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도 치료도 없이… 무관심 속 참혹한 삶 [베트남 철군 50주년]
인정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 수만명 추산
지원·보상 없어 수술·치료비는 ‘본인 몫’
숨어 있는 2세들 고통, 판정받기 더 어려워
외면받는 국내 고엽제 피해자들
국내에서 고엽제 후유증으로 판정받은 사람은 6만3천여명이다. 이들 모두 정부 보상대책에 의해 치료비와 생활비를 받고 있지만, 아예 인정조차 받지 못한 사람이 수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아무런 지원도, 보상도,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모두의 무관심 속에 외롭게 죽어간다. 그나마 어렵게라도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받은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고통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고엽제 2세 환자들에게 적절한 위안과 보상이 주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 “참 오래 걸렸다” 50년이 지나 인정받은 병
고엽제전우회 인천광역시지부 지부장 박만조씨(75)는 1968년 베트남전에 참전해 13개월을 복무했으나 방광암으로 평생을 시달렸다.
50년이 넘도록 13차례 수술과 수십차례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치료비는 본인 몫이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국가보훈부는 방광암을 비롯한 4개 질병(갑상샘 기능저하증, 다발성 경화증, 방광암, 비전형 파킨슨증)을 고엽제 후유증 질병으로 추가 인정하는 내용의 ‘고엽제 후유의증 등 환자지원 및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베트남전 참전 군인에 대한 역학조사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되는 질병은 기존 20개에서 24개로 확대된다. 그렇게 되면 박씨도 후유증을 인정받는다.
박씨는 “참 오래 걸렸다”며 “상이군경은 육안으로 판별이 쉽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곧 죽을 정도까지는 돼야 고엽제 후유증으로 판정받는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고엽제는 후유증 판정 받기가 굉장히 어렵고, 2세는 더더욱 힘들다”며 “주변을 보면 태어나면서부터 당뇨를 얻었는데, 고엽제 후유증으로 판정받지 못하는 등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박씨는 “한강의 기적은 베트남전으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이제는 아무도 베트남전쟁 국내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없다”며 “무관심에 역학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참전자는 물론이고 숨어 있는 2, 3세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전했다.
■ 2세까지 이어지는 고통... 3세도 걱정
40대인 허구연씨(가명)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 남아 있다. 그의 아버지는 25년 동안 10차례 이상 방광, 다리 등 신체 여러 곳의 암 수술만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건 병원비와 빚, 그걸로 모자라 유전병뿐으로 어머니는 아버지가 고엽제 후유증 ‘비해당’이라는 서류를 받고 쓰러지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직 우리나라에선 아버지의 질병과 관련된 원인도 밝혀지지 않아 보훈병원 의사들도 최종 판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며 “말초신경 장애를 얻어 평생 바늘로 찌르는 고통 속에 살고 있지만, 아버지가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나도 고엽제 2세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이인호씨는 10년 넘게 백방으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다. 이씨의 아버지는 베트남 파병 이후 다발성골수종 혈액암으로 투병 중이며, 이씨는 30여년 전부터 강직성 척추염을 앓고 있다.
강직성 척추염은 선천적으로 몸이 굳어 가는 잔혹한 병이다. 아버지가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받았지만 이씨는 치료비조차 지원 받을 수 없다.
일반인 중에는 1천명 중 1명 정도꼴로 환자가 나타나는 희귀병이지만 파월장병 2세 다수가 앓고 있다.
이씨는 “강직성 척추염과 고엽제의 인과관계가 높다는 고엽제 2세 역학조사 보고서가 있다”며 “많은 2세들이 보훈부에 개인적으로 수많은 문의를 했지만, 뚜렷한 해법을 얻을 순 없었다. 몸이 굳는 병을 얻어 생계가 힘든 2세들이 제발 치료비만이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더욱이 이들 2세는 베트남처럼 자녀가, 손주가 자신이 겪는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는 생각이 건강 악화보다 더 두렵다.
자신의 집에서 기자와 만난 최재호씨는 “고등학생인 딸이 나처럼 뒤늦게 후유증이 발견될까 걱정스럽다”며 “2세 피해도 인정받기 쉽지 않은데 3세, 4세에 대한 피해는 관심조차 없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 해외에 비해 보상·의료서비스 태부족
국내 고엽제 피해는 1991년 호주 교민을 통해 처음 알려진 이후 정부에서 부랴부랴 지원책을 내놨지만, 미국이나 호주와 비교하면 보상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고엽제 피해자가 겪고 있는 증상을 ‘고엽제 후유증’과 ‘고엽제 후유의증’으로 나눠 지원과 보상을 각각 달리하고 있다.
특히 2세 환자의 고엽제 후유증 인정 질병 범위는 척추이분증, 말초신경병, 하지마비척추병변 등 세 가지로 굉장히 제한적이다. 이마저 고엽제 후유증 환자의 자녀들만 신청하도록 한정돼 있다.
최근 정부에서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되는 질병 중 4개를 고엽제 후유증 질병으로 추가 인정한 것을 두고, 피해자들은 정작 문제가 된 인정 기준 자체를 바꿀 의향이 없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고엽제 후유증 인정 질병의 수가 늘어난 것은 다행이지만, 국내 고엽제 피해 진단과 보상 기준은 미국, 베트남 등에 비해 훨씬 미흡하다는 것.
미국에서는 외상이나 선천성 장애와 같이 고엽제 노출과 관련성이 없는 질병을 제외한 모든 질병에서 참전 군인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해 보상과 의료서비스가 적어 고엽제 후유의증을 별도로 정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박기정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기획실장은 “후유증이 아닌 후유의증은 국가유공자가 될 수 없고, 후유의증 환자가 사망하면 유가족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없다”며 “특히 고엽제는 유전된다는 점이 무서운데, 후유의증 환자의 자녀들은 고엽제로 인한 병이 생겨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정부에서는 예산이 없다고만 할 게 아니라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고엽제 후유증으로 통일해 피해자들이 좀 더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윤현서 기자 03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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