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때마다 이야기는 다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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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이야기를 품는다.
사람의 왕래가 끊긴 길에도 옛 이야기가 있고, 그곳을 다시 걸을 때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옛길을 좋아하는 작가는 두 발에 의지해 걷는 동안 생각을 덜어내고 몸의 무거움을 벗겨낸다.
사찰을 품고 있는 산들이 그를 반겼고, 옛사람들의 삶이 묻어있는 길에서는 삶의 진솔함과 가벼워지는 법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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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자 ‘옛길에서 만나는 적멸’
5대 적멸보궁 790.5㎞ 도보여행
걷기 통해 삶의 무거움 덜어내
권혁진 ‘문학기행 강원의 문인을…’
이자현·김시습·김창흡·허균 등
강원 산·사찰 남긴 시문 다뤄
길은 이야기를 품는다. 사람의 왕래가 끊긴 길에도 옛 이야기가 있고, 그곳을 다시 걸을 때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춘천의 출판사들이 강원의 길을 소재로 한 인문기행서를 펴내 눈길을 끈다.
문화커뮤니티 금토는 신용자 작가의 기행수필집 ‘옛길에서 만나는 적멸’을, 도서출판 산책은 권혁진 작가의 ‘문학기행-강원의 문인을 찾아서’를 발간했다. 종횡무진 길을 찾아 헤매는 작가들에게 걷기는 곧 수행이자 ‘쓰기’의 과정으로 보인다.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보관된 사찰이다. 홍천 출신 신용자 작가는 국내 5대 적멸보궁을 찾아 하루종일 걸었다. 속초 설악산 봉정암, 평창 오대산 상원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정선 태백산 정암사를 지나 경남 양산 영축산 통도사까지 51박 52일 동안 790.5㎞를 걸었다.
옛길을 좋아하는 작가는 두 발에 의지해 걷는 동안 생각을 덜어내고 몸의 무거움을 벗겨낸다. 사찰을 품고 있는 산들이 그를 반겼고, 옛사람들의 삶이 묻어있는 길에서는 삶의 진솔함과 가벼워지는 법을 깨닫는다. 홀로, 때로는 도반들과 걷는 여정 자체가 깨달음의 공간이자 적멸보궁이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낯섬과 호기심으로 만났던 단어 ‘적멸’이 발걸음을 하나씩 옮기면서 온몸에 각인된 것이다. 사찰에 관련된 옛 이야기들도 풍성함을 더한다.
신용자 작가는 “이 길이 온전한 걷는 길이 되어 당장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지는 못할 것이지만, 언젠가는 산티아고에 버금가는 순례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선 책이 공간 중심이었다면, ‘문학기행’은 이자현, 김시습, 김창흡, 원천석, 이달, 허균, 허난설헌, 김병연 등 강원도에 정착해 창작활동을 이어온 옛 문인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시문을 중심으로 풀어냈다. 작가의 기행은 천년고찰 청평사가 있는 춘천 청평산부터 시작한다. 청평산은 경치가 빼어나기도 했지만, 이자현과 김시습 같은 당대에 이름을 알린 인물들이 은거라는 방식으로 거처했기에 더욱 유명해졌다. 매월당 김시습, 퇴계 이황 등 조선의 선비들은 청평사를 지날 때면 37년간 참선에 매진했던 이자현을 칭송하며 시를 남겼다.
원주에서는 손곡 이달을 비롯해 정시한 그리고 세 명의 여성문인 임윤지당, 김금원, 박죽서를 논한다. 허균은 ‘손곡산인전’을 통해 시대와 불화했던 스승 이달을 기록했다. 27세에 철원 용화동에 은거했던 김창흡은 삼부연폭포 등을 다룬 ‘태화오곡’을 남겼으며 이후 설악산에 들어간다. 남한강변 법천사지, 양양 법수치리 계곡, 삼척 죽서루 등 문인이 머문 곳과 쓴 글은 저마다 달랐지만, 그들의 작품을 읽다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조차 쉽게 지나치기 어려워진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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