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동반성장의 역설, 생태계 경쟁력 강화로 풀어가야
올해 1분기 중소기업 상장사의 59.8%가 영업이익으로 총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으로 분류됐다. 최근 금리가 올라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지난해 1분기에도 50.1%가 한계기업이었다. 당분간 금리인하 가능성이 낮고 장기침체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에서 내년에는 더욱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그간 꾸준히 동반성장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왜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됐을까.
동반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성장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성장은 경쟁을 전제로 한다. 한계기업은 퇴출당해야 하고 혁신을 통해 시장의 선택을 받은 기업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갑은 무조건 을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하면서 혁신이나 시장원리는 금지어가 됐다.
중소기업의 피해를 예방한다면서 도입된 많은 규제는 대기업에 큰 부담이 됐다. 결국 대기업은 국내 중소기업 대신 중국, 베트남 등 해외 기업을 선택했다. 대기업을 따라 해외로 나간 중소기업은 계속 경쟁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국내에 남은 중소기업은 경쟁에서 밀리며 점점 한계기업이 됐다.
경쟁과 혁신이 사라지면 성장도 사라진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일본이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부동산 버블이 폭발하면서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됐다. 최근 경제가 좋아진다고 하지만 확실한 상승 분위기를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부동산 버블이 폭발한 나라는 일본만이 아니다. 미국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겪었다. 하지만 미국은 장기침체에 빠지지 않았다. 왜 일본만 이렇게 됐을까.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기업가의 혁신의지를 꺾는다. 굳이 힘들게 기업을 하기보다 부동산을 사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한번 그렇게 돈을 벌면 다시 땀을 흘리면서 일하기 어렵다. 장기간 지속되는 낮은 금리 또한 한계기업의 퇴출을 막는다. 어차피 한계기업이라고 퇴출당하지 않는데 굳이 힘든 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 결국 일본 경제는 성장을 멈췄다. 변화와 혁신을 거부한 대가다.
반도체 강국이라 자부한 우리나라의 위상이 크게 흔들린다. 우리가 잘하는 메모리반도체는 PC산업의 약화와 함께 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반면 인공지능 반도체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이런 성장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국가가 대만이다. 미국이 나서서 중국의 침략을 방어할 정도로 그 위상은 압도적이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요인은 생태계의 힘이다. 시스템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다품종을 생산한다. 이렇게 하려면 설계부터 제조, 패키징, 테스트까지 전범위에서 제 몫을 하는 기업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소수 대기업에 크게 의존하는 반면 대만은 TSMC, 미디어텍 등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다양한 기업이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다행히 요즘 우리 대기업은 예전처럼 혼자 하려고 하지 않는다. 벤처투자를 하고 협력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술을 지원하기도 한다. 정부가 대기업에 중소기업을 지원하라고 요구해서가 아니다. 지금 우리 대기업도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그렇다면 대기업은 왜 협력기업을 지원하고 벤처에 투자할까.
상생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대기업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큰 변화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덩치가 큰 대기업은 신산업을 창출하기 힘들다. 2019년 일본과의 반도체 분쟁, 중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의 급속한 재편을 경험하면서 우리 중소기업과의 생태계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뼈저리게 느꼈다. 자기 기업 중심으로 생태계를 어떻게 만드는지가 곧 경쟁력이 됐다.
이제 동반성장 정책은 생태계 경쟁력 강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 강한 생태계는 공정한 경쟁과 협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사람마다 다른 공정의 잣대는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지로 쉽게 선별할 수 있다. 기술탈취는 상호협력을 저해하기에 생태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계기업은 구조조정하고 인력과 자본이 혁신기업에 집중되도록 해줘야 생태계가 발전한다. 대기업의 벤처투자도 생태계에 대·중소기업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서로 도움(win-win)이 되기 때문이다.
곽노성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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