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제국익문사를 아십니까”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담았다. 이 작품에는 설희라는 가상 인물이 등장한다. 극중 배역은 대한제국 비밀정보기관 요원으로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임무다.
이 부분은 픽션이지만 중요한 팩트를 엿볼 수 있다. 그가 소속된 비밀정보기관의 명칭은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다. 고종이 설립했다. 근대 국가로 우뚝 서기 위한 의지가 오롯이 담겼다. 10여년 뒤인 1920년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의 지방선전부(地方宣傳部)로 이어진다.
정부 고관과 서울 주재 외국 공관원 동정, 국사범과 외국인 간첩행위 탐지 등이 주요 미션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매일 사보를 발간해 백성들이 보도록 하고 국가의 중요한 서적도 인쇄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일본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다. 요원은 61명이었고 수장은 독리(督理)라고 불렀다.
요원들은 고종에게 정보를 보고할 때 화학비사법(化學秘寫法)을 활용했다. 과일즙이나 화학용액 등을 이용해 투명하게 글씨를 쓴 뒤 읽을 때는 열이나 또 다른 화학용액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비밀보고체계 덕분에 대한제국은 일본의 감시 속에서도 정보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한일병합 직후 일제강점기까지 독립운동 비자금 조달 등을 담당했지만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됐다. 이후 독립운동과 항일의병투쟁으로 계승됐다.
제국익문사 요원들은 국내는 물론 일본과 중국, 러시아 또는 멀리 유럽으로까지 파견돼 활동했다. 고종은 이를 위해 황실 재정을 활용하는 등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췄다. 실제 황실의 재정수입은 제국익문사 창립 시기 이후 7년여 만에 180배나 증가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종의 국가 운영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뿌리가 제국익문사였다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않았을까. 121년 전 창립된 비밀정보기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까닭이다.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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