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커피에 삐삐, 카세트테이프… 30년 전 한국의 추억[폴 카버 한국 블로그]

폴 카버 영국 출신 번역가 2023. 9. 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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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외국인으로 한국에 살면서 처음 한국분들을 만나 소개를 받으면 대화의 처음 몇 분은 거의 같은 패턴으로 진행된다. 질문들의 순서가 다소 다를 수는 있지만 열의 아홉 중 처음으로 등장하는 4가지 필수 질문은 “어느 나라에서 왔소?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시오? 한국에는 얼마나 오래 살았소? 한국에 온 계기가 무엇이오?”이다.
폴 카버 영국 출신 번역가
광복과 6·25전쟁을 거친 이후 한국은 빠른 발전과 사회 변혁을 이뤄 왔는데 아직도 많은 한국분들이 ‘한국에 살고 싶다’는 외국인들을 보면 적잖이 놀라시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외국인들의 배경에 대해 알고 싶어 하시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필자로 말할 것 같으면, 좀 복잡하다. 왜냐하면 완전히 한국에 정착하기 전에 한국과 영국을 계속 왕복했던 시기가 꽤 길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 꾸준히 살기 시작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난 한국 생활 16년 차다. 그러나 한편으로 2002 월드컵 전에도 이미 2, 3년 정도를 한국에서 살았으니 대강 반올림해서 보면 한국 생활 19년 차라고 말하는 것도 무방할 듯하다. 그런데 또 따지고 들어가 보면 이미 그전에도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한 적 있었으니 1992년 내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다음 주쯤이 나의 31주년 ‘한국 방문 기념일’이 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아버지의 친구분이 호주대사관에서 일을 하고 계신 때라 여름휴가로 한국을 방문했었다. 성북동 멋있는 산등성이에 아름다운 정원을 배경으로 커다랗게 서있던 호주대사관저에서 생활하시던 아버지 친구분 덕분에 난 한국 생활에 대한 다소 비현실적인 인상을 받아 갔던 것 같다. 오늘 이렇게 깊은 회상에 잠겨 내가 처음 한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한국의 모습에 대해서 ‘라떼는 말이야’ 회고록을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라떼는 말이야, 한국엔 인천이 아니고 지금은 국내선 위주로 사용되고 있는 김포공항이 국제공항이었다. 그 당시에 비행기에서 내리면 검은 제복을 입은 무섭게 생긴 출입국관리관을 거쳐서 입국 심사를 했었다. 지금이야 해외에서 상도 많이 받고 최첨단 자동출입국 심사 관리 시스템을 갖춘 인천공항에서 아무한테도 심문받을 필요 없이 출입국이 자유자재로 가능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라떼는 말이야, 스마트폰이라고 불리는 이 휴대전화란 게 없었다. 그 대신 사람들은 친구나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빽빽이 적은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삐삐’라고 불리는 작은 기계에서 신호음이 울리면 메시지를 확인하러 공중전화기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고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라떼는 말이야, 다방(현재의 커피숍)을 가면 사람들이 삐삐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게 각 테이블에 전화가 비치되어 있기도 했었다. 그 당시 커피숍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처럼 컵 사이즈가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지도, 각각 다른 종류의 맛과 향을 지닌 다양한 커피를 마실 수 있지도 않았고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약자인 ‘아아’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때 커피숍에서 팔던 헤이즐넛 커피, 밀크셰이크, 파르페 등이 기억에 아른거린다.

라떼는 말이야, 물론 BTS나 블랙핑크는 없었지만 그 당시엔 핫한 20대였던 7080이 신나게 듣고 춤추던 최신곡들이 있었다. 스마트폰 앱에서 플레이리스트에 신곡을 내려받아 듣지는 못했어도 그 당시 최신곡 믹스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리어카 한가득 팔던 아줌마 아저씨들한테 매달 간격으로 빠짐없이 구매했던 이력이 있다. 그리고 재밌게도 그 카세트테이프들이 아직도 영국 부모님 집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지난번에 영국에 갔을 때 발견했다.

라떼는 말이야, 청계천도, 서울로7017도 모두 자동차로 빽빽한 고가 차도로 덮여 있었고 버스 전용 차선도 없던 때라 버스로 서울 여행을 하려면 몇 시간이 지나도 모자랐었다. 그리고 지하철도 5개 라인밖에 없어서 지하철 라인이 닿지 않는 이태원이라도 가려고 하면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불편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장소이기도 했다. 또한, 기차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데 6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에 시간보다 돈이 더 많은 분들은 기차보다는 비행기로 서울∼부산을 오가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 기나긴 세월을 서울에서 살면서 보낸 시간을 돌이켜 보면 30년 전 서울은 지금의 서울과는 완전 다른 동네처럼 느껴진다. 서울도 젠트리피케이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피맛길을 포함해서 여러 유명하고 아기자기했던 예쁜 장소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려서 너무 안타깝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서울은 지금, 최소한 나 같은 30년차 베테랑 외국인이 살기에는 더 좋은 삶의 터전이 되어서 고맙다.

폴 카버 영국 출신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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