이 아니었다. 차곡차곡 모은 목돈 2200만원이 하루 아침에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에 날아간 것이다.
최근 A씨처럼 20대 이하 젊은 층이 보이스피싱에 당하는 피해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돈이 많지만 어수룩한 노인들’을 주로 노린다는 통념과 달리, 1020들도 피싱범들의 주요 타깃이 된 것이다.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20대 이하의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110억원으로 전체 피해액 827억원(법인 피해 제외)의 13.3%에 달했다. 작년 상반기에 이 비율은 5.4%(35억원)였는데, 금액과 비율이 2~3배가량 증가했다. 20대 이하 피해 건수도 작년 상반기 384건에서 올해 1089건으로 약 3배가 됐다.
1020세대의 피해 금액 비율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상승 중이다. 지난 2020년(상반기 기준)엔 2.4%에 불과했지만 2021년 3.3%, 작년 5.4%에 이어 올해 10%대를 넘겼다. 특히 작년엔 20대 이하 비율이 30대 비율을 처음으로 제쳤고, 올해는 30대(10%)·40대(9%)의 비율을 모두 넘어섰다. 60대 이상(38%)·50대(29%)에 이어 가장 보이스피싱 피해가 큰 연령대가 됐다.
이는 요즘 ‘저인망식’으로 바뀌는 보이스피싱의 행태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몇 년 전만 해도 피싱범들은 자산이 많은 중·장년층을 주로 노렸고, 길게는 일주일 넘게 ‘작업’을 진행했다. 피해자를 속여 예금을 빼앗고 대출을 받게 하는가 하면, 그 계좌를 대포 통장으로 만드는 등 완전히 털어가는 수법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은행 등 각 금융회사가 보이스피싱 적발 시스템을 강화하면서, 과거처럼 길게 작업을 했다간 걸릴 확률이 높아졌다. 대신 소액이라도 하루 안에 승부를 보는 ‘단타 범죄’가 많아졌고, 그 과정에서 자산이 얼마 없는 10~20대들도 이들의 그물망에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건당 평균 피해액은 2020년 910만원에서 작년 507만원으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젊은 층은 사회 경험이 비교적 적은 탓에 검사나 금감원 직원을 사칭하는 피싱범들에게 곧잘 위축되기도 한다. 피싱범들은 이 점을 파고든다고 한다. 한 수사 관계자는 “특히 피해자가 성매매 업소 등 떳떳하지 않은 곳에서 돈을 지출한 경험이 있으면 ‘자금 추적을 하겠다’는 사칭범의 압박에 쉽게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동수 의원은 “이제 보이스피싱은 청·노년층 등 연령을 불문하고 누구나 속을 수 있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며 “정부는 국민의 재산을 지켜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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