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韓 교과서도 침묵한 ‘조선인 학살’

김동현 기자 2023. 9. 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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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화가가 그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장면

1923년 9월 일본 도쿄·가나가와 등 관동 일대에는 규모 7.9 대지진이 일어나 주택가가 들썩이고 화염에 휩싸이는 큰 혼란이 일었다. 그 혼란을 틈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등 허무맹랑한 악소문이 일본인들 사이 돌았고 ‘조선인 무차별 학살’이란 참극이 발생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건 경위나 희생자 수 등에 대한 일본 정부 차원의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한일 관계는 ‘셔틀 외교’ 재개와 한·미·일 정상회의 등으로 급속도로 회복하고 있다. 그러나 관동대지진에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의 상흔은 여전히 치유되지 못했다. 일본 측에 사건의 참혹함을 상기시켜 진상 규명과 사과를 촉구하고, 본지에서도 이러한 아픔의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는 취지로 최근 ‘관동대지진 100년, 묻혀진 조선인 학살’ 기획 기사를 여섯 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그 과정에서 국내 고교 검정 한국사 교과서 9종을 살펴보았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다룬 교과서는 6종(리베르스쿨·미래엔·비상교육·씨마스·지학사·해냄에듀)이었다. 나머지 3종(금성출판사·동아출판·천재교육)에선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루고 있는 6종에서도 관련 분량은 길어봤자 세 문장에 그쳤다. 그마저 6종 중 3종은 본문이 아닌 ‘별도 박스’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언급하고 있었다. 예컨대 “1923년 관동 대지진 이후에는 일본인들이 동포들을 학살하기도 하였다”(비상교육)라는 짧은 문장이었고, 유언비어 유포와 일본 군경의 학살 가담, 일본 정부가 침묵하는 실태 등은 다루지 않았다. 나머지 교과서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미래엔은 당시 일본인들의 유언비어 유포와 자경단 조직 등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서술했지만, ‘국외 이주 동포의 고난’이란 별도 코너에서 ‘간도 참변(1920)’ 등 한데 묶인 다른 박스들보다 비중이 작고 가장 하단에 배치돼 있었다.

비극의 역사에 경중(輕重)을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아픔이 다른 역사들에 비해 외면받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구한말 일본에 당한 수모들을 잊지 말자면서도, 일본 열도에 거주하며 직접적인 차별을 받았던 동포들의 죽음은 정작 국내에서조차 잊히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 역사관을 책임지는 교과서에서조차 외면당하면 누가 그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겠는가.

최근 일본 정부에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관한 조사를 요청한 스기오 히데야 참의원 의원은 본지 인터뷰에서 “역사와 마주하고 잘못이 있다면 인정해 새로운 일·한 관계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하물며 우리 동포가 당한 비극임에도 교과서가 ‘관심’을 아끼는데, 일본 책임만 물을 일인가. 우리가 먼저 규명하고 기억해야 죄 없이 희생당한 재일 동포들의 상흔을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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