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사태도 남중국해도 답보 상태로 끝난 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중 정상회담서도 남중국해 논의 안 돼"
(자카르타=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주요 대화 상대국 등의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미얀마 사태나 남중국해 분쟁 등 아세안의 주요 문제들은 진전 없이 답보만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세안과 주요 파트너국 등 22개국의 정상급 인사들과 9개 국제기구가 참석해 지난 5일(현지시간)부터 7일까지 진행된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에서는 행사 시작 전부터 미얀마 폭력 사태와 남중국해 분쟁에 대해 정상들이 어떤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관심이 모였다.
미얀마 군부는 2021년 2월 총선에 불복하며 쿠데타를 일으킨 뒤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폭력 중단 등 5개 항에 합의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를 놓고 말레이시아 등 일부 국가는 아세안 차원에서 미얀마에 강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태국을 비롯해 미얀마 군부와 가까운 국가들은 내정 간섭을 이유로 이를 반대하고 있다.
오히려 미얀마를 아세안 회의에 불러 다시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세안은 미얀마가 5개 항을 지키지 않자 미얀마를 아세안 회의에서 배제하고 있다.
이처럼 아세안 내부에서 의견이 갈리면서 결국 이번 회의도 미얀마 내 폭력 사태에 강력히 규탄하고 5개 항을 이행하라는 예전과 같은 수준의 성명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나마 2026년 미얀마 차례인 의장국 순번에서 미얀마를 제외했지만, 3년이나 남은 의장국에서 배제한 것은 별 의미 없는 압박이라는 평이 나온다.
실제로 미얀마 군정은 아세안의 규탄에 "내정 간섭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고 의장국 제외도 "다른 할 일이 많다. 의장국을 맡으면 소란이 생길 것"이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아세안의 대응은 더 심각하다.
아세안은 개별로는 국제사회에 힘을 쓸 수 없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아세안이라는 지붕 아래 모인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남중국해 문제처럼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여러 회원국과 비회원국의 갈등인 문제에서는 아세안이 단합해 더욱 강경한 목소리를 내야 할 것 같지만, 뜨뜻미지근한 대응만 하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달 중국 해안 경비대가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를 쏴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됐고, 최근에는 중국이 발간한 '공식 표준 지도'에서 남중국해를 대부분 자국 영토로 표시하면서 이번 회의에서는 중국에 강한 항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전날 열린 아세안·중국 정상회의에서는 국제법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적인 이야기만 나왔을 뿐 회의 중 남중국해 문제는 거론도 되지 않았다고 자카르타 포스트는 전했다.
오히려 리창 중국 총리는 아세안 정상들을 향해 "각국이 차이와 분쟁을 적절히 처리해야 하며 편 가르기, 블록 대결, 신냉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남중국해 갈등을 고리로 미국과 편이 돼 중국에 대항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말한 것이다.
이처럼 아세안이 강경하게 나오지 못하는 것은 일단 라오스와 캄보디아 등 친중 국가들의 반대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세안은 통상 만장일치를 통해 움직이는데 일부 국가가 반대하고 나서니 강경 대응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중립을 표방한다는 아세안의 태도도 스스로를 발목 잡는다는 지적이다. 남중국해 문제에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면 미·중 갈등에서 미국의 편을 드는 모습으로 비칠까 걱정하다 보니 자신들의 문제인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인도네시아의 국제관계 부서장 리나 알렉산드라는 자카르타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세안이 지정학적 이슈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은 사람들을 짜증 나게 만든다며 "의장국인 인도네시아가 중국에 더 강경한 태도를 취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호주 퀸즐랜드 대학의 국제 관계 전문가 아흐마드 리즈키 박사도 "인도네시아가 여전히 신중함을 우선시하지만, 이런 전략이 아세안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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