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재미없어도, 읽어야 알지

김희선 소설가·약사 2023. 9.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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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은 도서관에서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가졌다. 그때 이런 질문을 받았는데, 아마 작가들이 일생에 적어도 백 번은 받는 질문이 아닐까 한다.

“요즘 사람들이 점점 책을 읽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을 던진 모임의 주최자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독서가 얼마나 숭고하고 중요하고 지적인 행위인지, 그리고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얼마나 우리네 인생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대답.

나는 다르게 대답했다. 평소의 지론이 있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책 읽기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저녁이나 휴일에 시간이 많고 여유로워서 마음 편히 독서할 수 있겠지만, 현대 사회 대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이들에게 그런 여유는 그림의 떡일 뿐이죠. 무엇보다도, 책이 그렇게까지 대단하고 고귀한 뭔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책은 그저 책이고, 종이에 인쇄된 사실이나 허구일 뿐입니다. 원래 인간은 듣고 보는 것에 더 익숙한 존재이며, 이제 다시 그런 시대로 돌아가는 거죠. 지식과 재미를 얻는 방법이, 인쇄된 글자를 읽는 것에서 뭔가를 듣거나 보는 것으로 바뀌어 간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책은 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누군가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제 인세가 조금이라도 늘겠지만, 어쩌겠어요. 어차피 세상은 변하는 거고, 우린 언제나 그 변화에 적응해야만 하는 거니까요. 그러므로 드리는 말씀인데, 바빠서 혹은 여러 이유로 책을 읽지 못한다고 결코 자괴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지금 나와 있는 책의 99%는(어쩌면 더 많은 책들이) 백 년 후엔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뜻이다. 과거에 나온 그 많은 책들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몇 권인지 본다면, 이 예언은 거의 확실하다. 게다가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책이 다른 매체에 비해 더 크고 귀한 감동을 준다는 증거도 없다. 감동적인 영화나 심금을 울리는 만화로부터 얻은 정신적 풍요는, 독서를 통해 얻은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책 대신 산에 올라 나무를 보는 일도 독서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큰 정서적 울림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나 많은 책을 읽고 또 쓰기까지 하는 걸까? 왜냐하면 짧은 생에서 진짜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보물찾기와 같기 때문이다. 온 세상을 뒤져 찾지 않으면 진짜 보석을 발견할 수 없다. 또 열심히 쓰지 않는다면, 백년 후는커녕 십년 뒤의 존재 가능성조차 불확실하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 커다란 모순을 딛고 계속하여 읽고 쓰는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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