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당기’ 배종옥의 ‘불행한 능력’이 만든 증오보다 위험한 사랑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아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 길은 엄마로서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습니다. 지금도 영운이를 살려낸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대신 모든 지옥은 제가 가겠습니다.”
ENA 수목드라마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가 막을 내렸다. 사형 구형을 받은 유정숙(배종옥 분)은 최후 진술에서 앞서와 같이 말했다.
사랑은 때로 증오보다 위험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정은 가장 숭고한 사랑의 형태로 대우받는다. 하지만 유정숙이 보여준 모정은 사시미칼보다 날카롭게 여러 인생을 할퀴었다. 그녀 표현 ‘불행하게도 능력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오진우(렌 분)의 산소를 차단하기 직전 유정숙은 말했다. “우리 영운이를 살게 해줘요! 진우씨의 바람과 나의 바람이 같을 거라고 믿어요!” 불행하게도 그녀가 획득한 권력과 재력과 지위는 자신의 불행을 전가할 오진우조차 자신의 뜻에 동의하리라는 가당찮은 아전인수(我田引水)를 가능케했다.
유정숙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오진우의 친모 김미로(안시하 분)는 유정숙을 향해 말한다. “유정숙 당신은 참 당당하군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살려낸 엄마니 당당할 자격이 충분하겠죠? 억울하게 아들을 잃어버린 적 없는 당신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난 지금 당신이 부럽습니다. 내가 당신같이 능력있는 엄마였다면 우리 진우가 억울하게 죽지는 않았을테니까... 난 지금 살아있는 것도 죄가 되는 그런 엄마니까요.”
불행하게도 유정숙이 획득한 능력은 아들 잃은 엄마조차 피해자가 아닌 죄인 신분으로 만들어버리는 위력을 발휘해 버렸다.
유정숙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연쇄살인을 벌였다는 박기영(이규한 분)은 증인석에서 물었다.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진우와 나는 달랐습니다. 유정숙 원장이 원하는 때 죽어야 되는 운명이었습니다. 한때는 어머니라 부르며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는데 차라리 제가 아무 것도 몰랐더라면 그게 우리에게 더 나았을까요?”
그런 박기영에 대해 유정숙은 말했다. “기영이는 눈이 참 맑은 아이였습니다. 그 눈을 마주칠 때마다 마음이 흔들린 적도 많았습니다. 기영이가 밥을 잘 먹었을 때, 환하게 웃었을 때, 대학에 붙었을 때, 기자시험에 합격했을 때, 많은 순간 기뻤습니다. 기영이와 함께 한 많은 시간은 진심이었습니다.”
유정숙의 불행한 능력은 아들처럼 따랐던 박기영을 찔렀고 그 박기영에 대한 자신의 살가웠던 진심마저 베어냈다.
그리고 신앙처럼 소중한 친아들 차영운도 그 날붙이의 행패를 피해가진 못했다.
재정증인으로 출석한 이유를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밝힌 차영운은 “어머니는 제가 누구보다 행복하길 바라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불행하게도 앞으로 남은 시간 온전하게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자리에 나온 건 제가 조금이나마 떳떳하게 살 수 있도록 어머니가 도와주셨으면 해섭니다. 어머닌 아마 저를 용서 못하실 겁니다. 아니 저를 버리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평생 어머니 아들로 살겁니다. 떳떳하게 어머니 아들로 살고 싶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이제 그만 죄를 인정해 주십쇼.”
유정숙의 모정은 확실히 진심이다. 하지만 사람을 유용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왜곡된 신념 역시 진심이다. 그렇지않다면 차영운의 심장 외에 ‘어게인 프로젝트’라는 미명하에 200억기부자 크리스를 위한 췌장이식 대기자를 선별해놓는 짓 따위는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진성(나인우 분) 등이 제때 잡아내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프로젝트의 희생양으로 ‘사용’될 지 모를 일이었다.
검사 고영주(김지은 분)의 사형 구형 이유처럼 어떤 권력, 어떤재력, 어떤 지위도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을 자격을 주지 않는다.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생명이 가진 자들의 제물로 바쳐진다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다. 박기영의 말처럼 법정에서의 ‘평등한 단죄’만이 그런 ‘불행한 오판’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동기 모를 연쇄살인부터 시작한 미스테리 드라마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는 단단한 주제의식과 짜임새 탄탄한 스토리로 심리스릴러물의 수작으로 평가받을만 하다는 생각이다.
한가지. 박기영의 자살위장에 사용된 시신 대목에 대해선 유감이다. 어쨌거나 사체가 박기영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 손 놓는 검·경의 모습은 이해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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