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나노 과시한 중국, 애플도 쳤다...미국에 반도체 역공
美의회 “화웨이 조사하고 모든 반도체 기술 수출 중단을”
글로벌 첨단 테크 시장의 패권을 거머쥐려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지난달 말 중국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 장벽을 뚫고 첨단 반도체를 활용한 최신 스마트폰을 공개한 것을 계기로 양국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 중국에 대한 추가 규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정부와 기업이 똘똘 뭉쳐 대응에 나섰다.
마이크 갤러거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6일(현지 시각) 성명을 내고 “중국 통신 기업 화웨이와 반도체 기업 SMIC에 대한 모든 미국산(産) 반도체 기술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화웨이가 지난달 말 출시한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에 자체 개발한 7나노(nm·10억분의 1m)급 반도체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지자 규제 강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미국은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회로 선폭의 크기가 14나노 이하인 첨단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지 못하도록 제조 장비 수출을 제한해 왔다. 갤러거 위원장은 “화웨이의 반도체 칩은 미국 기술 없이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분명 미 상무부의 규정을 위반했을 것”이라며 “화웨이가 미국 제재를 위반했는지 전면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국도 보복에 나섰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최근 중앙 부처·기관 공무원들에게 애플 아이폰을 비롯해 미국과 해외 브랜드 기기를 사무실에 가져가거나 업무에 사용하지 않도록 ‘금지령’을 내렸다. 지난달부터 첨단 반도체에 들어가는 원료(갈륨·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도 시작했다.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은 미국에는 충격을, 중국에는 자신감을 주고 있다. 다만 제조 장비와 기술을 감안할 때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은 7나노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우성 포스텍 교수는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중국에 생산 시설을 갖추고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블룸버그통신이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를 분해한 결과 SK하이닉스의 최신 D램이 탑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SK하이닉스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 조치가 시작된 이후 화웨이와 거래하지 않고 있으며 미 상무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해명했다.
중국은 올 들어 미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제재에 맞서 ‘강공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화웨이가 지난달 말 중국 규제 정책의 선봉장인 미 상무부 장관의 중국 방문에 맞춰 첨단 7나노 칩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공개한 것에 대해 ‘미국을 향한 선전포고’라는 말까지 나온다. 당황한 미국은 행정부와 의회 차원에서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미 하원에서 화웨이와 7나노칩을 제조한 반도체 기업 SMIC의 대중 제재 위반 여부에 대한 전면 조사를 요구한 데 이어 백악관에서도 논란이 된 화웨이 반도체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6일 “화웨이 신작 스마트폰에 탑재된 기린9000S 칩의 정확한 성격과 구성에 대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중국의 자체 7나노칩 생산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공식 입장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4년 동안 반도체 생산 기술과 제조 장비 공급을 막았지만 결과적으로 중국 반도체 굴기 저지에 실패하면서 더 강도 높은 제재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테크 패권을 걸고 시작된 양국의 싸움이 어디까지 번질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공 모드 중국, 흔들리는 미국의 제재
미국이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무역 제재를 가한 것은 지난 2019년 화웨이가 처음이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 정부와 기업은 이렇다 할 맞대응을 하지 못했다. 미국이 가진 반도체 생산 기술과 첨단 제조 장비 없이는 자체적으로 첨단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2018년 캐나다 경찰을 통해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의 딸이자 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를 체포해 구금했다. 화웨이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법을 위반한 거래를 했다는 이유였다. 멍완저우는 법적 공방을 거쳐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이 과정에서도 중국은 뚜렷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태도는 올 들어 급변했다. 지난 5월 중국 당국은 미국 마이크론의 반도체 제품이 보안 위험을 초래한다며 제품 구매를 중지시켰다. 지난해 말 미국이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제한하고 중국 국영 반도체 기업 YMTC를 수출 통제 대상에 추가한 것에 대한 보복성 조치였다. 지난달부터 갈륨과 게르마늄 등 30품목에 대해 수출도 통제하기 시작했다. 아직 시장 비율이 작은 차세대 반도체 원료이기 때문에 당장 충격은 없지만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린청난 대만대 교수(전기공학과)는 블룸버그통신에 “화웨이가 미국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하고 있다”며 “미국이 앞으로 추가 조치를 하지 않으면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미국을 두려워할 게 없다고 여겨 미 제재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의 대중 제재 정책 기조는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권 들어서 규제 수위를 높였지만 화웨이의 메이트 60 프로 자체가 중국이 미국 제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명확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미국이 반도체 첨단 공정뿐 아니라 구형 공정에 필요한 모든 반도체 기술과 장비의 중국 공급을 틀어막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대중 규제 강도를 높일수록 당장 피해를 보는 것은 미국 기업들이다. 중국 정부의 아이폰 사용 금지령 소식이 나온 7일 미 증시에서 애플 주가는 3% 넘게 하락했다. 애플은 전체 매출의 19%가량을 중국 시장에서 올리고 있다. 퀄컴, 엔비디아, 인텔, AMD 등도 중국 매출 비율이 높은 기업이다.
◇7나노가 한계 지적도
테크 업계 일각에서는 중국의 7나노 반도체 생산이 사실이라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할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7나노 반도체 기술을 이제 개발했더라도, 한국의 삼성전자와 대만 TSMC 같은 기업들보다는 4년 이상 뒤져 있다는 것이다. 삼성과 TSMC는 현재 3나노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다. 또 7나노 반도체는 비교적 구형인 DUV(심자외선) 장비로 제작할 수 있는 한계로 여겨진다. 중국이 이를 극복하고 초미세 공정인 5나노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네덜란드 ASML이 독점하고 있는 EUV(극자외선) 장비가 필수적인데, 네덜란드는 미국의 대중 제재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는 아직 EUV 장비가 한 대도 도입되지 않았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SMIC가 7나노칩의 수율(생산품 중 정상품 비율)을 얼마나 끌어올렸느냐도 중요하다”면서 “수익이 나지 않는 정도로 낮은 수율이라면, 반도체 굴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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