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68] 그래요, 난 달라요
해가 중천에 뜬 대낮과 칠흑처럼 어두운 한밤중에 언제 더 기운이 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회적 이벤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일어난다. 한밤에 활발해지는 사람들은 관공서나 은행에 갈 수 없고 회사 생활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옛날 얘기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온라인상에서 웬만한 일을 다 볼 수 있고, 업무의 시간과 방식을 달리하는 유연근무의 선택지도 늘어났다.
김태동 작가는 ‘데이 브레이크(2011~)’ 연작에서 도시가 잠든 사이에 깨어 있는 사람들을 그들의 활동 무대가 되는 공간과 함께 기록하였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던 12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용인하는 시간에 대한 태도의 유연성은 지금보다 휠씬 더 낮았다. 사진은 주로 새벽 3, 4시경에 찍혔고, 그 새벽에 잠을 안 자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문제아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울 만큼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젊은 작가는 이 시간이 되면 가장 침착해져서 집중력이 높아지는 경험을 하곤 했다고 한다. 갑자기 비가 쏟아진 이날도 카메라를 들고 여의도 구석구석을 탐색하던 그의 앞에 비를 피해 한 사람이 오토바이를 세웠다. 우연히 마주한 장면 앞에서 작가는 겸허한 기록자가 되었다.
팔리지 않은 광고판이 뿌옇게 확산된 조명이 되어 주인공을 비춘다.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를 붙인 헬멧과 오토바이, 오렌지색 바지와 슬리퍼, 얼굴을 반쯤 가린 고글 너머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 때마침 멈춤 신호등은 길을 붉게 물들였다. 지금 눈엔 오히려 스타일리시한 패션 사진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사진은 시간이 흐르면서 의외의 것들을 증거하고 있다.
세상엔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배웠지만, 꼭 그렇진 않다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 받아들였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찾는다고 했지만, 부지런하면 피곤을 피하기 어렵단 것도 알게 되었다. 다른 것이 틀린 게 아니란 걸 받아들이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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