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오펜하이머, 과학은 순진하고 정치는 무지하다
후쿠시마, 천안함, 세월호… ‘탈진실의 수렁’에서 허우적
兩者 소통에 인류 문명 달려
인류 역사에서 혁명은 대체로 정치적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혁명은 거리보다 두뇌 안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 1917년 레닌의 러시아 혁명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혁명이 세계를 더 심오하게 바꾸었다. 자연법칙의 경이로운 조화를 보여주는 과학은 아름답다. 그러나 과학의 현실적 행로는 가시밭길이고 출구 없는 터널 같다. 물리학의 자식인 핵폭탄이 그렇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그런 문제를 다루었다. 미국 ‘핵폭탄의 아버지’인 물리학자 오펜하이머가 주인공이다. 순수한 과학자이자 애국자인 오펜하이머는 매카시즘, 그리고 음모적 정치가들에게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그런데 과학과 정치 사이에 이런 비극은 특별하지 않다.
오펜하이머를 비극에 빠트린 인물은 루이스 스트로스(Lewis L. Strauss)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자수성가한 그는 아이젠하워 정부의 상무장관에 지명될 정도로 정치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하지만 오만한 오펜하이머는 공개 석상에서 그의 과학적 무지를 조롱하고 바보로 만들었다. 원한에 사무친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파멸시켰다.
그러나 스트로스의 입장은 미국 정부를 대변했다. 당시 미국의 정치가들은 더 크고, 더 세고, 더 많은 핵폭탄을 원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원자탄이 미국이 부여받은 ‘신탁’이며, 미국은 “사악함과 어떤 타협도 거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핵 증강은 미국뿐 아니라 인류를 위한 사명이라고 역설했다.
사실 처음 핵폭탄을 만들자고 한 것은 과학자들이었다. 나치를 파멸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핵폭탄 실험에 성공했을 때, 오펜하이머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핵폭탄의 본질에 대한 직관이었다. 핵폭탄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첫 병기였다. 핵무기를 통제할 수 없다면, 인류는 “로스 앨러모스와 히로시마라는 이름을 저주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는 핵무기 증강과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다. 그래서 핵 증강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정책에 도전할 능력과 권위를 가진 단 한 사람의 입에 재갈을 물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펜하이머는 그들에게 소련을 돕는 간첩이자, 현실과 유리된 몽상가였다.
핵무기는 국가 안보와 인류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오펜하이머가 겪은 비극의 심연에는 이에 대한 견해 차이가 놓여 있다.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하지만 미국은 예외적이라고 오펜하이머는 낙관했다. 그러나 미국조차 오펜하이머를 침묵시켰다. 미국인이자 인류의 시민이기를 바란 오펜하이머의 희망은 불허됐다. 공포의 시대에 ‘열린 세계(open world)’에 대한 과학의 믿음은 쉽게 부서졌다.
그런데 도대체 정치는 과학을 이해할 수 있기는 한 것인가. 과학자는 누구나 우주의 법칙을 찾아내 인류에게 봉사하고자 할 것이다. 정치가도 과학의 헌신을 칭송한다. 제26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과학과 기술이 좋은 정부와 결합하면 새로운 진보 시대(Progressive Era)를 열 수 있다”고 기대했다. 파우스트와 하는 거래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오펜하이머가 핵폭탄 개발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1945년 12월, 오펜하이머가 트루먼 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 환상은 무참히 깨졌다. 그는 대통령에게 “내 손에는 피가 묻어 있다”(I feel have blood on my hand)”며 괴로워했다. 핵 통제에 나서야 한다는 간청이었다. 그러자 대통령은 “제길, 내 손에 묻은 피의 절반도 묻히지 않았어” 하며, 그를 아프다고 징징대는 ‘개자식’이라고 경멸했다. 절망한 오펜하이머는 “정치가 진실, 선함, 그리고 아름다움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라고 절규했다.
과학과 정치 사이의 심연은 깊다. 냉전 시대의 탁월한 외교관이자 핵 통제를 지지한 조지 케넌(George Kennan) 같은 위대한 중재자가 필요하다. 물론 과학은 완벽할 수 없고 최선일 뿐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천안함, 세월호, 이태원의 괴담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한국 정치는 역설적으로 탈진실(post-truth)의 수렁에 빠졌다. 과학은 순진하고, 정치는 무지하다. 현대인의 삶에 가장 중요한 두 영역의 대화는 지난하다. 양자의 소통에 인류 문명이 달렸다. 오펜하이머는 그런 인류의 절박한 과제를 온 몸으로 보여준 한 심벌, 현대의 갈릴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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