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세에 박사과정 도전하는 권노갑 “골프도 92살부터 늘었어요”

주희연 기자 2023. 9. 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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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 때 최고령 석사 딴 후 93세에 외대 박사과정 입학
서울 마포구 신촌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권노갑 전 의원이 포즈를 취했다. /김지호 기자

동교동계 맏형이자 야권의 대표적 원로인 권노갑(93) 김대중재단 이사장이 한국외대 영문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83세 나이로 국내 최고령 석사 학위를 받은 그가 구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국내 최고령 박사’ 도전에 나선 것이다. 권 이사장은 7일 본지 인터뷰에서 “배움엔 나이가 없다는 걸 늘 느낀다. 공부할 수 있어서 즐겁고 행복할 뿐,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주먹을 불끈 쥔 그는 “허리·어깨가 반듯하고, 건강이 너무 좋아 사람들이 93세 먹은 노인네로 안 본다”고 했다.

권 이사장은 지난 5일 서울 한국외대 캠퍼스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 첫 수업을 들었다. 손자뻘 되는 학생들과 일주일에 하루 이틀 교실에서 만나 하루 6시간씩 영시·영소설·셰익스피어 등 세 과목 수업을 듣는다. 권 이사장의 목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과 업적에 관한 기록을 영문으로 번역해 논문을 쓰는 것. 그는 목포공립상업학교 4년 선배였던 김 전 대통령을 50년 가까이 보필한 최측근이다. “내가 김 전 대통령을 일생 모셨는데, 그분의 정치 사상과 업적을 영문으로 써서 남기면 앞으로 그것이 전 세계에 더욱 널리 알려질 것 아니겠나”라며 “앞으로 2년여간 정진해 박사 학위를 받겠다”고 했다.

옛 동교동계의 맏형인 권노갑(93) 김대중 재단이사장이 7일 서울 마포구 신촌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 이사장은 최근 구순이 넘은 나이에 한국외대 영문학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김지호 기자

김 전 대통령 비서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 권 이사장에게 영어는 한때 생업이었다. 6·25전쟁 때 미 부대에서 유엔군 통역관을 했고, 목포여고에서 3년간 영어 교사를 했다. 정치인이 돼서도 ‘워싱턴포스트’ 같은 영자신문을 즐겨 읽었고, 3년여간 옥중에서도 영어 성경과 영어 잡지를 정독하는 등 영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정계 은퇴 후 본격적으로 영어 학업을 잇기로 결심했다. 동시통역사 자격증에 도전했고 하와이대 어학 연수도 다녀왔다. 그는 81세였던 2011년 한국외대 대학원 영문학과 석사과정을 시작해 2년 만인 2013년에 ‘존 F. 케네디의 연설문에 나타난 정치 사상 연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국내 최고령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꾸준히 공부하다 보니 원서를 읽고 쓰고 듣고 외우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며 “요즘은 사전에도 없는 영어 신조어가 많이 나오는데, 아이패드로 하루에 5~6개씩 외운다. 공부엔 끝이 없다”고 했다.

건강 관리 비결을 물었더니 “첫째도, 둘째도 운동”이라고 했다. 그는 매일 서울 시내 헬스장에 가서 2시간 동안 운동을 한다. 1시간은 달리기·자전거 타기 등 유산소 운동, 나머지 1시간은 아령·역기 같은 근력 운동이다. “20~30㎏짜리 역기, 레그프레스(하체 운동 기구) 80㎏은 거뜬하게 듭니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이 중요하거든요” 그는 현재 신장 173㎝에 몸무게 66㎏, 허리 사이즈는 31인치를 유지 중이다. 57세에 찾아온 당뇨도 운동으로 극복했다. “잦은 음주에, 밤에 해장 라면까지 먹다 보니 어느새 당뇨 환자가 돼 있더군요. 꾸준한 운동으로 지금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이 골프를 치는 모습. 권 이사장은 "아흔두 살 때부터 골프 실력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권노갑 이사장 제공

권 이사장은 운동에도 나이의 벽은 없다고 했다. 1991년 시작한 골프는 30년 넘게 이른바 ‘백돌이(골프 타수가 100개 안팎인 초보자를 뜻하는 속어)’ 수준이었는데, 아흔이 넘은 나이에 그 벽을 깼다. “아흔둘부터 골프 실력이 크게 늘었어요. 어느 날 캐디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받다 눈이 뜨였고, ‘벤 호건 골프의 기본’ 책을 완독하고 났더니 이제는 여유롭게 80~90타를 쳐요. 주변에서도 ‘옛날에 엉터리였는데 그 나이에 갑자기 실력이 엄청 늘었다’며 놀랍니다.”

[만물상] 93세 박사 도전

권 이사장과 함께 라운딩을 한 인사는 “드라이버로 200야드 가까이 치는 걸 보고 놀랐다”고 했다. 권 이사장은 어려서부터 만능 운동선수였다. 국민학교·중학교 때 야구·농구·유도를 섭렵했고, 중3 땐 복싱에 입문해 ‘호남 대표 선수’까지 했다. 요새 즐겨 하는 운동은 골프. 주 3~4회 정도 골프를 친다. 지난해 8일 연속 골프장에 나가고, 무더위가 극심했던 지난달엔 내리 4일 라운딩을 했어도 거뜬했다고 한다. “건강을 위해 카트 타는 건 자제하고 1만5000보를 걸어요.”

술·담배와도 거리가 멀다. 주변에서 유명한 ‘혐연가(嫌煙家)’에다, 70세 때부터는 첫 잔 정도만 마실 정도로 절주하고 있다. “굳이 소식은 하지 않고, 근육량을 늘리려 삼시 세끼 고기를 먹어요. 닭고기·돼지고기·소고기 가리지 않고, 특히 1년 전부터는 삶은 흑염소 고기를 우유·블루베리와 함께 믹서에 갈아서 하루에 세 잔씩 마셔요.” 매일 아침에는 본지 연재물인 ‘윤희영의 News English’와 영어·중국어·일본어 한마디를 소개하는 ‘생활 외국어’ 코너를 즐겨 본다.

13·14·15대 국회의원을 지낸 권 이사장은 현재 민주당 상임고문,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 민주화추진협의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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