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탱크 저승사자’... 美 열화우라늄탄, 우크라 전선에 투입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6일(현지 시각) 예고 없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해 열화우라늄탄이 포함된 대규모 군사 지원 방침을 발표했다. 블링컨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지난해 9월 이후 1년 만이며, 지난 5월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을 선언한 지 넉 달 만이다.
폴란드에서 야간열차 편으로 키이우에 도착한 블링컨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난 뒤 10억달러(약 1조3350억원) 규모 추가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 중 1억7500만달러가 군사 장비에 책정됐는데 단연 주목받는 것이 ‘탱크 뚫는 포탄’으로 알려진 ‘열화우라늄탄’이다. 열화우라늄탄은 우라늄에서 핵무기나 핵연료에 쓰일 핵분열물질을 추출한 후 남은 폐기물을 재료로 만든 포탄이다. 전차 포탄의 탄두로 쓰면 기존 철갑탄보다 훨씬 관통력이 강하다. 충격의 강도가 클수록 더욱 관통력도 세지고 관통 후 뜨거워진 열기로 불길에 휩싸이기도 한다. 계획대로 열화우라늄탄이 인도될 경우 우크라이나 전장 투입이 확정된 미 육군 ‘M1 에이브럼스’ 탱크에 장착돼 주요 요충지에서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러시아 진영을 겨냥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강력한 파괴력 때문에 탱크와 장갑차 등 기갑 장비들을 공격하는 데 사용된다.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군이 처음 사용해 이라크 전차 1200여 대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린 뒤 세계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그러나 공격 목표와 충돌하는 순간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미세 방사능 먼지를 내뿜을 수 있어 논란이 큰 무기이기도 하다.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키지 않아 공식적으로 핵무기로 분류되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험한 살상 무기로 인식돼 왔다.
열화우라늄탄 지원 방침이 알려지자 러시아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그들(미국)은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키이우를 계속 돕겠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크라이나를 계속 전쟁 상태에 두고 마지막 우크라이나인이 죽을 때까지 전쟁을 수행하도록 돈을 아끼지 않고 지원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관도 “미국의 자기 기만 행위이자 비인간성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비난했다. 러시아도 이번 전쟁에서 유일한 군사동맹국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했다고 밝힌 바 있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는 “어려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우리가 혼자가 아니란 사실이 행복하다. 파트너들과 함께할 것”이라며 미국의 추가 지원을 반겼다. 블링컨은 “반격에서 중요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매우, 매우 고무적”이라고 했다. 미국의 지원이 성과를 낳고 있으며 지금 지원을 거둬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번 지원 내역에는 무기 분야 외에 러시아에서 탈환한 지역의 질서 유지 등에 3억달러, 피란민 인도적 지원에 2억600만달러가 배정됐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투명성 제고와 개혁에도 2억300만달러가 지원된다. 재건과 나토 가입 등 전후 상황까지 염두에 둔 것이다. 젤렌스키 정부는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온전히 수복하기 전에는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전세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서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번 방문은 공화당 일각에서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이뤄졌다. 미국은 러시아 침공 후 우크라이나에 666억달러(약 88조9110억원)를 지원했고, 그중 군사 분야가 432억달러다.
지원 규모가 계속 불어나고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공화당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다수 공화당 의원이 “우크라이나에 백지수표를 더는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 같은 기류는 점차 강해지는 양상이다. 지난달 23일 열린 공화당 첫 대선 경선 토론회에서 2위를 다투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비벡 라마스와미 전 로이반트 사이언시스 최고경영자는 “우크라이나에 추가 지원할 예산을 미국의 안보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강경파인 맷 게이츠 하원 의원,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 의원 등은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핵심 이익이 아니라며 지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결정적인 전세 전환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젤렌스키는 이달 하순 미국 뉴욕에서 개막하는 유엔총회에 직접 참석해 기조연설과 각국 정상들과의 만남을 통해 여론전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 동부 도네츠크주 콘스티안티니우카의 시장에 미사일이 떨어져 최소 17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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